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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데 두 번 가는건 싫어하지만

멋진 풍경을 보기 위해 다시 간 울릉도 성인봉

by 문현준

울릉도 여행 중 하루, 하루는 일행이 갈라져서 나는 나 가고 싶은 곳을 가고 엄마와 엄마 친구는 따로 일정을 잡기로 했다. 사실 나는 성인봉을 한번 더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름에 파묻힌 산봉우리를 걸어가는 느낌에 볼 수 없었던 풍경이 너무 아쉬웠던 나는, 날이 맑은 날 한번 더 가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엄마와 엄마 친구는 등산 일정보다는 쉬고 싶다고 하셔서, 나 혼자만 한번 다시 가 보기로 했다.




그래도 등산을 해야 하니 이것저것 간식을 챙기다가 삶은 계란을 넣는 나를 본 엄마 친구가 뜯어 말렸다. 차라리 빵을 사라는 말에 나는 빵과 초코바를 챙기고, 성인봉 등산로까지 가는 택시에 올랐다. 일반적으로 시작하는 버스 정류장에서도, 본격적인 성인봉 등산로 까지 가는 길은 아스팔트 포장이 되어 있었다. 꽤 길고 경사진 이 길을 최대한 택시 타고 올라가는 것이 내 잔꾀였으나 아쉽게도 택시는 버스가 가는 곳 정도까지만 운행했다. 다른 곳으로 가면 더 편하게 성인봉에 갈 수 있다는 이야기도 들어서, 그곳은 어디일까 궁금해졌다.




여하튼 택시에서 내려서, 이미 올라가 봤던 성인봉 등산로 입구까지의 가파른 비탈길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맨 처음에 올라갈 때는 비탈길이 꽤나 힘들었는데, 이상하게 두 번째 올라갈 때는 별로 힘들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처음 올라갈 때는 날씨가 좋아지기만을 바라고 있었는데, 두 번째 올라갈 때는 날씨가 좋아서 그랬나 싶었다. 처음 날씨가 안 좋았을 때 보이지 않았던 풍경을 보면서, 이때 이런 풍경이 가려져 있었구나, 생각했다.




올라가면서 봤던 다람쥐




콘크리트 전봇대에 붙어 있던 딱따구리




하지만 올라가면서 좋았던 날씨도 잠시, 좋지 않았던 날씨에 방문했던 성인봉과 똑같은 짙은 안개가 갑자기 덮쳐왔다. 또다시 악천후 속의 성인봉을 올라가야 한다는 생각에 징조가 좋지 않았지만, 구름이 울릉도 산봉우리들을 지나가는가보다 싶었다. 계속해서 앞으로 걸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다행히 안개는 거짓말처럼 걷히고 다시 빛과 하늘이 보였다.




올라가면서 지나가는 몇 번의 전망 포인트들이, 전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풍경과 비교되면서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벤치가 있던 작은 공터와 나무 사이에 있던 작은 정자까지. 안개와 구름으로 가려져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그곳에서, 울릉도 밖 바다를 볼 수 있었다.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풍경을 보면서 나아가니, 잔뜩 피어 있는 고사리 위로 내리는 강렬한 빛도 보였다.




잠깐 짙어졌지만 이내 사라졌던, 안개




이전 좋지 않았던 날씨에서는 볼 수 없었던, 성인봉 가는 길의 전경




이상하게 두 번째 성인봉 올라가는 길에서는 별로 힘들지 않았다.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아니면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알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힘조절을 하기 때문인지. 나무로 가려진 숲 사이로 내리는 강한 햇볕과 조용하게 바람소리만 들리는 숲 속을, 마음 편히 걸어갔다. 다만 문제는 물을 작은 것 하나만 챙긴 상태라, 거의 다 마셔버린 상태였다. 일단 별다른 방법이 없기에, 계속해서 걸어갔다.




그러다가 성인봉까지 도착하기 직전이 되어서, 다른 등산객들을 만났다. 아마 나리분지 쪽의 가파른 계단을 걸어서 올라왔을 것으로 추정되는 그 사람들은 성인봉 꼭대기까지 찍고 쉬고 있는지, 성인봉 근처의 작은 공터에서 간식을 먹고 있었다. 나를 보더니 박수로 환영해 준 그 사람들은, 내 나이를 물어보며 어린 사람들도 쉽게 올라온다고 했다. 올라오느라 고생했다고 초코바를 건네주는 사람들에게, 나는 조심스럽게 혹시 죄송하지만 물은 없으시냐고 물었다. 소중한 물 한병과 친절을 받고 나서, 드디어 성인봉 꼭대기까지 올라올 수 있었다.




성인봉 정상 표지석은 꼭대기에서 조금 더 올라가야 볼 수 있었는데, 내가 올라가려 하니 어떤 사람이 삼각대까지 들고 내려오며 정상에서 별로 보이는 것이 없다며 아쉬워했다. 나도 성인봉 표지석까지 가 보니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좋은 날씨에 주위가 확 트여 있긴 했지만, 주위가 온통 나무로 가려져 있어서 보이는 것은 파란 하늘 뿐인 수준이었다. 그런데 그때 지난번 엄마가 잘못 내려갔던 길을 떠올려, 나도 그곳으로 한번 내려가 보았다. 풀숲으로 뒤덮인 길을 조심스레 따라 내려가니, 작은 공터가 나왔다. 아래쪽으로 울릉도 내부가 내려다보이는 멋진 곳이었다. 삼각대를 가지고 올라왔던 사람도 이 풍경을 보면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에 아쉬웠다.




표지석 아래로 내려가면 있던, 좋은 전망 포인트




맑은 날 다시 방문한 성인봉의 표지석




구경을 마치고, 계단을 통해 나리분지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성인봉으로 올라가는 길은 비교적 완만한 편에 속했지만, 계단을 통해 나리분지로 내려가는 길은 아주 가파른 길이었다. 중간중간 무너져 있기도 한 나무계단을 천천히 걸어 내려가는데, 다행히 날씨가 맑아서 공기가 습하지 않아 계단이 미끄럽지는 않았다.




숲 속으로 내려오는 햇볕이 음영을 만드는 것을 구경하며 가다 보니, 어딘가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시냇물이 있나 싶어서 둘러보니, 약수터가 있다는 표지판이 있었다. 일전에 내려갈 때는 약수터가 있는 것을 확인하지 못했었는데, 알고 보니 표지판이 올라오는 방향으로 적혀 있어 내려가면서는 볼 수 없는 곳에 있었다. 표지판을 따라가니 깨끗한 물이 나오는 샘이 있어, 소중한 물을 한 병 다시 챙겨갈 수 있었다.




멋진 풍경을 많이 본 덕에 다시 오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한층 가벼운 발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갔다. 나리분지로 내려가는 길에는 나리분지를 볼 수 있는 좋은 전망대가 있었는데, 이곳도 처음 왔을 때는 안개로 가득 차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날씨가 맑을 때 다시 방문하니, 울릉도 안쪽과 바다, 푸른 하늘까지 멋진 풍경이 펼쳐졌다. 아쉬운 것은 어디선가 모기가 자꾸 날아온다는 것이었다. 날씨가 습할 때는 이상할 정도로 모기가 없었는데.




울릉도의 산 속 곳곳을 비추던 강한 햇빛




울릉도 산봉우리에서 봤던, 나리분지 쪽 전망




그렇게 다시 성인봉까지 올라갔다가, 나리분지까지 내려오니 버스 시간이 다 되어 있었다. 사실 나리분지의 한 음식점에서만 먹을 수 있다는 산채 정식이 정말 궁금해 먹고 가고 싶었지만, 빨리 버스를 타고 돌아가서 다른 일정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비록 산채 정식은 먹지 못했지만, 볼 수 없었던 멋진 풍경들을 다시 본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던 성인봉이었다.




맑은 날씨 멋진 풍경을 한가득 볼 수 있었던, 두번째 성인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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