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여행이 즐거운 이유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동생도 여행을 좋아한다. 돈을 내고 새로운 경험을 하는 여행을 좋아하는 것은 둘의 공통점이지만, 둘이 하고 싶은 경험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는 나와 동생이 조금 다르다.
가령 내가 100만원으로 여행 계획을 짠다고 하면 나는 10만원씩 열 곳의 도시를 돌면서 새로운 것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동생이 100만원으로 여행 계획을 짠다고 하면 동생은 100만원을 내고 좋은 숙소에서 비싼 음식을 먹어 보기를 원한다. 동생은 나를 보고 무슨 개 고생이냐고 하고, 나는 동생을 보고 그게 무슨 돈 낭비냐고 한다. 좌우지간 둘이서 일전에 해 볼 수 없었던 경험을 한다는 것은 똑같지만 말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둘 다 돈을 쓴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나는 한때 동생의 여행 취향을 보며 별로 경험하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무엇을 할 것인가는 취향일 뿐 중요한 것은 어떤 것을 경험하냐가 아닌 것 같았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여행을 할 것인가, 어떤 여행을 좋아하느냐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여행에는 돈을 쓰러 간다는 것이고, 그것은 일상 생활에서 돈을 쓰러 가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이었다.
일상생활에서도 돈을 쓰러 가는 날이 있다. 돈을 모아서 먹고 싶었던 케이크를 사 먹거나 새로 나온 노트북을 사러 갈 때, 우리는 돈을 쓰러 가고 그것에서 만족감을 느낀다. 먹어 보고 싶었던 케이크를 먹으며 그 맛을 느낄 때, 일전부터 갖고 싶었던 물건을 손에 넣고 드디어 내가 이걸 가졌구나 할 때, 우리는 만족감을 느끼고 돈을 쓴다.
하지만 그렇게 돈을 쓰러 가는 것은 여행에 돈 쓰러 가는 것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일상 속에서 돈을 쓸 때, 그것은 돈을 버는 것과 섞여 있다. 일상 속에서 돈을 쓰며 만족감과 성취감을 느낄 때 아 그래도 돈을 벌어야 하는구나, 돈을 벌어서 무엇을 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돈을 벌고 쓰고 하는 순간이 계속해서 반복되는 그 순간이 일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행은 다르다. 여행의 시작과 끝은 명확히 정해져 있고, 여행의 시작에서 끝까지는 오로지 돈 쓰는 순간 밖에 없다. 일상 속에서 돈 쓰는 순간이 돈을 버는 순간을 매 번 상기시킨다면, 여행은 정해진 순간 동안 오직 돈을 쓰기만 한다. 돈을 많이 쓰냐 적게 쓰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오로지 돈 쓰는 순간 밖에 없다.
살면서 돈을 버는 과정은 고통이지만, 돈을 쓰는 과정은 쾌락이다. 그리고 여행은 오로지 돈을 쓰는 순간만 모아두었다. 호캉스를 가도, 풀빌라를 가도,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곳에서 새로운 것을 구경하고 음식을 먹어도, 오로지 돈 쓰는 것을 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정해진 순간이 명확한, 오로지 돈 쓰는 과정의 연속.
방식이 다를지 몰라도 오직 돈 쓰는 순간만 모아놓은 것이라는 점이, 여행이 즐거운 이유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