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다는 뜻이 아니라 무시한다는 뜻 같아서
나는 이전에 알아서 할께요 라는 말을 종종 썼다. 아무래도 쓰는 경우가 정해져 있다 보니, 가족과의 사이에서 특히 부모님한테 많이 쓰곤 했다. 보통 부모님이 나에게 무언가를 추천하실때, 내가 알아서 할께요 라고 말하는 식이었다. 어디를 간다고 하면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하시거나, 집안 정리를 할 때 어떻게 해야 한다고 말하시면 제가 알아서 할께요, 하고 말 하는 식이었다.
그럴때 엄마는 나에게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고 말씀하시곤 하셨다. 맨 처음에 그 말을 들었을 때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내가 알아서 한다는 말은 좋은 것 아닌가? 내가 그 일을 내가 직접 처리하고 알아서 할 테니, 신경쓰지 않으셔도 된다는 것인데 이게 안 좋은 말인가 싶었다. 그래서 꽤 오랫동안 왜 그렇게 말씀 하시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최근 동생과 나도 비슷한 일이 있었던 것 같다. 아마 동생에게 나중에 같이 여행을 가거나 여행 가서 하는 것들을 알려 준다고 했던 것 같다. 그때 동생이 자기가 알아서 한다고 했는데, 그 말을 들으니 이상하게 기분이 묘했다. 그러면서 왜 부모님이 그 말을 좋아하지 않으셨는지 알 것 같았다.
알아서 한다는 말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는 말 보다는, 그 일은 제가 알아서 할 테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된다 라는 뜻 같았다. 좀 더 거칠게 이해한다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되니 신경 끄시라 같은 뜻으로 들리기에 충분해 보였다. 내가 생각했던 알아서 한다는 말은, 신경 쓰지 마시고 나에게 맡겨 주셔도 된다 라는 것이었는데, 생각해 보니 전혀 그런 뜻이 아니었던 것이다.
내가 누군가를 신경써서 말했는데, 그것에 대해서 알아서 한다는 대답을 듣는다면, 자기가 신경쓰는 마음이 의미없어진 것 같아서 기분이 안 좋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요새는 그런 신경써주는 것 자체를 원하지 않는 경우도 많지만, 적어도 나는 그런 의미로 알아서 한다는 말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내 일은 내가 직접 해결하는 것이 좋았고 알아서 한다는 말은 그런 뜻으로 생각하며 써 왔었지만, 그 말이 내가 생각한 것과 다르고, 듣기에도 별로 좋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다음, 앞으로 알아서 한다는 말은 쓰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지난번에 내가 옷걸이에 바지 걸치는 것을 본 엄마가 어떻게 걸라고 말 하실 때, 제가 알아서 할께요 라고 말을 하려던 것을 바로 멈췄다. 앞으로 어떤 더 좋은 말을 쓸 수 있을 지는 생각해 봐야겠지만, 내 생각을 제대로 담을 수 있는 말을 찾아가 봐야겠다.
다른 사람이 나를 판단할 때 보는 것은 보이지 않는 생각이 아니라 들리는 말과 다른 것들일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