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려깊은 것과 자기검열
몇년째 즐기고 있는 소소한 취미생활이 있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 진행하는 홈베이킹이다. 공유주방을 임대하고 재료를 준비하고 사람들을 모은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홈베이킹의 기쁨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달되는 것에서 성취감을 느껴서, 몇 년째 꽤 오래 꾸준히 해 오고 있다.
규모도 맨 처음에 시작할 때보단 커졌다. 초창기 대비해서 일정이 6배 이상 늘어났고, 관심 가져 주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물론 진행할 때 그리고 준비할 때 내가 이걸 지금 왜 하고 있을까, 이걸 이렇게까지 해 가면서 할 가치가 있을까 하고 생각할 때도 많다. 하지만 하기 싫은 것은 절대로 하지 않는 성격에서 내가 여태까지 하고 있는 것은, 나도 이 활동을 통해 배우는 것이 있기에 그리고 내가 이걸 좋아하기에 하고 있다고 믿는다.
다만 이걸 누군가에게 먼저 이야기 해 본 적은 없다. 나름에 성취가 있었지만 이걸 자랑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이고, 내가 원하는 수준까지 성취가 도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초창기부터 내 활동을 알았던 사람들 혹은 초창기 활동하는데에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 정도만 알고 있다.
그러다가 최근 친구로부터 제안을 하나 받았다. 핀테크 업체에 일하는 친구가 월마다 한번씩 외부 취미 활동을 하는데, 이번 활동을 나를 통해 진행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수주를 받았다고 할 수 있는 것인데, 규모도 크고 나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 꽤나 기뻤다.
그래서 내가 활동을 시작할 때부터 이야기 해서 알고 있는 친구들의 단톡방에 그 이야기를 하려 했다. 한 명은 활동 소모임 이름을 짓는데 큰 도움을 주었고 또 다른 한 명은 나는 할 수 없는 것을 무탈히 하면서 활동에 큰 도움을 주고 있는 친구였다. 그 친구들에게라면 이야기를 하는데 큰 문제가 없을 것 같아, 단톡방에 이야기 하려 했다. 이번에 친구의 요청으로 회사 단체 신청을 진행하게 되었다고.
그런데 그 이야기를 단톡방에 치고 메세지를 입력하려고 할 때 갑자기 이 이야기를 굳이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가 원하는 수준의 성취까지 도달하기 전까지는 별로 어떤 이야기도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성취를 이뤄내기 전에 내가 뭐 이런저런 것을 했다고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내 입으로 말하는 것은 궁금하지도 않은 것을 설명하면서 자랑하는 것 같았다. 자기가 뭔가 성취를 했을 때 자랑하고 싶은 것은 누구나 가지는 생각일테니 그럴 수 있겠지만, 나는 별로 자랑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사실은 자랑하고 싶은데 그것은 숨기면서 그냥 이런 일이 있었다 라고 이야기 하려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또 평소에 서로 좋은 일이나 축하할 일이 생기면 그것이 좋은 소식을 전하는 것이던 자랑하려는 것이 목적이던 간에 편하게 이야기 하는 그런 분위기의 인간관계는 아니었기에, 특히 더 말하는 것이 조금 고민이 되었다. 내가 만약 말을 한다면 그 말을 하려는 내 의도는 무엇일까. 나는 내 의도를 정확하게 알고 말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상대방은 내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묻지도 않은 것을 말하면서 어떻게든 자신의 성취를 면전에 들이미려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 만약 그냥 이런 일이 있었다 하고 좋게 받아들여 줘도, 굳이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똑같은 것 아닌가?
내가 이전부터 도달하고 싶었던 성취에 도달해서, 일전에 이렇게 하고 싶었는데 드디어 되었다 라고 이야기 하지 않는 한, 그 사이에 있는 어떤 일도 굳이 들려줄 필요가 없는 것 아닌가 싶었다. 필요가 없는 행동은 안 하는게 낫지만, 그 중에 가장 안 하는게 좋은 것이 필요가 없는 말이라는 것이 내가 배운 것이었다.
사실 내가 말 하는 것이 자랑처럼 느껴져서 듣는 사람에게는 기분이 나쁠 수 있으니, 그리고 내가 한 말이 내 의도랑은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으니, 말을 하기 전에 한번 생각하는 것은 좋은 습관 같았다. 생각이 지나치게 많은 것일 수 있지만 그 말을 하기 전에 고민하고 결국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내가, 나는 어떤 사람인지 한번 더 알려준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과하게 자기검열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싶었다. 나는 한때 하고 싶은 말을 하고 하고 싶은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뭘 해도 고민하고 해야해서 솔직한 나를 표현하지 못하는 것 같았기에, 직관적으로 직설적으로 자기를 표현하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이 정도까지 고민하고 자기검열을 해야 할 수준의 말은 아닌 것 같았기에 더 그랬다.
사려깊은 것 아니면 자기검열, 둘 중에 어느 것에 가까운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말 하기 전에 생각하고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은 나 자신에서, 나는 어떤 사람인지 한번 더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