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키지 여행을 만난 자유 여행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던 분을 얼마 전에 만났다.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아파트 상가에서 분식집을 하시던 아주머니였다. 엄마가 그분과 같이 점심을 드신다고 하셔서, 나도 시간이 있어서 오랜만에 한번 뵙기로 했다. 점심을 먹고 나서, 내가 가 보고 싶었던 카페가 있어 같이 가 보기로 했다. 나는 앤틱 분위기를 좋아해서 괜찮은 곳이 있으면 지켜봐뒀다가 가곤 하는데, 두 분도 마음에 들어 하셔서 다행이었다.
커피를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주머니는 얼마 전에 베트남 패키지 여행을 갔다 왔다고 하셨는데, 많은 장소를 갔지만 어디가 어디인지 잘 모르겠고, 일전에 텔레비전에서 봤던 장소는 너무 짧은 시간을 줘서 둘러볼 시간이 부족하다고 하셨다. 쇼핑코스에서 물건을 사자 좋아했다는 가이드와 운전기사의 반응은 덤이다.
엄마는 그 이야기를 듣더니 옛날에 내가 부모님과 함께 갔던 여행을 이야기하셨다. 내가 부모님을 모시고 다녔던 여행이 부모님에게는 마음에 드셨는지 시간이 지나고 나서도 그때 여행이 참 좋아서 그때 갔었던 곳들을 다시 가고 싶다고 자주 이야기하곤 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힘든것도 있고 좋은것도 있었지만 그래도 부모님에게 좋은 경험을 드린 것 같아 다시 떠올려도 만족스러웠던 경험이었다.
옛날엔 패키지 여행 이야기를 들으면 그런걸 왜 갈까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저 각자의 차이가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해서, 누구나 개인의 상황에 맞는 여행을 가는 것 아닐까 싶었다. 누구는 다른 사람이 정해주는 여행을 갈 것이고, 누군가는 자기가 직접 선택하는 여행을 갈 것이다. 비록 전자는 다른 사람이 여행 말고 다른 것까지 정해줄 수도 있고, 후자는 직접 선택할 것들 뿐인 나머지 신경쓸 것이 너무나도 많을 수 있지만 말이다.
여하튼 엄마와 아주머니가 패키지 여행과 자유여행 이야기를 하시는 것을 들으니, 옛날 부모님과 함께 갔던 여행이 떠올랐다. 나는 그때 부모님을 모시고 다니는 여행을 처음으로 경험하는 상황이었다. 그 경험을 지구 반대편에서, 여태까지 한번도 해 본 적이 없던 것을 새롭게 한다는 것이 특이한 점이긴 했지만 말이다.
여행 첫날부터 기차가 연착되어서 숙소에 자정이 넘은 시간에 도착하고 도시 하나당 숙박을 이틀도 안되게 하는데다가 긴 이동시간이 곳곳에 있는 등 지금 내가 생각하면 좋아하지 않는 요소들이 많았지만 역시 모르는 것은 몸으로 경험해 가며 배운다는 것을 몸소 느끼고 있던 때였다.
그때 기차를 타고 전망대에 갔는데, 뾰족한 봉우리의 산이 잘 보이는 곳이었다. 한국 사람들에게도 아주 유명한 산이라 많은 한국 사람들이 찾아오는 유명 관광지였고, 나는 그곳에서 부모님에게 일전에 내가 왔을 때 봤던 것들을 말씀드리곤 했다. 아무 생각 없이 올라왔는데 추워서 가벼운 바람막이를 사려 했지만 너무 비싸서 못 샀다는 뭐 그런 이야기들.
여튼 이런저런 구경을 하고 나서 내려가는 기차를 타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승강장에 다른 한국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여러 사람들이 몰려서 다니는 것이 패키지 여행을 온 사람들 인 것 같았다. 나는 여행지에서 굳이 필요하지 않으면 한국 사람들끼리 적극적으로 이야기 하지는 않는 편이었지만, 부모님은 친근하게 말을 걸고 이야기를 나누곤 하셨다. 나도 그 옆에 서 있다 보니 사람들과 조금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 여자아이와 함께 온 부부가 한 분 있었는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문득 궁금해서 물어봤던 적이 있다. 패키지 여행으로 유럽을 많이 오는데 어떠시냐고. 패키지 여행을 와 본 적이 거의 없어서 잘 모르겠다고. 그러자 그 사람들이 말해 줬다. 다른건 모르겠고 일정이 너무 빡빡해서 화장실 가기가 힘들다고.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여자아이가 겨울왕국의 그런 풍경이 보고 싶다고 해서 같이 왔다는 그 말이 지금 생각하면 정말 쉽지 않았겠구나 싶다. 여자아이는 나와 부모님에게 금화 모양 초콜릿을 줬다. 초콜릿의 맛 대신 고마운 마음만을 기억하기로 한 초콜릿이었다.
옛날에 그런 일도 있었지 하고 이야기 하다 보니 엄마가 나중에 또 가보고 싶다고 하신다. 이번엔 친척들과 함께 최대한 갈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가 보고 싶다고 하신다. 뭔가 이야기만 들어도 아주 힘든 여행이 될 것 같지만, 이제는 그 여행이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보다는 다른 생각이 먼저 든다. 그 여행이 많은 사람들에게 큰 의미가 될 수 있겠구나 싶어서.
하지만 나는 자유 여행을 가도 패키지 여행을 가도, 부모님과 함께 간다면 화장실 가기가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