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오카 해변공원의 오후
여행에서 날씨는 항상 중요하지만, 특히 날씨가 더 중요한 활동을 해야 하는 때라면 더 그렇다. 비 오는 날 공원에 가긴 그렇고, 날씨가 흐리면 또 볼 것이 없다. 공원에 가면 날씨가 좋아야 한다. 하다못해 푸른 하늘이라도 보여야 한다. 그래서 후쿠오카에 있는 동안 공원에 갈 정도로 날씨가 좋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런데 도착하고 계속해서 날씨가 좋지 않다가, 오전까지도 날씨가 안 좋았는데 오후에 갑자기 날씨가 좋아진다는 말을 들었다. 오전만 해도 두꺼운 구름에 바람에 빗방울도 조금 날렸는데 어떻게 오후에 날씨가 또 좋아질 수 있는지, 일기예보가 실제와 다른 것은 흔한 일이고 어쩔 수 없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날씨가 안 좋으면 오후는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하며 소바를 먹고 있는데 소바집 창문에 햇볕이 비쳤다. 소바를 다 먹고 밖으로 나가 보니 하늘이 개어 구름 사이로 푸른 하늘이 보이고 있었다. 어떻게 한 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날씨가 이렇게 맑아질 수 있지 하는 생각에 당황스러웠다.
사실 공원을 가려면 오전에 가서 천천히 돌아보고 오후에 나와야겠다는 생각으로 너무 늦게 가서 시간이 촉박하게 둘러보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날이 확 개고 나니, 늦게라도 가서 조금이라도 구경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가까운 곳에 있는 조금 옛날 느낌 나는 골목을 구경하고 나서, 동생에게 공원을 가자고 했다. 공원 괜찮은데가 있대. 거기 가서 뭐 하는데? 가서 자전거 타면 좋대. 원래대로라면 동생이 별로 좋아하지 않을 일정이지만, 동생도 예쁜 공원에 볼 것이 많다고 하니 흥미가 생겼는지 가 보자고 했다.
가려는 공원인 우미노나카미치 공원은 후쿠오카에서 전철을 한 번 정도 갈아타고 40분 정도 가면 있는 곳에 있었다. 맑아진 날씨에 후쿠오카 시내와 저 멀리 바다 쪽을 구경하며 전철을 타고 가니, 얼마 지나지 않아 공원 근처에 내렸다. 우르르 내리는 사람들과 함께 공원으로 가니 자전거 대여소가 있었다. 우미노나카미치 공원은 넓은 부지 안에 이런저런 장소들을 배치해 둬서, 그 사이를 자전거로 오가면서 구경하는 듯 했다.
동생에게 먼저 자전거를 타고 가고 있으면 따라가라고 했다가, 길이 복잡하게 나누어져 있는 것을 보니 붙어서 다녀야겠다는 생각에 바로 전화를 걸어 다시 자전거 대여소에서 만나자고 했다. 일단은 큰 길을 따라 자전거로 달려 보자고 하는데, 비가 와서 아직은 물에 젖어 있기도 한 도로 위로 나무 사이의 햇볓이 내리는 곳을 자전거로 나아갔다. 평소에 자전거를 타 본 적이 별로 없는 탓에 자전거거 넘어지는 것은 아닌가 걱정되었지만 다행히 조금 타고 나니 적응해서 문제 없이 돌아다닐 수 있었다.
조금 자전거를 타고 가니 동물원이 나왔는데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다양한 동물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것이 천천히 돌아다니면서 구경하기 좋았다. 동생이 생각보다 동물원을 좋아했는데 수족관까지 있으면 참 좋았을 것 같다 하는 말에, 공원에 수족관도 있긴 하다고 했다. 동물들을 구경하고 사진을 찍으며 보니, 관광객들도 많았지만 일행으로 방문한 가족 현지 사람들도 많았다.
동물원을 적당히 구경하고 매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먹은 뒤, 다시 자전거를 타고 다른 공원으로 향했다. 우미노나카미치 공원 안에 있는 다른 장소가 있었는데 네모필라라고 하는 작고 파란 꽃이 한 가득 피어 있는 꽃밭이 있다고 들었다. 내가 우미노나카미치 공원을 알게 된 것도 그 꽃밭 때문이었는데, 사진으로 본 꽃밭이 아주 예뻐서 나중에 꼭 가 봐야겠다 했다가 시간을 맞춰 온 것이었다.
넓은 공원 안 곳곳을 잇는 자전거 도로를 타고 달리며 여유롭고 한적한 풍경에 감탄하다 보니, 얼마 지나지 않아 목적지가 나왔다. 자전거를 세워두고 조금 걸어가니 아주 넓은 공원이 나왔는데 군데군데 조형물과 놀이터가 있을 뿐 대부분은 잔디밭인 넓은 공간이었다. 그리고 저 멀리 옅은 푸른색으로 덮인 곳이 있었다. 네모필라 꽃밭이었다.
가까이 가 보니 인터넷에서 봤던 것과 똑같이, 푸른 네모필라 꽃이 덮고 있는 작은 공원이 있었다. 실제로 본 네모필라 꽃은 생각한 것보다 작았고, 색감도 더 옅은 편이었지만 그래도 푸른 꽃이 좁은 공간에 빈틈없이 피어 있는 것이 아주 예뻤다. 주위에는 다른 꽃나무들도 많이 있었는데, 비록 대부분이 이미 진 이후였지만 벚꽃나무가 한가득이었기에 봄에 와서 구경을 한다면 아주 예뻤을 것 같았다. 잘 하면 피어 있는 벚꽃나무를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약간 지나버린 시기와 며칠간의 비바람으로 이미 대부분이 져 버린 이후였다. 그래도, 보고 싶었던 네모필라 꽃은 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네모필라 꽃밭까지 구경하고 나니 공원이 문 닫을 시간이 다 되어서 이제 돌아가야 했다. 공원이 넓어서 그런 것인지 안전관리 차원에서 생각보다 훨씬 일찍 문을 닫는 것 같았다. 원래 공원에서 가까운 곳의 항구에서 여객선을 타고 후쿠오카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미리 알아 둔 정보가 부족했고 동생과 함께 다니니 섣부른 모험을 할 수 없어서 왔던 길을 그대로 돌아가기로 했다. 언제 또 올 지 알 수 없으니 공원 한 곳만 더 구경하자는 내 말에, 동생이 그냥 가려다가 자전거를 돌려서 돌아왔다. 결국 꽃밭과 호수 한 곳을 더 구경하고 다시 후쿠오카로 돌아가는 전철을 탈 수 있었다.
날씨가 갑자기 갠 탓에 짧은 시간으로 둘러보지 못한 곳이 훨씬 많았던 곳이었지만, 나중에 다른 계절에 와 보고 싶은 곳이었다. 간식을 준비해서 좋은 풍경이 보이는 곳에 앉아,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