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친척에게 술 권하기

문득 옛날이 떠올랐던 때

by 문현준

어릴 적 부모님과 함께 있던 집에는 종종 친척들이 찾아왔다. 친척들이 방문해서 집에서 음식을 먹으면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듯한 나는 어른들이 먹는 것이 궁금했다. 특히 궁금했던 것은 술이었다. 어떤 때는 작은 잔에 담긴 투명한 것이기도, 큰 잔에 거품과 함께 담긴 주황색 액체이기도, 사발에 담긴 하얀색 물이기도, 작은 컵에 얼음과 함께 담긴 갈색 물이기도 했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모르겠어도 나는 그 맛이 너무 궁금했다. 내 궁금증이 눈에서 보였던 모양인지, 집에 왔던 친척들은 종종 나에게 한번 먹어보라고 술을 조금 따라주곤 했다. 어린아이 입맛에 알콜은 단맛이 아무리 들어가 있어도 좋지 않았을 것이다. 부모님에게 확인 받고 술을 건내준 친척들은 어린아이가 술을 먹고 으 별로다 하는 표정을 짓는 것이 재미있었을 것이다.




그 기억이 희미해질 정도로 시간이 오래 지나서, 얼마 전 친척 모임을 한 적이 있었다. 친척이 모두 모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모일 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별도로 마련된 공간에서 소고기와 생선회 등 맛있는 음식을 먹는데 술이 빠질 수는 없었다. 그런데 평범하게 소주나 맥주를 먹는 것이 조금 아쉬워서, 이번엔 내가 하이볼을 타서 드리겠다고 자청했다. 마트에서 산 저렴한 위스키에 사이다나 탄산수를 섞고 거기에 얼음을 채운 뒤 라임이나 레몬 조각을 올려서 마무리하면, 음료수처럼 시원하게 마시기에 좋은 하이볼을 만들 수 있다.




생각보다 많은 친척들이 좋아해 주셔서 열심히 만들어 타 드렸다. 하이볼을 먹고 나서는 내가 일전에 가지고 있던 와인도 한 병 땄다. 캐나다 아이스와인을 동생에게 사정사정해서 기회가 있을 때 입수하는데, 사 놓고 먹지는 않았다가 지난 번에 친구들과 먹으니 딸기 풍미가 아주 인상적이어서 나중에 또 좋은 날이 있을 때 먹어야겠다 싶었던 것이다. 와인을 따서 조금씩 같이 먹으니 또 많은 분들이 호평을 해주셨다. 취하도록 먹는 것은 좋아하지 않지만, 이런저런 다양한 것을 먹어보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종종 새로운 음식을 먹는 느낌으로 술 마시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이제 좀 있으면 중학교에 들어가는 친척들도 그곳에 있었는데, 술 먹는 것이 궁금해 보였던 모양이다. 일가친척의 허락 아래에 아이들 세 명이서 술을 조금씩 먹어 보는데, 단 맛이 많이 나는 하이볼은 혹평이었다. 이걸 왜 먹어요 하는 말이, 아이들의 평가를 표현해 주었다. 하지만 따로 준비해서 나눠 먹은 와인은 맛있다고 했는데, 알콜 기운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단맛이 먹기에 불편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 친척들이 술을 먹고 얼굴을 찌푸리는 모습과 와인이 달다면서 신기해하는 그 모습이 나에게는 새로운 재미로 느껴졌다. 그리고 그 순간 옛날 생각이 났다. 어린 내가 술을 먹는 것을 지켜보던 친척들. 그때와 지금이 겹쳐보이는 순간에, 문득 그 순간이 너무나도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때 내가 술 먹는 것을 구경하던 사람의 자리에, 나이만 먹은 내가 있는 것 같아서.




P20221011_132521492_712441A7-F66A-4853-9508-F2EF665D9AE7.HEIC 친척이 술 먹이는 사람에서 친척에게 술 먹이는 사람이 되기까지, 변한 것은 나이뿐인것 같았다. 2022 10, 서울 화양동


keyword
작가의 이전글우레시노에서 먹은 나가사키 짬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