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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는 블랙홀이 될까요

볼 수 없는 것이 궁금해질 때

by 문현준

대학교 때 나는 글쓰기 동아리에 있었다. 가입도 하고, 회장도 하고, 바지사장도 했다.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었고,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있었다. 누구나 하는 그런 경험을 하고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종종 그때 알고 있던 사람들을 만난다.




몇 달 전 그 사람들을 잠실에서 만났다. 잠실에 일찍 도착해서 근처에 있다는 체코식 굴뚝빵 카페를 구경하고 나서, 근처 큰 프랜차이즈 카페에 앉아서 사람들을 기다렸다. 먼저 도착한 사람은 내가 동아리에 가입했을 때 회장을 하고 있던 형이었다. 형을 만나고 나서 가볍게 근황 이야기를 하다가 나는 말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그 인간관계는 아무 말이나 서스럼없이 던지는 그런 관계여서 그런 것 같다. 생각해 보니 정말로 일반적인 자리에서 다른 사람들과 할 만한 이야기는 아니지 않을까 싶었다.




저는 지구가 블랙홀이 되는게 궁금해요.




아냐 지구는 블랙홀이 안 돼. 태양이 블랙홀이 되는 거지.



몇 초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 바로 대답한 그 형의 말도 일반적인 사람들이 하는 대답은 아니겠지만, 아마 MBTI 식으로 말한다면 공감 없이 판단만을 내리는 T 같은것 아니었을까. 나 또한 T 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기에 바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태양이 블랙홀이 되던 지구가 블랙홀이 되던 그 먼 시간이 지나고 나서 어떻게 될지가 궁금한데 그걸 볼 일은 없을것 아니냐고, 그 전에 죽을테니까.




내가 알고 있는 시간이 다하고 나서 더 흘러간 시간이 그 끝에서 어떻게 될지 나는 궁금했고 갑자기 문득 그 생각이 들어서 그 자리에서 형에게 물어봤었다. 내가 알던 세상은 어떻게 될까? 백년이 지나고 천년이 지나고 만년이 지났을 때,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지난 번 일본의 가고시마에 갔었다. 가고시마 옆에는 사쿠라지마라는 활화산이 있다. 내가 갔을 때는 운이 없는지 분출하는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사쿠라지마는 하루에도 몇 번씩 작은 규모로 분출한다고 한다. 사쿠라지마에는 재미있는 사실이 있는데, 사쿠라지마 화산은 하나로 보이지만 사실 1900년 이후 몇 번의 분화를 거치면서 생성된 각각 다른 지질로 이루어져 있다. 지질 위에서 자라는 식물의 생태가 다름을 육안으로 알 수 있을 정도이다.




더 재미있는 것은 사쿠라지마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바다이다. 사쿠라지마를 둘러싸고 있는 바다는 사실 원래 바다가 아니라, 거대한 화산지형인 칼데라였다. 2만년 전 화산이 분화하면서 칼데라가 무너졌고, 그곳으로 바닷물이 들어와 바다가 된 것이다. 2만년 전에는 바다가 아니었던 곳에 바다가 생겼고, 사쿠라지마 화산은 지금도 분화하고 있다.




앞으로 2만년이 지나도 사쿠라지마 화산은 그대로 있을까? 그때 사쿠라지마 화산은, 지구는, 어떻게 변해 있을까? 더 오랜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은 어디서 무얼 하며 살고 있을까? 무엇을 먹고,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목표로 살아갈까?




나는 결코 알 수 없을 그 모습이, 요즘 들어 자주 궁금해진다.




나는 볼 수 없을 먼 미래의 지구가, 요새 들어 문득 궁금해진다. 2022 12, 서울 화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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