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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와 우는 학생, 간식먹는 선생님

어느날과 같은 일상에서 본 것

by 문현준

내가 사는 곳 근처에는 경륜장이 있다. 오랫동안 그곳이 뭐 하는 곳인지 알 지 못했지만 몇 년 전에 드디어 깨닫게 된 것은 그것은 정부가 인정한 도박장 이라는 점이었다. 문 여는 시간이 되면 그 앞에 어수선한 복장을 한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가 들어가고, 경륜장 건물 앞에는 도박 확률표나 잔커피 등을 파는 작은 수레가 하나 있다. 그리고 경륜장이 문 닫을 때가 되면 또 어수선한 복장을 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군대 가기 전 제주도의 큰 경마장을 갔을 때 봤던 것이 있어, 경륜장 근처를 지나갈 때면 나는 많은 생각을 하곤 한다.




경륜장 맞은 편에는 꽤 큰 학원이 있다. 큰 학원들은 학원 이름에 지역명을 넣는데 이 학원이 그런 학원이다. 학원이 있어서 그런지 근처에서 학생들이 돌아다니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밤늦게 집에 갈 때는 학생을 데리러 오거나 근처에 차를 대고 있는 부모님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근처 카페나 편의점에서 간식을 먹는 학생들도 볼 수 있었다. 원래는 이 학원은 고깃집이었지만 장사가 좀 안 되었는지 학원으로 바뀌어서, 지금까지는 학원이 잘 되고 있다. 근처에 다른 학원도 조금씩 생기는 것을 보면, 앞으로도 계속 장사가 될 것 같다.




경륜장과 학원 사이에는 버스 정류장이 있다. 버스를 타면 멀리 의정부까지도 가고, 강남역까지도 간다. 버스를 타면 시간이 오래 걸릴 때도 있지만, 의외로 먼 거리를 돌아가지 않고 바로 가서 지하철과 시간이 비슷하게 걸릴 때도 있다. 지하철을 타면 환승도 해야 하고 오르락 내리락 해야 하는 것을 고려하면 버스를 타면 아주 편할 때가 많아, 짐이 있으면 나는 버스를 타곤 한다. 버스를 기다리다 보면 앞에는 경륜장이 있고 뒤에는 학원이 있다.




그런데 어느날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앞쪽에서 갑자기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 보니 휠체어를 타고 경륜장 앞에서 나오던 사람이 전동휠체어가 엎어졌는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더니 달려들어서 휠체어를 세우고 사람을 부축해 전동휠체어에 올려놓으려 한다. 한 사람은 도로에 나가서 손을 흔들면서 지나가던 차가 옆으로 비켜 나가도록 수신호를 했다. 좀 있다가 그 모습을 보고 나온 경륜장 직원까지 더해서, 그 사람은 다시 전동휠체어에 타서 인도 위로 올라갈 수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다 뒤쪽 학원 건물을 보니, 건물 입구 쪽에 어떤 사람이 나와서 전화를 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눈시울이 붉은 것이 훌쩍이고 있었는데, 옷차림과 얼굴을 보니 학생 같았다. 누구에게 전화면서 무슨 이야기를 하면서 울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시험을 봤는데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아서 부모님께 전화하면서 울먹이고 있었을까. 아니면 친구 사이에 있었던 일 때문에 다른 친구에게 전화하면서 억울한 것을 이야기 하고 있었을까. 문득 그 모습을 보니 나는 그 학생과 비슷한 나이 대였을 때, 누군가에게 울면서 전화해 본 적이 있었나 하고 옛날 기억을 떠올리려 했다.




입구에 서서 울고 있는 학생 위로는 어떤 사람이 밖이 보이는 창가에 서 있었다. 창가로 보이는 그 모습의 옷차림이나 표정을 보니 학생은 아니고 선생님 같았다. 선생님 인 듯 보이는 그 사람은 창 밖을 보면서 간식을 먹고 있었다. 떡인지 초코바인지, 크지는 않은 작은 간식을 먹으며 밖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 선생님은 언제부터 밖을 보면서 서 있었을지, 아까 휠체어가 넘어지는 모습을 봤을지 궁금해졌다. 그 선생님은 거기서 무엇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각각 다른 사람들이 다른 시간을 보내며, 똑같은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내가 요새 느끼고 있는 시간처럼, 서로의 다른 이야기가 모르는 사이에 같은 시간 안에서 지나가고 있었다.




같은 시간 다른 세 가지의 풍경이, 신기하게 겹치고 있었다. 2023 07, 서울 을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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