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
오래된 단독주택에서 살다 보면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다. 좋은 것은 일반적으로 선호되는 주거지역이 아니다 보니 밤늦게까지 떠들어도 크게 문제가 안 된다는 것이다. 건물에 주거목적으로 있는 사람은 우리 집밖에 없다 보니 친구들과 늦게까지 떠들어도 문제가 없다. 나쁜 것은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더운데다가 건물 사이에 빈틈이 하도 많아서 벌레가 창궐한다는 것이다.세상에 어디 좋은 것만 있겠냐마는, 수만은 단점 중에 좋은 것을 어떻게든 찾으려 하며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아랫집에 다른 사람들이 이사를 왔다. 대략 엄마보다 더 나이를 먹은 것 같은 그 사람 이외에 다른 사람이 왔다갔다 하는 것은 못 봤지만, 좌우지간 얼마 전부터 아랫쪽의 간단한 작업 공방은 사라지고 그 공간에서 사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런데 엄마가 어느날 올라오다가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다. 우리 집에 오는 신문을, 아랫집 사람이 한번 보더니 아주 자연스럽게 뽑아서 겨드랑이에 끼고 올라가더라는 것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길바닥에 신문이 있으니 뽑아서 가지고 올라갔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신문 겉에는 집 주소가 적혀있고 신문을 받는 엄마 이름이 적혀 있다. 동네 통장을 하고 있는 엄마는 신문을 대략 4 부 정도 받는다. 요새같은 세상에 종이 신문을 꾸역꾸역 보내는 것이 통장 지원이라고 써 놓고 신문 발행부수를 올리기 위한 치열한 노력 같아서 종이 낭비란 이런 것을 말하는 것 아닌가 싶지만, 좌우지간 필요 없는 물건이라고 해도 다른 사람이 그걸 집어가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신문을 집어가다가 어느날은 택배를 집어갈 수도 있고, 하찮은 신문이니까 집어간다는 그 생각도 이상해서이다.
하지만 막상 이 일을 해결하여 더이상 신문을 못 가져가게 하려고 하니 또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내 눈 앞에서 신문을 가져가는 것을 보지 않은 이상 신문을 가져갔냐고 물어도 안 가져갔다고 잡아땔 것이 분명하다. 규칙적으로 생활하는 사람이라면 신문을 가져가는 시간이 비슷할 것 같아 언제 신문을 집어가는지 알아보려고 했더니 그것도 쉽지가 않다. 사람이 오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보안 카메라 같은 것이 있다면 좋겠지만 오래된 건물에 그런 것이 있을리가 없다.
결국 잡는 것이 힘들다면 이미 오고 있는 신문들이라도 끊어야 한다. 신문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는 신호라도 줘야한다는 생각에, 신문사에 전화해서 돈이고 뭐고 상관없으니 신문을 보내지 말아달라고 해 보았다. 그랬더니 이미 연간계약이 끝나서 신문을 꾸역꾸역 보내야만 한다고 한다.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신문 가져가지 말라고 종이를 인쇄해서 우편함 위에 붙여 놓았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효과는 없었다. 그런 걸 보고 신문 안 가져갈 사람이라면 애초에 남의 물건에 손 대지도 않았을테니.
가격으로 따지자면 싸구려 폐지값도 되지 않을 신문 쪼가리 몇 개 때문에 스트레스 받으면서 생각을 하고 있는 처지가 한심해졌다. 제대로 된 아파트나 고급 주거단지에서 살고 있다면 이런 쓰잘데 없는 일로 스트레스 받을 일이 있을까 궁금해졌다. 물론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똑같고 층간소음이나 이상한 사람, 사소한 물건 도둑은 어디에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평소에 생활하면서 느꼈던 주거공간의 문제가 사소한 계기로 또다시 부정적으로 충돌해 오는 느낌이다.
게다가 요새는 워낙 이상한 이야기가 많이 들리는 세상이다. 윗집이 너무 시끄러워서 올라갔더니 식칼을 휘두른다던가, 주차공간을 침범해서 이야기 하러 갔더니 장검을 꺼낸다던가, 자극적인 미디어 속에서 몇몇 사례만이 자극적으로 기억에 남아 일반적이지 않은 이야기들만 실제처럼 남긴다. 비록 그런 사례가 적긴 해도, 좌우지간 신경쓰이는 일은 맞는 것이다. 심지어는 상대방이 신문을 훔쳐 갔는데도 신문을 훔쳐가지 말라고 이야기 하는 그 상황에서도 걱정을 해야만 한다.
전력투구를 다해서 응보를 실현하기엔 피해가 겨우 신문 몇 쪼가리인가 싶다가도, 그 신문 몇 쪼가리를 훔쳐가서 사람을 피곤하게 하는 것은 뭐 대단한 악의가 아니라 아무 생각 없는 사소한 행동이라는 것에서 더 기분이 안좋아진다.
어쩌면 요새 일반적인 수준의 이웃이 드디어 나에게도 찾아온 것인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