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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밤에 피리를 불면 뱀이 나온다고 하셨다

미신에는 이유가 있을까

by 문현준

지금은 아니지만 어릴 적은 온 가족이 한 집에 모여 살았다. 2000년대 초반 전형적인 한국 가족의 집 아니었을까. 저녁은 온 가족이 모여서 먹거나 아빠 없이 먹기도 하고. 벽에는 사랑의 매 라는 몽둥이가 걸려 있고. 주말이면 가족이 몰려서 자가용을 타고 어디로 구경하러 나가거나 하는.




그때 초등학교에서는 다양한 교과목을 배우고 있었고 음악 시간이 되면 다양한 악기를 배우게 시켰다. 조작이 단순하면서 이런저런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악기가 보통 주 교육 대상이었는데, 리코더나 단소 같은 것은 항상 포함되어 있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단소는 어떻게 하면 단소를 잘 불 수 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단소 소리를 낼 수 있는가가 아이들의 주 고민거리였던 만큼 단소는 악기가 아니라 나무 막대기 정도로 인식되었다. 그에 비하면 리코더는 불기만 하고 손가락만 움직이면 되니 나는 리코더 소리내는 것에 관심이 더 많았다.




그런데 집에서 밤에 리코더를 불려고 하면 아빠는 나에게 밤에 리코더를 불지 말라고 했다. 왜 리코더를 불 면 안되냐는 말에 아빠는 말했다. 밤에 피리를 불면 뱀이 나오는 거야. 맨 처음에는 그 말을 들었을 때 아파트에 뱀이 어딨냐고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지만, 뱀은 없어도 벽에 걸린 사랑의 매는 있었기에 여하튼 밤에는 리코더를 불지 않았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 밤에 피리를 불지 말라고 했던 아빠의 말이 꽤 재미있었다. 뱀이 나오니까 밤에는 피리를 불면 안 된다 라는 말은 아빠가 살면서 느낀 경험 같지는 않았다. 누군가가 아빠에게 해 준 말이었을 것이고, 아빠는 나에게 그 말을 해 준 것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에게서 사람들로 전해지는, 사실과 무관한 전승. 어쩌면 미신이라고 볼 수도 있는 그것.




밤에 피리를 불면 뱀이 나온다는 미신은 그 자체만으로 본다면 말이 안 되는 것 같았다. 요새는 뱀을 보려면 동물원에나 가야 하고, 도심에 자생하는 뱀은 아마 없을테니까. 차라리 겁을 주려면 밤에 피리를 불면 바퀴벌레가 나온다고 하는 것이 나았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뱀이 나온다는 것이 아니라, 피리를 불지 못하게 하는 것 같았다. 옛날을 생각해 보면 밤은 다들 잠에 드는 시간이고 특히 옛날에는 더 일찍 잠에 들었을테니까, 밤 시간이 되었을 때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피리 같이 큰 소리가 날 수 있는 도구를 쓰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밤에 하면 안되는 것에 대한 미신은 또 다른 것이 있어서, 진짜로 미신 스러운 것도 있었다. 그것은 손발톱 깎기였는데, 아빠는 밤에 손발톱을 깎으면 그것을 쥐가 물어가서 똑같은 사람으로 나타난다고 했다. 그것도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럴싸한 이유가 있어 보였다. 밤은 보통 어두우니, 아주 작게 파편이 튀는 손발톱을 밤에 자르면 이곳저곳으로 튀어서 찾을 수 없게 되고, 다른 사람이 밟아서 여기저기가 더러워질 수 있기 때문 아니었을까.




옛날에 내가 알고 있던 미신들은 그것 자체에만 집중하면 별로 재미가 없는 것들이었다. 피리를 불면 뱀이 나온다, 쥐가 나와서 손톱을 먹고 사람이 된다 같은 것들. 하지만 미신 자체보다는 왜 그런 미신을 만들고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게 했을까, 누가 그걸 다른 사람에게 말하고, 다른 사람은 그걸 왜 나에게 말해줬을까.




그것을 생각하면 그 사람들이 원했던 것이 나에게 전해지는 것 같아, 흥미로웠다.



P20230604_200708964_CD221B95-BE98-4DB2-B493-E56FC5361933.HEIC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미신의 진짜 의도가, 문득 흥미로워졌다. 2023 06, 서울 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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