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 찾아 떠나는 여행
본격적으로 남쪽으로 내려가 가고시마에 가기 전 하루, 후쿠오카에서의 저녁 시간이 있었다. 지난번 동생과 여행 왔다가 혼자 조금 돌아다니면서, 나중에 또 온다면 꼭 가 보고 싶은 장소들을 점찍어 놨었다. 돌아다니다가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지 못해 구글 지도를 보면서 다시 확인해 즐겨찾기를 해 뒀던 곳이었다.
그날 저녁을 먹으러 가기로 결정해서, 다시 그곳으로 걸어가 보았다. 후쿠오카의 유명한 강변 포장마차 거리가 있는 곳에서 조금만 더 가면 있는 그 가게는, 사실 일본 가게 같은 느낌은 아니었다. 유럽에나 가면 있을 법한 간판과 벽돌 모양, 창문 디자인까지. 가게 간판에도 적혀 있다. 아이리쉬 펍 이라고.
사실 나는 아이리쉬 펍을 꽤 좋아한다. 아이리쉬 펍의 개념이 무엇인가 궁금해 지기도 하지만, 맥주와 간단한 안주를 먹을 수 있고 안쪽에는 유럽 분위기의, 정확하게 말하자면 영국 분위기의 느낌이 나는 곳 아닐까 싶다. 벽돌 느낌이 나는 벽 인테리어에다가 바테이블에는 높은 의자가 있고, 안쪽에서는 축구나 크리켓 방송이 나오는 그런 곳.
나는 아이리쉬 펍을 꽤 좋아해서 옛날 교환학생 할 때 영국에 몇 번 가면 꼭 가는 아이리쉬 펍이 있었다. 영국에 있으니 브리티쉬 펍이라고 불러야 하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분위기는 비슷하다. 안쪽엔 피아노와 당구대가 있고, 점심에 방문해 음식을 먹으면 어떤 사람이 피아노를 치고 있기도 했다. 저녁에 가면 당구를 치는 사람도 있고, 티비에서는 스포츠 경기가 나왔다. 항상 똑같은 그 분위기가 좋았다. 사장의 부인인 것 같은 중국인 여자가 나를 볼 때마다 중국어로 말을 걸다가 사장에게 제지당하는 것도 똑같았지만 말이다.
여하튼 아이리쉬 펍을 좋아하지만 한국에서는 묘하게 찾기가 어렵다. 그런데 지난번에 후쿠오카 밤거리를 걸어다가다 딱 들어가 보고 싶은 아이리쉬 펍이 있어서, 나중에 꼭 가봐야겠다고 생각하고 드디어 오게 된 것이다.
일본어를 거의 못 하지만 여행하는데는 큰 문제가 없다. 일단 요새는 정말 신기할 정도로 번역기가 잘 되어서, 메뉴판에다가 번역기를 들이대면 번역기가 사진 위에다가 무슨 글자인지를 알려준다! 일본어를 읽지 못하는 나에게 아주 좋다. 게다가 후쿠오카는 외국인 여행객이 많아서 그런지, 메뉴판에 영어도 같이 적혀 있다. 아이리쉬 펍이니까 메뉴판에 영어가 있는 것이 좀 더 분위기에 맞아서 그런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말이다.
메뉴판을 천천히 훑어보니 아이리쉬 펍 스러운 메뉴들이 많다. 그 중에 가장 눈길이 가는 것은 소세지 이다. 소세지와 매시 포테이토가 같이 나오는데, 옛날 소세지라고 적혀 있던 분홍 소세지를 생각하면 아직도 밖에서 소세지 사 먹는 것이 악간 떨리는 요즈음이지만, 그래도 맛있을 것 같아 한번 주문해 보았다. 기네스 흑맥주와 함께.
먼저 나온 기네스 흑맥주를 조금 마시고 있으니 소세지가 나왔다. 긴 접시에 매시포테이토를 올리고, 그 위에 그릴 자국이 있는 소세지를 올리고 홀그레인 머스타드를 덜어 올렸다. 간단하면서도 빈틈없는 구성이 내 취향이다. 소세지를 한 입 먹어 보았다. 그런데...왜 맛있지? 거친 고기 입자가 씹히는 느낌이 정말 내가 좋아하는 취향의 소세지였다.
소세지를 먹고 나니 그냥 일어나기엔 조금 아쉬워서, 메뉴판을 보면서 다른 메뉴가 어떤 것이 있을까 보았다. 사이드 메뉴에 있는 하몽이 보였다. 맥주 한 잔과 함께 하몽도 또 주문해 보았다. 하몽도 맛있다. 과하지 않게 조금 더 배를 채울 수 있는 단백질로, 짭잘한 맛이 맥주와 조화가 좋았다. 모든 음식이 맛있다니, 아마 내가 가게 인테리어를 마음에 들어해서 콩깍지가 씌운 것 아닐까 싶은 순간이었다.
계산을 하는 와중에 직원이 후쿠오카 다음에 어디로 가냐고 물어 본다. 가고시마에 간다고 이야기 하더니 놀란다. 보통 가고시마에 가는 직원은 별로 없는 모양이었다. 음식도 맛있고 분위기도 좋아서, 나중에 또 와야겠다 생각하며 거리를 나섰지만 뭔가 그냥 돌아가기엔 아쉬웠다. 왜냐면 언제 또 후쿠오카에 오고 음식점들을 돌아볼 수 있을 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약간 아쉬워서, 근처에 가 보고 싶었던 다른 가게도 가 보기로 했다. 위스키를 파는 바 였는데, 지나가면서 얼핏 봤던 분위기가 또 내 취향이라 즐겨찾기 해 뒀었다.
내부 공간은 좁아서 가게 안에 있는 사람이 큰 소리로 이야기 하면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을 정도였지만, 빈틈없이 꾸며둔 분위기는 내 취향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신경쓰이는 것이 있었는데, 내부 흡연이 가능한 장소라는 것이었다. 일본은 음식점 내부에서 흡연이 가능한 장소가 많아, 가끔씩 음식점이나 술집을 가면 바로 옆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경우가 있었다. 이번에 간 장소에서는 바로 옆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지는 않았지만, 같은 공간 안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담배연기를 맡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내부 분위기는 내 취향이라 거기서 한 잔은 더 하고 싶었고, 뭘 먹어 볼까 하다가 요새 한국 사람들에게 유명하다는 일본의 위스키 한 잔을 먹어 보았다. 후쿠오카에서 찾아갔던 술 파는 곳 마다 한국 사람들이 두리번거리면서 찾고 있던 위스키였다. 위스키를 잘 모르는 나는 꽤 비싼 위스키 한 잔을 먹어보면서 이게 그렇게 유명하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렇게 위스키까지 한 잔 먹고 나서, 조금 걸어 나카스 강 위에 떠오른 밤거리를 구경했다. 항상 여행에서 하던 생각들을 떠올렸다. 이번엔 여길 못 갔지만, 다음번엔 한번 와 보면 좋겠다, 그런 생각들. 언제 그곳에 다시 갈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하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