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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만든 레몬차

갑자기 떠오른 그때의 기억

by 문현준

노트북이 고장났다. 생각해 보면 거의 9년을 써 가던 노트북이라, 이제 슬슬 고장날 때가 되었다 생각하고 있었다. 내부 전지가 다 떨어져서 껐다 켤 때마다 시간을 설정해 주어야 하고, 화면이 이상하게 깜박거리고. 그러다가 껐다 켰는데 부팅 후 계정 로그인이 되지 않았다. 작업을 하는 도중이었지만 나는 직감했다. 드디어 완전히 고장나 버렸구나. 다음은 뭘까. 4년 쓰고 리퍼 바꿔서 1년 더 쓰고 있는 핸드폰일까?




좌우지간 노트북이 고장났다는 것은 평소에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회사 다니고 있을 때는 주말에 카페에 노트북 들고 가서 작업할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저것 준비하면서 요새는 카페에서 노트북으로 작업하는 일이 많아서, 거진 6시간을 카페에 앉아있기도 했다. 노트북이 고장났다는 것은 그걸 못 한다는 것이고, 집에서 해야한다는 것이었다.




오래된 주택에 있는 컴퓨터는 집 벽 바로 옆에 붙어 있어서, 냉기가 올라온다. 특히 겨울에는 더 심하다. 유난히 따뜻한 날이 많은 겨울인데 오늘은 온도가 10도 이상까지 올라가는 날이었지만 집 벽에서는 냉기가 스멀스멀 나와서, 손이 시리다고 느낄 정도였다. 할 일이 많아서 하나씩 하나씩 해나가다가도, 왜 이렇게 추운가 하는 생각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났다. 2016년 교환학생 할 때 만들었던 레몬차였다. 독일에서 교환학생을 하던 나는 가을쯤이 되어서 레몬차를 만들었던 것 같다. 부엌을 공유하던 기숙사에서 나는 예쁜 찻주전자 큰 것을 발견했고 거기에 레몬차를 타 먹으면 맛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레몬과 설탕을 사서 슬라이스 한 다음 레몬차를 만들었다. 투명한 유리 용기에 담아둔 레몬차는, 아래쪽은 하얀 설탕이 있고 녹은 레몬차 위에는 레몬슬라이스가 떠다니는 모습으로, 내 방 선반 위에 놓여 있었다.




레몬차가 완성되고 나서 룸메들에게 주기도 하고, 나도 타 먹었다. 아직까지는 추운 날씨가 아니라 가을의 낙엽이 짙게 다가오는 때였는데, 그러다가 레몬차를 몇 번 담아 먹었던 유리 주전자를 내가 깨 버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유리 주전자의 뚜껑이 따로 분리되는 형태였는데, 내가 유리 뚜껑을 떨어뜨려서 부수고 만 것이었다. 공용공간 물건을 파손한 경험이 처음이었던 나는 미안하다면서 어디서 샀는지 알려주면 새것을 사 오겠다고 했었다. 물론 룸메는 그 정도는 괜찮다면서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고 했었지만.




벌써 7년이나 지난 옛날의 일에, 시간이 한참이나 지나서 나는 냉기가 스산하게 흐르는 집의 벽 옆에서 컴퓨터로 이것저것을 하고 있다가 갑자기 그 기억을 떠올리는 것이었다. 그때 만든 레몬차, 그때 기숙사 방에서 보던 창의 햇빛, 그때의 그 기억들을.




인생에 밝아 보이는 것이 없을 때 밝은 것을 떠오르려고 하는 것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그렇게 떠오를 수 있는 밝은 것이 있다는 것은 정말 다행인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집 벽의 냉기를 느끼며 개인작업을 할 때, 문득 독일에서 만든 레몬차가 떠올랐다. 2023 06, 서울 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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