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그렇게 귀하다고?
첫날 가고시마에 도착하고 나서의 저녁, 내 목표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가고시마의 밤거리를 충분히 구경하는 것,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위스키 사기 였다.
사실 나는 어디 여행을 갈 때 여긴 이게 유명하다더라, 이건 꼭 사야 한다더라, 하면서 적어두고 전투적으로 찾아 다니는 편은 아니었다. 패키지 터키 여행을 갔다온 부모님의 손에 게르마늄 팔찌가 끼워져 있다던가 하는 모습이 떠올라서는 아니더라도, 물건을 사기 위해 여행지에서 시간을 쓰는 것은 좀 내가 생각하는 여행과 다른 것은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나에게 명확한 목표가 있었다. 동생이 이번에 해외에 갔다 오면서 내가 부탁한 와인을 사 와서, 나는 동생이 요청한 술을 사다 주기로 한 것이었다. 동생이 부탁한 술은 요새 한국 사람들에게 엄청나게 인기가 높다는 일본의 위스키였다. 나도 그 이야기는 몇 번 들어서, 가고시마 밤거리를 구경하면서 사 보기로 했다.
그렇게 가고시마 시내의 시로야마 전망대 구경을 마치고, 숙소 체크인을 마치고 짐까지 풀어놓은 뒤 밤거리 구경을 나섰다.
사실 낮부터 이미 어디서 술을 사야 하나 생각을 하면서, 걸어다닐때 술 파는 곳은 한번씩 다 돌아다니면서 어디서 뭘 취급하고 있는지 확인했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내가 찾고 있는 술들은 없었다. 후쿠오카에 도착하고 나서부터 위스키들을 찾아 가게를 돌아다녔지만, 내가 찾는 위스키들은 어디에서도 구경할 수 없었다. 그리고 모든 주류 매장에서는 한국 사람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아마 내가 찾는 것과 같은 술을 찾고 있지 않았을까.
최대한 여기저기 구경을 할 때 주류 매장이 있는 곳을 둘러보면서 찾아봤지만, 나와 동생이 찾던 술은 없었다. 가게 사람에게 위스키 앞글자만 말했는데 없어요 하면서 손을 흔들기도 했다. 밤거리를 구경하며 이곳저곳을 구경했지만 도저히 코빼기도 찾을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이날은 포기하고 다른 날 다른 장소를 확인해 봐야 하나 싶었다.
그런데 지나가다 보니 아주 작은 주류 매장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텐몬칸 번화가 뒤쪽 골목 사이에는 그런 주류 매장들이 있었다. 구글 맵에 검색도 안 되는데, 저녁 늦게 영업을 시작해서 새벽까지 장사를 하는 곳. 가게 이름이 주류 배달이라고 되어 있는 재미있는 곳이었는데, 사이즈가 아주 작고 이름부터가 근처 가게에 주류 배달 위주로 영업하는 곳일거라는 생각에 구경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어차피 지나가는 김에 한번 궁금해서 들어가 보자 하는 생각으로, 들어가 보았다. 그리고 그곳에 있었다. 위스키가. 그것도 여러 병이.
가격은 내가 인터넷에서 알아봤던 것과 비슷했는데 면세를 진행할 수 없었고, 술이 들어가 있는 종이상자나 박스가 없는 것이 신경쓰였다. 하지만 가격이야 그정도라면 크게 문제 되지 않는 수준이고, 포장 박스가 없다는 것은 다른 곳에서도 마찬가지 아닌가 싶어서, 동생에게 줄 술을 충분히 구매할 수 있을 것 같아 바로 구매했다. 지금 생각해도 재미있다. 내가 들어가 볼 생각을 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어디에서도 찾지 못할 위스키였을테니까.
동생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을 구했다는 생각에 구매한 술을 바로 숙소에 가져다 놓고, 조금 더 편하게 텐몬칸의 밤거리를 구경했다. 텐몬칸은 밝고 북적이는 큰 길이 있고, 그 뒤쪽 뒷골목에 음식점과 이런저런 가게들이 있었다.
그런데 한국과는 조금 다른 일본의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펼쳐져서 조금 당황했는데, 라멘집 옆에 유흥업소가 있고, 그 옆에 또 소바집이 있고 그 옆에는 또 유흥업소가 있고, 유흥업소와 가게 직원이 나란히 나와서 호객행위를 하고 있고 이런 식이었다. 안전상에 위험을 느낀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마음 편하게 거리를 촬영하거나 하기에는 조금 꺼려지는 것이 있었다.
조금 더 마음 편하게 거리를 돌아보기에는 내 취향이 아닌 것 같아서, 뒤쪽 골목의 사거리에 있는 하이볼 가게를 들어갔다. 나중에 한 것이었지만 그 하이볼 가게는 산토리에서 운영하는 하이볼 가게였다. 나는 외부의 이국적인 디자인을 보고 들어갔지만.
자리에 앉아 하이볼과 함께 나폴리탄 스파게티를 먹었다. 나폴리탄 스파게티를 알고 있지만 별로 많이 먹어본 적이 없었는데, 케찹 맛이 강하게 느껴지는 야끼소바 라는 느낌이 강했다. 옆쪽에는 외국인 손님이 있었는데, 내가 영어 메뉴를 달라고 하니 영어메뉴 원하면 여기있어 이러면서 건내주는 것이 재미있었다. 좀 더 이야기를 나눠봐도 재미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시간 한참 지나고 나서야 들었다.
가게는 크게 붐비지 않았지만 열린 창문 밖으로 사람들이 오가는 것을 구경하고, 가게 내부 이런저런 장식을 바라보는 것도 좋았다. 메뉴판을 구경하면서 하이볼 한잔을 더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뭔가 좀 더 로컬스러운 가게를 가 보고 싶었지만, 음식점들과 유흥업소가 어지러이 섞여있는 그 분위기가 나에게는 조금 어색하게 느껴졌다.
비록 나는 어울리기 힘든 그 밤거리의 분위기였지만, 오랜만에 간 혼자만의 일본에 아 여기는 이랬구나, 하는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