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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상태로 식사하면 생기는 일

그날 라멘을 먹으면서 하던 생각

by 문현준

나는 네이버 블로그를 오래 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해서 지금까지 계속해서 하고 있는데, 글 쓰는 주제는 항상 바뀌어 왔지만 최근 들어서 꾸준히 하는 것은 후기 남기기이다.




새로운 장소에 가거나 물건을 사용하고, 요리를 해 먹고 나서 소감을 적을 때도 있지만 가장 열심히 기록하는 것은 아무래도 음식점 후기이다.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고 나면 몇 가지 사진을 찍어서 후기를 쓴다. 너무 복잡하게 쓰지는 않고 그냥 간단하게 소감을 적는다.




원래 음식 사진을 찍어 두는 것을 좋아해서 열심히 찍어둔 사진으로 블로그에 기록을 남겨 두면, 나중에 그것을 보면서 옛날 생각도 하고 내가 그때 이런 부분에 신경쓰면서 구경을 하고 음식을 먹었구나 하면서 생각하게 되기도 한다. 음식을 좋아하고 음식을 먹는 공간도 좋아하다 보니, 옛날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해 온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가 본 음식점은 어지간하면 사진을 찍고 후기를 남긴다. 굳이 후기를 남기고 싶지 않은 음식점이 아닌 이상, 그렇게 한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 을지로 쪽을 많이 왔다갔다 하면서 근처의 새로운 카페들과 음식점을 갈 일이 많았다. 몇 곳은 굳이 기록을 남길 필요는 없겠다 하는 생각이었지만, 어느 라멘집은 꽤 흥미로워서 후기를 남기고 싶었다. 나는 짧은 시간 안에 그 곳을 두 번 정도 가서, 각각 다른 메뉴를 먹어 보았다. 평소대로 갔다면 나는 몇 가지 사진을 찍어서 후기를 썼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나는 정말 말 그대로 기진맥진한 상태로 들어가 있었다. 나는 힘없이 들어가서 키오스크를 딱딱 눌러서 먹고 싶은 메뉴 혹은 지난번에 먹어 본 적이 없는 메뉴를 골라서 자리에 앉아 물을 마쉬며 숨을 쉬다가, 나온 라멘을 먹었다. 최근 들어서 그렇게 기진맥진한 상태로 음식을 먹은 기억이 없어서, 음식을 먹으면서도 새로운 음식 먹는 것을 좋아한다기보다는 드디어 밥을 먹는구나,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음식을 먹기 전에 찍은 것이라고는 메뉴판이나 매장 혹은 외부 간판은 커녕 음식사진 한 장 뿐이었다. 음식을 먹으며 재미있어하는 느낌이 아니라, 빨리 먹고 정리해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그때 그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는 느낌이 있어서인지, 그 라멘집은 다시 한번 가 보고 싶어졌다. 모든 메뉴를 먹어 본 곳은 굳이 두 번 가려고 생각 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너무 지쳐서 식사를 즐길 수 없었던 그 음식점에, 다시 가보고 싶어졌다. 2023 08, 서울 창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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