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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준 Dec 31. 2023

게임 안 하는 남자

해 본 적 없는 것이 지루해지면

나는 옛날부터 게임 하는 것을 좋아했다. 지금도 동생과 종종 하지만, 그건 동생과 함께 무언가를 해나가는 과제나 스포츠에 가까운 느낌으로 즐기곤 한다. 내가 정말 생각하는 게임이란 체험과 경험이다. 영화나 책을 보고 새로운 장소에 가는 것처럼, 게임도 그렇게 체험하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그런 게임은 안 한지 오래 되어서, 아마 마지막으로 한 것이 몇 년 전인 것 같다. 그러다가 몇 달 전 시간이 생겨서, 동생이 가지고 있던 게임기를 빌려달라고 했다. 게임기를 텔레비전과 연결하면 할 수 있는 게임이 있었는데, 내가 정말정말 해 보고 싶었던 게임이 있었던 것이다. 일전에 전작을 너무 재밌게 했던 나는 최신작이 나오고 나면 나중에 꼭 해봐야겠다고 다짐했었다.




동생으로부터 게임기도 받아오고, 동생에게 돈을 내서 게임도 사서 설치도 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집에서 그 게임기를 연결하는 것도 일전에 그 게임의 전작을 해 보기 위해서가 처음이었다.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언제라도 할 수 있게, 게임도 설치를 마쳐두었고 이제 게임을 켜서 즐기기만 하면 되었다.




그런데 막상 게임을 하려고 보니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준비된 것을 모두 하고 즐기는데 시간이 대략 40시간 정도 걸릴 것 같았다. 회사 일을 하고 있을 때는 평일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았고, 주말에도 바빴다. 40시간동안 즐길 컨텐츠가 있다면 4시간씩 10번을 투자해야 한다는 것 아닌가?




물론 계획을 잘 세운다면 충분히 재미있게 할 수 있겠지만, 천천히 공을 들여야 그 컨텐츠를 모두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이상하게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요새 시간을 들여야 진가를 볼 수 있는 컨텐츠들은 사람들이 점점 찾지 않고 있다. 몇 시간 짜리 영화, 한 달짜리 책 같은 것들. 몇 분이나 몇 초짜리 영상 혹은 세줄요약이 인기다.




하지만 단순히 여러 번에 걸쳐 공을 들여야 하는 컨텐츠라고 해서 손 대기가 꺼려지는 것일까. 그냥 재밌게 하면 되는데 왜 계속해서 하지 않고, 시간이 없으니까, 다른게 바쁘니까, 게임 하는 거실이 너무 추우니까, 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게임 할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일까. 이미 그 게임을 하려고 돈도 썼는데.




어쩌면 나는 그 게임을 해서 얻는 즐거움과 새로운 경험이, 나에겐 크게 대단한 의미가 없는 것 아닐까 하는 회의감에 빠져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흥미로운 스토리와 설정, 몰입감으로 나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줄 수 있는 그 게임이 나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어차피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세계인데.




물론 살다 보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긍정적인 영향을 받을때가 많지만, 내가 그 게임을 하지 않는 것은 그런 이유가 아닌가 싶었다.




게임을 경험하는 것이 나에게 큰 의미가 없다는 회의감에, 게임을 즐기지 않고 있다. 2023 06, 서울 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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