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현준 Mar 05. 2024

왜 이걸 이렇게까지 하는거야?

이런 공간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한 이유

12월인가 1월이었던가, 아마 1월이었던 것 같다. 새해에 같이 모여서 친척들과 같이 밥을 먹고 을지로에 준비한 공간을 둘러보기로 했었다. 다행히 새해에 문 여는 고깃집이 있어서, 외국인들에게도 먹힐 수 있게 깔끔하게 정리한 것이 컨셉으로 보이는 듯한 가게에서 고기를 먹고 비싼 스위트와인을 나눠먹었다. 별로 많이 마시지도 않았는데 취기가 오르는 것 같아 내 건강은 어디갔는가 고민하며, 을지로 입구 쪽에서 걸어서 을지로3가 근처의 공간까지 걸어갔다.




충무로부터 시작해서 종묘까지 이어지는 오래된 상가 라인에 준비한 공간. 다들 들어와서 둘러보고 방명록에 한 줄씩 적어달라고 했다. 사람들과 종종 베이킹을 하는데 별도 공간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준비했다고 설명하니, 오랜만에 만나서 얼굴 보고 이야기한 아빠가 말했다. 그건 알겠는데 이거를 왜 이렇게 까지 하는거냐, 지금 이 시점에서. 그렇게까지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느냐.




만약 이 공간을 소재로 글을 쓴다면 그것부터 시작해 보면 재미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거기에서 시작해 보기로 했다. 왜 이걸 이렇게 까지 하는지, 지금 이 시점에서 하는 것인지. 계획한 것을 다 썼을 때 공간이 아직 남아 있기를 바라며, 한번 시작해 보기로 했다. 내가 중요하게 믿는 그리고 좋아하는, 기록해 나가는 것을.




**




나는 옛날부터 요리를 좋아했지만 몇 년 전부터는 베이킹을 좋아했다. 그때 사람들을 만나면서, 만들어 보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만들어서 나눠주곤 했다. 해 보고 싶은 베이킹 메뉴가 있으면 인터넷에서 찾아서 만들어 보고 결과물을 조금씩 포장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선물해 주었다. 요새 다시 생기고 있는 대만 카스테라에 관심이 생겼던 적이 있는데, 아무리 해도 마음에 들게 나오지 않아 만들어진 것을 열심히 포장해서 다른 사람들을 주곤 했다.




그때 요리와 다른 베이킹의 장점을 알게 되었는데, 만들어 낸 것을 다른 사람들 주기에 좋다는 것이었다. 나는 요리를 좋아하고 종종 스테이크를 해 먹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스테이크를 해 주기는 쉽지가 않다. 집에 초대해서 해 주는 것도 그렇고 만든 것을 포장해서 주는 것도 그렇다. 하지만 베이킹은 다르다. 한번 만들 때 여러개가 나오고, 모든 것을 낱개 포장할 수 있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 해도, 만든 것이라면서 한번 드셔보세요 하면서 선물하기 좋다. 많이 먹지 못하는 나에게는 다른 사람에게 선물해 주는 것이 더 효율적으로 결과물을 소비하는 것이기도 하고.




그래서 그때 몇 가지 베이킹을 해 보다가, 다른 메뉴에도 관심이 생겨서 이것저것 해 보았다. 옛날 고등학교 때 베이킹 관련 정보가 없어서 광화문 근처의 서점에서 컴퓨터에 레시피 서적을 검색해다가 레시피를 찾고, 방산시장에서 물건을 사다가 만들던 그 때와는 많은 것이 달라졌다. 인터넷으로 정보를 찾기도 쉽고, 유튜브로 영상을 보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집에서 혼자 이것저것 만들어 보기엔 좋은 환경이지만, 어떤 것들은 잘 되기도 했고 어떤 것들은 잘 안 되기도 했다. 그래도 베이킹을 해 보면서 이것저것 하는 것은 만족스러운 경험이었다.




하지만 집에서 베이킹을 하는 것은 만족스럽기만 한 경험은 아니었다. 집은 다양한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고 그 목적에 베이킹은 없었다. 특히 공간에 맞춰 살아가야 하는 지금 거주 환경에서는 더욱 그랬다. 오래된 건물이라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웠는데, 내가 주로 베이킹을 하는 공간은 겨울에 입김이 나올 정도로 추웠다. 쿠키를 만들기 위해서는 버터가 적당한 온도로 유지되어야 했는데, 날씨가 너무 추워서 버터가 빨리 굳어버려 쿠키를 만들 수가 없을 정도였다.




어느날 또 추운 날씨에 쿠키를 만들다가, 잠시 다른 작업을 하는 사이 버터가 딱딱하게 굳어서 실리콘 주걱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딱딱해진 것을 본 순간 그냥 만사가 다 귀찮아졌다. 베이킹을 위해 준비하지 않은 공간에서 베이킹을 하면서 생기는 불편함과 여기저기 난잡하게 쌓여서 정리되지 않은 도구들 그리고 그 모습이 가족에게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그때부터 생각했던 것 같다. 별도의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 원한다면 나 혼자서 쓸 수 있는, 마음 편하게 베이킹을 할 수 있는 공간. 그런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어느날 나는, 별도의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2024 01, 서울 종묘광장공원


작가의 이전글 시간 남을때 뭐하세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