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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준 Mar 13. 2024

사는 공간과 작업하는 공간

뭐든지 할 수 있는 곳은 없다

나는 요리 하는 것을 좋아하고 그중에서도 베이킹 하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집에서 베이킹 하는 것이 불편할 때가 많았다. 싱크대와 작업대 사이의 공간이 너무 길다던가, 실내 온도가 작업을 하기에 적절하지 않다던가 하는 수많은 이유가 있다. 그래서 나는 온전히 베이킹만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하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좀 더 마음 편하게 베이킹을 할 수 있을텐데.




하지만 오직 그것 때문에 외부에 돈을 들여 가면서 베이킹 할 공간을 준비해야겠다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밖에서 하면 더 좋을 것 같다 라는 생각이 든다면, 보통은 어떻게든 집 안에서 참아가면서 그것을 해내고 마련이다. 집에서 씻는 것이 불편해서 종종 목욕탕을 간다고 해서 집 밖에 개인 목욕탕을 만들 생각을 하지는 않으니까. 내가 집 밖에 그런 공간을, 베이킹을 할 수 있고 또 다른 것도 할 수 있는 공간을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단지 베이킹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나에게 사는 공간이라는 것은 개인적인 삶을 준비하는 공간이었다. 그 공간은 보통 정리되어 있지 않아서 어수선하고 너저분했다. 보통 삶을 위한 공간은 내 의도대로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지내면서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들어가서 웅크리는 내 몸을 맞춰야 하는 것이지, 내 몸에 맞춰서 공간을 뜯어 고칠 수 없고 공간을 선택할 수도 없다. 그런 운 좋은 사람들이 있지만 적어도 나는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사는 공간과는 조금 다른 공간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단순히 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필요한 몇가지 일을 하고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 내가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은 숨기고, 내가 원하는 일들을 하면서, 그렇게 준비한 것을 보여줘도 문제가 없을 공간. 갈수록 작아지는 집 안에서 작업하고 모임을 가질 수 없게 된 사람들이 찾는 파티룸이나 공유주방 아니면 카페 같은 공간이 아니라, 온전한 나만의 공간.




내가 집에서 작업을 하고 사람들을 만날 때 노출되는, 내가 보이고 싶지 않은 것들이 없는 공간. 너저분하게 널려 있는 것을 대충 안 보이는 곳에 가려두고 쳐 둔 커튼과 닫아둔 문같이,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생길 수 있는 그런 흐트러진 무질서함이 존재하지 않는 곳. 그러면서도, 내가 좋아하는 것과 내가 어떤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 수 있는 공간. 내가 살지는 않지만, 내가 작업할 수 있는 공간.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의도한 그런 곳.




꽤 오랫동안 가족과 함께 살면서 온전히 분리된 내 공간을 갖지 못했던 내가 정말 원하던 공간. 내가 베이킹을 하고 개인 작업을 하면서 가족이나 다른 누군가의 시선과 거리를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곳. 물리적으로 분리되어, 누가 몇시에 들어오고 나가는지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곳.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때 이미 정해진 공간 안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고려하지 않아도 되며, 반대로 내가 살아가는 공간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다른 사람을 만난다는 것을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공간.




나는 아주 옛날부터 그런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완전한 나만의 공간이 있기를 원했다. 2024 01, 서울 세운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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