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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준 Mar 19. 2024

비싼 것과는 상관없는 이야기

동생이 고른 숙소가 불편했던 이유

일년에 한 번쯤 동생과 일본여행을 간다. 동생도 나도 일본 여행 가는 것을 좋아하는데, 일 년에 한 번은 동생이 해외여행을 갈 수 있어서 가급적 그때 시간을 맞춰서 가곤 한다.



 

여행을 가기로 했으면 이제 해야 할 것과 숙박을 정해야 하는데, 동생은 크게 까다롭게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없는 것 같았다. 아직 날씨도 모르는 상황이니, 가고 싶은 곳과 하고 싶은 것을 정리만 해 놓고, 이제 중요한 것을 정할 시간이다. 숙소이다.



 

사실 동생은 꽤나 비싼 숙소를 좋아한다. 돈 써서 여행 가는데 돈 좀 써서 더 비싼 숙소에 가면 어떠냐는 것이다. 나는 숙소에서는 어차피 잠만 잘 것인데 짐 보관할 수 있으면 상관없으니 호스텔이나 캡슐호텔도 문제없지 않냐는 입장이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내가 혼자 여행할 때 숙소에 쓰는 돈 2배 이상의 돈을 더 내 가면서 호텔에서 숙박하다니, 그 돈이면 물건을 하나 더 살수 있는 것 아닌가 싶다. 동생은 어차피 여행 갔는데 좋은 호텔에서 숙박하면 좋은 것 아니냐 이야기한다.



 

동생이 말하는 성급이나 유튜브에 나온 유명한 호텔들은 나와는 지향점이 너무 다른 것이기에 이해할 수 없지만, 사람의 성향은 원래 이해하려고 하면 할수록 좋지 않은 생각이 드니 더 깊이 생각하지 않고 아 저사람은 저걸 좋아하는구나, 하는 생각으로 마무리 하는 것이 좋다. 동생이 1년에 한 번 갈수 있는 여행이니 내가 최대한 맞춰 준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일전에 동생이 오사카에서 갔던 호텔을 마음에 들어 해서 다시 그곳을 가 보기로 한다.



 

그때는 정말 비싼 가격으로 갔는데 이번에는 다시 검색해 보니 둘이서 합쳐서 꽤 나름 합리적인 가격이다. 동생은 개인실을 좋아하지만, 그 호텔에서 숙박해 보고 싶어해서 둘이서 같이 방을 써서 같은 호텔에서 머무르기로 했다. 이번엔 합리적인 가격이라 그렇다 쳤는데, 동생과 함께 일본을 갔다 오고 나서 그 다음 가족여행으로 제주도를 가게 되었다. 제주도 여행을 정하는데 또 동생이 고급 호텔에서 숙박을 하고 싶어한다. 이번에는 기분이 좀 언짢아졌다. 제주도 가서 호텔 시설을 얼마나 이용할 지도 알 수 없는데 고급 호텔을 쓴다고? 돈을 다 같이 내는 여행에서?




생각해 보니 옛날에 숙소를 예약했을 때는 나름 분업이 정해져 있었다. 내가 모든 것을 다 정리하고, 동생이 비교적 돈을 많이 냈다. 그래서 동생이 비싼 숙소를 쓰고 싶다고 하면 그런가보다 생각했었다. 그런데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 형이 되서 동생과 함께 여행을 가는데 동생이 돈을 더 많이 내게 하기에는 이상하다. 그렇다고 해서 친구 사이 여행처럼, 너가 이 숙소 가자고 했으니까 이건 너가 내야 한다고 하기도 이상하다. 아마 그래서, 최근 들어서 동생이 비싼 호텔을 숙소로 쓰자고 하면 기분이 이상해지는 모양이다. 나는 별로 안 쓰고 싶은 숙소를, 동생이 가자고 해서 예약해야 하는데, 돈은 나도 같이 왕창 내야 하니까.




왜 그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을까. 동생은 그저 내가 돈을 별로 안 쓰고 싶어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다시금 생각을 해 보니, 그저 돈을 쓰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여행은 항상 다양한 목적이 있고 돈이야 쓸 수 있는 거니까. 단순히 나는 별로 머무르고 싶지도 않은 고급 호텔을 동생이 가자고 해야 하니까는 아니었다. 내가 고급 호텔을 이용하다 보면 드는 생각 때문이었다. 결국 사람들이 죽을 때까지 살지 못할 주거 공간을 시간제로 빌려서 수박 껍질 핥아먹듯이 기분이라도 내 보고 싶어하는 것 아닌가 싶어서. 내가 그 공간에 머무를 수록 나에게 다가오는 것은 편안함보다는 그 공간의 부재라서. 나는 이런 공간을 가질 수 없기에 이렇게 하루씩 거금을 들여서 이 공간을 쓰고 있구나. 어차피 못 가질테니까.




현재 가질 수 없는 그리고 어쩌면 앞으로도 가질 수 없는 것들을 잔뜩 만들어 놓고 사람들에게 일생에 한 번쯤은 어떻습니까, 하고 꼬드겨서 판매하고 또 그런 것들을 열심히 홍보하는 사람들을 보면 나는 기분이 묘해지곤 한다. 한번 이렇게 좋은 것도 경험해 보세요 라고 말할 때, 당신은 비록 앞으로 이런걸 가질 일이 없겠지만 한번 맛이나 보세요, 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나에게는 그것의 좋음보다, 그 다음에 따라오는 부재가 더 크게 다가와서.  




다행인지 불행인지 동생이 가열차게 추진했던 비싼 제주도 숙소는 온 가족이 달려들어서 말린 덕에 가지 않게 되었지만, 동생이 비싼 숙소 이야기를 할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들곤 한다.      




종종 어떤 것들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 내가 그것을 가지지 못한다는 것을 자극한다. 2024 01, 서울 청계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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