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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준 Apr 03. 2024

안 싸우면 가족 여행 아니야

오랜만의 제주도 여행

오랜만에 제주도 여행을 갔다왔다. 그러고 보니 나에게는 오랜만이다의 수준이 아니었다. 나는 군대 가기 전 제주도를 갔다오고 나서 그 이후에는 제주도를 간 적이 없었다. 가깝게 갈 바에 더 멀리 가자는 생각인 것도 있지만, 묘하게 제주도는 별로 갈 일이 없었다. 울릉도는 갔는데 제주도는 안 간 것을 보면 내 여행 취향이 정말 극과 극이긴 한 모양이었다. 그래도 제주도 생각을 아예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라서, 그때 먹었던 고등어회의 맛을 아직도 종종 생각할 정도였다. 고등어 회를 먹기 위해서라도, 나중에 한번 제주도를 가 보면 좋겠다 싶었다.




그러다 올해, 가족여행으로 제주도를 가게 되었다. 작년엔 별다르게 가족여행을 안 갔던 것 같고, 정말 오랜만에 온 가족이 모여서 여행을 가는 일정을 잡았다. 다만 몇 년 전에 가족끼리 일본여행을 갔을 때 매 순간이 샅바잡이를 하는 수준으로 싸우던 것 같아서 이번에도 그러지 않을까 싶었다. 그 생각은 정확히 맞아서, 숙소를 정하는 순간부터 다투기 시작했다. 고급 숙소 골라 놓고 제주도 물가 비싸다고 하는 동생에게, 내가 합리적인 숙소라고 들이밀어야 하는 다른 숙소도 이미 나와 다른 가족에게는 비싼 수준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더 적당한 가격의 숙소를 예약해 여행을 시작할 수는 있었다. 



 

그런데 숙소가 마무리 되고 나니 이번엔 또 아빠가 시동을 건다. 여행 시작 얼마 전에 동생이 아빠에게서 전화를 받은 것이다. 아빠가 일이 생겨서 갑자기 바빠져 이번 여행은 취소하고 나중에 가면 어떠냐고 얘기했다는 것이었다. 이번에 아빠가 못 가게 되면 앞으로 가족여행 안 간다고 말하는 동생에게 너도 몸 아파서 일본 못간다고 다 취소해놓고 다음주에 가면 안되냐고 물어보지 않았냐 물어보려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오는 것을 움켜잡았지만, 좌우지간 이미 다 맞춰둔 일정을 또 바꾸려고 하시는 것 같아 골치가 아파졌다. 다행히 아빠는 별 문제 없이 여행에 올 수 있었다. 




하지만 여행에 오고 나서도 사소한 말다툼과 이상한 분위기는 산적해 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말과, 만들어도 되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가족은 만나기에 싸우는 것 아닐까? 평소처럼 떨어져 지내면 싸울 일이 없는 것 아닐까? 만나면 싸울 사람들을 굳이 여행을 하겠다고 한군데 몰아 넣었기에 싸울 일이 만들어지는 것 아닐까. 내 친구는 그 이야기를 듣고 자기네들처럼 길거리에서 창피하게 다투지 않았으면 싸웠다는 말 하지 말라고, 그건 싸우는 것도 아니라고 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생각을 바꿔 보면, 가족이 만난다는 것은 싸울 일도 있지만 가족이 함께하는 추억을 만들수 있다는 좋은 것도 있구나 싶다. 항상 좋은 것만 있을 수는 없으니까. 나쁜 것이 있다면 좋은 것도 있다. 생각보다 날씨가 좋아서 재미있는 구경을 많이 할 수 있었다. 지금은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는 가족들이 한 군데에 모여서 같은 것을 보고 같은 음식을 먹으며, 같은 경험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좋은 것 아닐까 싶었다. 




비록 싸우지 않으면 가족 여행이 아니겠지만, 싸우면서라도 가 볼 만한 것 아닐까 싶은 가족여행이었다. 그리고 여행이 끝나가는 자리에서 나중에 또 가족여행을 가자고 하는 말을 들으며, 이번에는 반드시 계획을 철저하게 세워서 싸울 일을 줄여 보겠다고 생각했다. 과연 생각대로 잘 될까 궁금해 하면서도. 



같은 경험을 공유하는 소중한 가족 여행이지만, 싸우지 않는다면 가족여행이 아닐 것이다. 2024 03, 제주 서귀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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