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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준 Apr 09. 2024

마라상궈 안 먹던 사람

안 먹던 음식 잘 먹는 이야기

나는 원래 마라탕을 안 먹는 사람이었다. 마라 치킨에 마라 떡볶이 까지 그 다음엔 마라 밀크티까지 나오는 것 아니냐 싶었을 때도 마라탕을 먹지 않았다. 지나치게 자극적인 것 같고 생각보다 먹을 일이 없어서였는데, 어느날 일하던 회사 지하의 마라탕 집에서 탄수화물 빼고 야채와 단백질을 한가득 넣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는 마라탕을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마라상궈는 먹는 편이 아니었다. 마라상궈는 마라탕보다 훨씬 자극적인 느낌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주 옛날 몇 년 전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할 때, 친구들이 놀러 오면 그 중에 한 명이 꼭 마라상궈를 안주로 먹었다. 꼭 근처 마라탕 집에서 마라상궈를 사 와서 먹었는데, 몇 젓가락 먹어 봤던 나는 이렇게 자극적인 음식을 왜 먹는 것일까 싶었다.




시간이 많이 지나서 이젠 마라탕을 먹게 된 나는, 이전보다는 좀 더 자극적인 마라맛에 적응되어 있었다. 비록 가장 약한 마라로 먹는 것을 선호하지만, 친구와 가끔 마라탕을 먹으러 가기도 했다. 그 친구는 훠궈를 좋아해서 종종 그 친구에게 멱살을 잡혀 훠궈를 먹으러 가곤 했는데, 생각해 보니 그 친구 덕에 훠궈를 먹다가 마라탕을 먹게 된 것 같았다.




그런데 문득 지난번에 갑자기 마라상궈가 먹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라탕이 아니고 마라상궈를, 맥주와 함께 먹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남역 근처에서 마라상궈를 먹어 보기로 하고 약속 장소로 향하는데, 마라탕도 마라상궈도 마라 들어가는 것은 먹을 생각이 없던 내가 마라상궈를 먹으러 가자고 하다니…사람 입맛은 정말 바뀌긴 하나보다 싶었다. 나이를 먹고 나서 바뀌는 것은 입맛밖에 없는 것 아닐까 싶어졌다.




여하튼 친구와 함께 마라상궈를 먹기 위해, 일전에 가 봤던 가게 근처의 다른 가게를 가 보기로 했다. 가게 앞에 도착하니 안쪽에 사람이 많은 것이 금요일 저녁이라 자리가 없을 줄 알았다. 마라상궈를 기다려서 먹어야 하나 싶었지만, 다행히 자리가 있어 빠르게 자리를 잡아 앉을 수 있었다. 마라탕을 한 사람이서 하나씩 먹을 때와는 다르게, 큰 그릇 하나를 같이 쓰면서 먹고 싶은 것을 담는다. 탄수화물을 최대한 줄이고 싶은 나는 아주 작은 분모자나 수제비만 좀 넣고, 야채와 고기를 넣는다. 맥주를 마시면서 기다리니, 곧 마라상궈가 나온다. 냄비에 담긴 마라상궈는 보기만 해도 매워 보였다.




일전에 들렀던 카페에서 꽤 늦게 나왔기에, 두부에 다른 재료들이 가득 들어간 마라상궈를 과연 다 먹을 수 있을까 싶지만 둘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한두점 먹으니 금방이었다. 먹을 때마다 얼얼한 맛이 아마 화장실에 가게 될 것 같은 느낌이지만, 마라탕과는 다른 느낌으로 맥주 안주 먹기에 좋은 느낌이다. 고량주를 토닉에 타 먹으면 좋을 것 같았는데, 아쉽게도 토닉은 없었다.




분명히 얼얼한 마라의 맛을 좋아하지 않던 나였는데, 마라상궈를 먹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다니.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자극적인 음식을 먹는다는데, 내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걸까 생각하면서 한두점 먹다 보니 소기름과 함께 남아있는 향신료가 보였다.




똑같은 가게에서 나중에 또 마라상궈를 먹을 지는 모르겠지만, 또 잊을 만 하면 마라상궈를 먹으러 다른 가게에 가지 않을까 싶었다. 잊을 만 하면 먹어보고 싶어지는 다른 음식들처럼 말이다.




마라탕도 안 먹던 나였는데, 이젠 마라상궈를 먹어보고 싶어졌다. 2024 03, 서울 강남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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