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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준 May 08. 2024

돼지불고기에 섞여있던 소불고기

섞었다는 것을 이미 알아버린 그순간

일요일은 일이 아주 많았다. 내가 종일 일을 열심히 하면 월세는 번다 에서, 그 종일 열심히를 최대치까지 한 것이 그날 아닐까 싶었다. 일을 마무리 하고 이날 일정은 뭐가 아쉬웠을까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집에 가려니 그날 제대로 먹은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집에 가는 길에 식자재 마트에서 고기를 사 갈까 하는 생각이 들은 것은 그것 때문이었다. 양념육을 파는 식자재 마트가 동네에 두 곳 정도 있었는데, 조금 거리가 있는 곳이 집에 가는 길에 있었다. 일전에 한번 사 먹어 봤더니 제육 양념이 맛있어서 몇 번 더 사먹었다가, 어느날 갑자기 지방이라곤 하나도 없는 단백질 보충용 제육으로 바뀐 것을 보고 안 사먹었었다. 그러다가 다시 지방이 적절하게 들어간 제육으로 바뀐 것을 보고 그제야 다시 사먹곤 했던 그런 곳이었다. 




제육의 지방이 왔다갔다 한 것은 그렇다 쳐도, 고기를 요청하면 두께를 맞춰 썰어주는 일반 식자재마트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을 해 주는 곳이었기에 그래도 나름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종종 들러서 어떤 것을 파는지 고기는 어떤 것이 있는지 구경하곤 했는데, 일요일 밤은 이곳에서 제육을 살 생각이었다. 제육을 살까 했는데, 자주 사 먹어 본 제육 말고 다른 것을 먹어볼까 싶었다. 제육 옆에 있던 것은 돼지 간장 주물럭이었다.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정육 직원은 모두 퇴근하고, 한 봉투에 적정량이 담긴 고기 봉투들이 쌓여 있었다. 나는 돼지 간장 주물럭을 한 봉투 집어서 집에 왔다. 아무 생각 하지 않고 먹고 싶다는 생각으로 편의점 맥주도 사 왔다. 




집에 와서 팬에 고기를 올려 놓고 약불을 켠 뒤 뒷정리를 하고 씻고 나오니, 고기가 절반 정도 익어서 뒤적거리면서 풀어 주려 했다. 그런데 왠걸, 분명 돼지 간장 주물럭을 샀는데 두텁게 썰린 고기 한가운데에 얄팍한 고기가 여러 장 들어있다. 돼지고기를 이렇게 썰어 넣지는 않는데, 하는 생각에 딱 보이는 두께 차이. 소고기가 그곳에 들어있었다. 




사실 소불고기는 돼지 간장 주물럭과 비교해서 단가 차이가 두배 정도 나는 더 비싼 고기니까 더 좋은 것 아니냐 싶을 수 있었지만, 양념이 같고 마감 시간 물건이니 그냥 한 군데에 섞어서 남은 것을 포장해 버린 것 아닐까 하는 생각에 나는 기분이 좋지 않아졌다. 나는 돼지 간장 주물럭을 산 것이지 돼지 소 간장 주물럭을 산 것이 아니었으니까. 고기를 섞는다는 것을 알았으니 다른 것은 안 섞으리라는 보장은 또 어디있겠는가? 그래도 익어가고 있는 고기를 버릴 수는 없으니 빨리 익혀서 먹어야겠다 하는 생각으로 고기를 뒤적거리니, 옛날 저렴한 고기뷔페에 갔을 때 봤던 풍경이 아른거렸다. 누가 어디다가 넣었는지 언제 넣었는지도 알 수 없는, 닭고기 사이에 끼어 있던 삼겹살 토막들. 




돼지고기를 사면 돼지고기가 들어있다, 소고기를 사면 소고기가 들어있다 하는 믿음이 깨진 것 같아 인류애가 상실되는 것 같은 순간에, 나중에 가게를 찾아가서 이번엔 안 섞으셨죠 하고 물어볼까 생각도 했다. 그러나 어쨌든 같은 양념으로 볶아진 돼지고기와 소고기는 둘 다 고기는 고기니까 맛있었고, 그걸 따져서 뭐 하나 싶었다. 따져서 나 때문에 앞으로 또 두 가지를 섞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따지는 것도 안 가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 고기를 살 때 내 눈으로 직접 잘 보고 사는 것 뿐이었다. 안쪽이 잘 안 보이는 봉투로 감싸진 것 말고, 보관통에 담겨 있는 것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면서. 




돼지불고기에 섞여있던 소고기 토막에, 역시 물건은 잘 보고 사야한다 하는 깨달음을 얻었다. 2024 04, 서울 종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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