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현준 May 29. 2024

결정은 제가 하는거구요

계약금 입금하는 그순간까지

적당한 매물을 찾지 못해 을지로 충무로 쪽을 지망하다가 결국 돌고 돌아, 조금 높은 월세를 감안하여 괜찮은 매물을 찾았다. 좋은 접근성, 반듯한 내부 구조, 내부 화장실 등, 내가 찾고 있던 조건을 대부분 충족하고 있었다. 매물을 둘러보며 아 공간을 이렇게 이용하면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들던, 다른 매물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이 좀 더 명확하게 보이는 곳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더 나은 매물은 찾기 힘들 것 같다 생각했지만, 일단 나는 알고 있던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이 어떨까 싶었다. 그래서 내가 알고 있던 사람들과 다시 한번 매물을 방문해 보기로 했다. 엄마와, 엄마 친구였다. 부동산에는 일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가서 매물을 다시 둘러 보고 싶다고 하고, 약속을 잡은 뒤 셋이서 상가라인 보행데크를 걸어 매물을 보러 갔다.




두 분 모두 충무로와 을지로를 많이 오갔고, 특히 한 분은 아직도 충무로에서 일을 하고 계셨기에 근처 입지나 내부 구조 혹은 내가 잘 눈치채지 못했던 것을 봐 주실 수 있을 것 같았다. 세 명이 다시 매물을 보러 가니 공통적인 이야기는 일단 넓어서 좋다 라는 것이었다. 일전에 같이 보러 갔던 충무로 쪽의 다른 매물에 비교해서 두 배 이상 큰 사이즈이니, 큰 면적이 주는 장점은 분명했다. 동쪽으로 나 있는 큰 창도 전망이 좋아서, 내부 분위기를 밝게 만들어 주었다.




다만 벽에 죽 붙어 있는 단열 벽지와 창문 쪽 위 반대편 벽에 붙어있는 단열 벽지를 보셨는데, 이전에 쓰던 사람들이 단열 벽지를 벽에 붙여 놓은 것으로 보았을 때 아마 겨울에 공간이 매우 추웠던 것 아닐까 말하셨다. 그리고 바닥에 붙어 있는 데코 타일이 어딘가는 단단하게 지지되고 어딘가는 세게 누르면 발이 들어갈 정도로 편차가 심했는데, 이 부분은 나도 맨 처음에 느꼈던 거라 이곳에서 진행하게 되면 어떤 식으로든 유지보수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부동산에서는 내가 엄마와 왔다는 것을 알았기에, 나중에 매물을 보고 돌아가면서 어머님이 괜찮다고 하시냐, 라고 물어봤던 것 같다. 그때 정확하게 어떻게 물어봤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 내가 엄마의 허락을 받고 진행하고 있다는 것처럼 느껴져서 내가 거기서 강하게 잘라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아니요, 결정은 제가 하는거고요, 두분은 조언만 해 주십니다.




만약 이곳에서 진행하게 되면 오늘 중으로 보증금의 일부를 계약금으로 입금 하는 것이 좋다 라고 해서, 알겠다고 한 뒤에 셋이서 상가를 나와 쭉 걸어갔다. 보행데크를 따라 쭉 걸어가니 종묘가 나왔고, 거기서 오른쪽으로 쭉 걸어가면 광장시장이었다. 다시 한번 봐도 근처에 지하철 역이나 버스정류장이 많아, 어디서 오더라도 편하게 오고갈 수 있는 위치가 장점이었다.




광장시장 서쪽 입구 쪽으로 걸어가니, 광장시장 분위기에 맞지 않게 조금 반짝반짝 해 보이는 가게가 있었다. 그곳에서 함께 차를 마시며 간단하게 이야기 했다. 일궈내지 못한 것을 앞으로 일궈낼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서, 여태까지 내 계획이나 생각 등을 아무것도 말하지 않은 상태였다. 단순히 어떤 공간을 찾고 있다 정도가 아니라, 어떤 공간에서 무엇을 하면서 운영을 할 것이라고 이야기 하는 것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 이외에 꼭 확인해야 할 몇 가지 요소들에서도 크게 문제가 없었다. 오븐 같은 고압 전력기구를 쓸 수 있는가는, 일전에 음식점 영업을 했던 적도 있어 문제 없을 것 같았다. 파티룸 같은 외부인원이 들락거리는 공간을 준비해도 되냐는 것에는, 임대인은 크게 여의치 않는 듯 했다. 나머지는 단 하나, 나중에 혹시 또 이곳보다 더 괜찮은 조건의 매물을 찾는다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건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지금 있는 것이 가장 좋은 매물이라는 보장은 없었다. 하지만, 가장 좋은 매물이 아니라는 보장도 없었다.




마지막으로 고민하는 것은, 최대한 직장 생활 공백기를 줄이기 위해선 신중하게 고민하고 진행해야 했다. 아무리 빨리 마무리를 하고 다시 구직을 한다 해도 시간이 얼마나 걸릴 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또한 마찬가지였다.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 또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영영 할 수 없을지도 모르고. 나에게 필요하고, 내 취향이 들어간 공간을.




부동산에서 요청한 기한 안에 계약금을 입금하면서 생각했다. 이제 시작했으니 끝을 봐야 한다, 라고.




모든 것은 내 결정으로 시작했다. 시작했으니, 끝을 봐야 했다. 2023 11, 서울 을지로  


작가의 이전글 야키니쿠와 고깃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