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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준 Jun 04. 2024

혹시 출근 가능해요?

너무 늦었다는 말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

퇴사 후 언젠가는 이런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 생각하며, 부동산을 돌아다니며 매물을 찾기 시작한 지 시간이 지나고 나서. 몇 가지 조건을 협의해야 했지만 다행히 최적의 선택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았다. 입지도 내가 원하던 곳이었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기에 괜찮아 보이는 공간.




이제 본격적으로 돈 나갈 일들만이 남아 있기에, 임대차 계약서를 쓰고 사업자 부터 신청하려 했다. 세금 계산서를 미리미리 받아서 나중에 두 번 일하지 않도록 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가게는 을지로 쪽에서 준비할 예정이었는데, 남대문 세무서에서 사업자 신청을 해야 했다. 이런 일을 단 한 번도 해 본적이 없는 나는 인터넷으로 열심히 검색을 하고 사업자 신청을 하러 갔다.




큰 건물 안쪽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니, 아침 일찍 방문해서 그런지 사람이 별로 없었다. 어디서 뭘 해야 하는지 슬쩍 둘러보니 가운데에 양식이 쌓여 있었다. 그곳에서 사업자 신청을 하기 위한 서류를 찾아 열심히 적었다. 모르는 것은 인터넷으로 검색해 가면서.




그런데 갑자기 전화가 왔다. 요새는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올 때 스팸 전화인 경우가 많지만, 아무 말이 없는 것을 보니 스팸 전화는 아닌 듯 했다. 부동산을 여러 곳 다녀서 부동산에서 전화가 온 것 아닐까 싶었다. 전화를 받아 보니, 스팸도 아니고 부동산도 아니었다. 대략 2개월 전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봤던 회사였다.




이 시점에 전화가 온다는 것은 단 하나 뿐일 것이고, 실제로도 그랬다. 이전에 면접을 봤던 다른 사람과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에게 출근이 가능하냐고 했다. 면접 분위기도 좋다고 느꼈고, 회사 분위기도 나쁘지 않아 보였기에 나는 큰 기대를 했던 면접이었다. 내가 생각하던, 만약 이런 곳에서 일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그런 곳이었기에. 그리고 그 면접이 잘 되지 않자 나는 지금 아니라면 언제 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본격적으로 매물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던 것이다.




잘 끝나지 않았던 면접 덕에 지금 사업자 신청을 하고 있는데, 사업자 신청을 하고 있는 와중에 다시 그 전화를 받게 되다니, 이런저런 감정이 뒤섞인 생각들이 떠올랐다. 지금이라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입사 하러 가야 할까? 이곳에서 일하면 괜찮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던 그런 곳 이었는데. 하지만 5분만 있다가 다시 연락드리겠다고 한들 더 나은 방법이 떠오르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너무 멀리 온 것이었다.  부동산을 찾아다니는 와중에 연락이 왔다면 모르겠지만, 장소까지 결정한 지금 다시 되돌릴 수는 없었다.




이 순간 이런 연락은 너무 늦은 것 아닐까 생각했던 적이 여러 번 있었지만, 너무 늦었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구나 하고 다시금 느꼈던 순간이었다. 그렇기에 다시 한번 생각했다. 이전부터 생각하고 필요로 했던 것이니, 시작 했다면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고. 그게 어떤 식의 마무리던 간에.




사업자 신청을 하러 간 날 받은 입사 제의는 아쉬웠지만, 나는 끝을 내야만 했다. 2023 10, 서울 을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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