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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준 Jun 12. 2024

지하철에서 들리는 행복하세요

문제를 해결하는 다양한 방법

지하철 개찰구에서는 보통 앞 사람이 어떤 카드를 이용하는지 볼 수 있게 되어 있다. 의도적으로 뒷사람에게 보여 주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이 한번에 많이 이동하는 출퇴근 시간에는 바로 앞사람 뒤에서 카드를 찍고 가다 보니, 앞사람이 카드를 찍었을 때 어떤 메세지가 뜨는지 볼 수 있다. 그런데 일전에 한 번 퇴근길에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이 카드를 찍고 나가는데 경로 우대 라고 찍히고 나가는 것을 보았다. 65세 이상 승객이 사용할 수 있는 무료 경로 우대 카드를 이용하는 듯 했다. 




아무리 봐도 그 사람의 얼굴이 65세 이상의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기에, 누군가의 경로 우대를 이용해 무료로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있구나 싶었다. 물론 이런 경우만 있는 것은 아니어서, 옛날 큰이모가 경로 우대 카드를 이용하실 수 있게 되면서 지하철로 40분 정도 거리인 동작과 성북을 편하게 왔다갔다 하시면서 다른 곳도 여기저기 돌아다니시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65세 이상의 승객이 무료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더 많이 돌아다니기에 대중 보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글도 보았다. 비록 내가 그때 봤던 경로 우대 카드는 대중 보건이 아니라 누군가의 지갑 사정에 도움이 되고 있었지만 말이다. 




이런 무임 승차의 경우,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지 많은 사람들이 고민했던 모양이다. 어떤 식의 해결책이던 간에 경로 우대 카드를 없지는 않고 있기에, 경로 우대 카드를 사용할 수 없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에 대한 기사도 종종 나왔다. 혼잡한 출퇴근 시간대에 사람들을 일일이 확인하고 경로 우대 카드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잡아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지하철에서 행복하세요 라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항상 나는 것이 아니고, 어떤 사람들이 지나갈 때만 난다. 알고 보니 경로 우대 카드를 이용 했을 때 나오는 목소리였다. 2023년 일부 역에서 경로우대 카드를 이용했을 때 어르신 건강하세요 라는 음성이 나오게 했는데, 2024년부터 이 문구를 행복하세요 로 바꾸고 모든 지하철역에 적용시킨 것이다. 그래서 요새는 카드를 찍었을 때 행복하세요 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을 쉽게 들을 수 있다. 바꿔 말하면, 누가 경로 우대 카드를 이용하는지 쉽게 알 수 있는 것이다.




일전에 경로 우대 카드를 이용하는 것을 알 수 있는 방법이란 카드를 찍을 때 표시되는 메세지를 볼 정도로 가까이 가는 것 뿐이었는데, 이제는 그 메세지를 볼 수 없는 먼 거리에서도 행복하세요 메세지만 들으면 상대가 경로 우대 카드를 이용하는지 알 수 있다. 다른 사람이 알 수 없기에 비교적 몰래 쓸 수 있었던 경로 우대 카드가, 이제 개찰구 끝에서 끝까지 모든 사람들이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경로 우대 카드를 몰래 사용하는 문제가, 누가 경로 우대 카드를 이용하는지 알기 힘들다는 것에서 시작했다고 생각한다면, 비록 완절히 근절할 수는 없더라도 용도에 맞지 않게 경로 우대 카드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노출시키는 것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경로 우대 카드의 오남용이 심하니 경로 우대 카드를 없애 버리거나, 혹은 경로 우대 카드를 이용하는 사람을 일일이 걸러내는 것이 아닌 다른 방식의 문제 해결을 본 것이 신기했다. 




물론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는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방식으로 문제를 바라보는 방법을 하나 보고 알게 된 것 같았다. 어찌 보면 일상 속에 매 순간 있는, 새로운 배움의 계기.




경로 우대 카드에서 나오는 행복하세요 음성이, 새로운 생각을 가져다 주었다. 2023 10, 서울 광장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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