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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준 Jun 18. 2024

내 인생 첫 임대차계약서

돌이킬 수 없는 시작

내가 생각한 이상적인 공간을 준비할 수 있겠다 싶은 곳에서 진행해도 되겠다 싶어, 부동산 쪽에 계약을 하고 싶다고 했다. 부동산에서는 건물주와 함께 임대차 계약서를 작성할 날을 골라서 알려 줬다. 흔히 건물주라고 하면 건물 하나를 통째로 가지고 있는 사람이지만, 이 경우에는 해당 건물의 해당 호실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건물주 라는 말이 흔히 편하기도 하고, 듣는 사람도 좋을 것 같아 이상하게 건물주 라는 말을 더 많이 쓰게 된다. 임차인과 임대인 이라는 말은 계약서상의 용어 같기도 하고.




그러고 보니 임대차 계약서를 쓰려면 도장이 필요했는데, 나는 그때 내가 만든 도장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어딘가에 있겠지만 찾을 수 없는 도장 두 개, 옛날에 고등학교 졸업하면서 졸업선물로 학교에서 파 준 도장 하나, 일전에 회사 일 하면서 회사에서 내부 서류 작성할 때 쓰라고 받았던 도장 하나. 둘 다 쓰고 싶지 않아서, 일단 도장부터 파야겠다 싶었다. 내 취향대로.




한문이 들어간 도장 대신 한글로 되어 있는 도장을 만들고 싶어서, 디자인 같은 것들까지 알아보고 준비하려 했다. 그런데 이날 도장을 미리 파 놓지 못해서, 오후에 있는 부동산 약속 이전에 급하게 도장을 팠던 기억이 난다. 다행히 충무로와 을지로 사이로 오가면서 도장 가게가 많이 있던 것을 보았기에, 한 곳에 전화해서 바로 도장을 완성할 수 있는지 물어보고 약속 전에 가서 도장을 준비했다.




부동산은 매물 근처의 작은 건물 2층에 있었는데, 올라가니 부동산에서 준비한 임대차계약서가 있었다. 이날 그래도 중요한 약속이고 다른 사람들의 도움으로 진행하는 것이니, 집에서 밤식빵을 2개 구워서 준비했다. 오전에 구워서 바로 가지고 출발했기에 아직 완전히 식지 않아서 고소한 밤식빵 냄새가 좁은 공간 안에 찼다. 임대차 계약서를 보면서 부동산 사장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잠시후 건물주가 도착했다.




실제로 건물주를 만난 것은 그 자리가 처음이었는데, 생각보다 나이가 많지 않아 보였다. 건물주에게는 도움을 받은 것이 있었는데, 사실 임대차 계약서 작성 전에 부동산에서 건물주에게 월세를 깎아 주면 어떻겠냐 말했을 때 건물주가 적은 금액이지만 월세를 깎아 주었다. 임대차 계약서 쓰는 날, 부동산에서 나에게 한번 더 월세를 깎아 달라고 해 보면 어떻겠냐고 말했었다. 두 번이나 연속으로 깎아 달라고 하는 것도, 월세를 깎아 달라고 하는 것도, 시장에서 흥정하는 것 같다는 생각에 별로 선호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충분히 해 볼 만하다 싶어 말해 보았다. 물론 긍정적인 대답은 없었지만, 이미 월세가 소액 감면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감사한 일이었다. 이외에도 공사 관련 입주일 협의도 우호적으로 진행할 수 있었기에, 운이 좋게도 도움을 많이 받았다.




임대차계약서 작성 자체는 그렇게 오래 시간이 걸리지 않아서, 임대차계약서 작성하고 나서 내가 구워 온 밤식빵을 전달해 드리고 일정은 마무리 되었다. 임대차계약서가 있으니 이제 사업자 등록증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에 나는 다음날 바로 임대차계약서를 들고 세무서로 갔다. 그런데 알고 보니 사업자 등록증을 만들려면 명확하게 사업을 하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하는데, 단순히 임대차 계약서 만으로는 사업을 하겠다는 것으로 파악하지 않는다고 한다. 나는 임대차 계약서에 있는 보증금 납기 이전에 사업자를 발급받으려고 했기에, 보증금을 완납 하고 나서 다시 방문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결국 사업자를 더 빨리 발급받기 위해, 보증금을 더 일찍 납부하고 그것에 맞춰서 임대차 계약서를 수정했다. 공간에 대한 계약이 끝났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공사를 진행해야 했다. 공사를 최대한 빨리 끝내야 영업을 일찍 시작할 수 있을테니, 최대한 빨리 마무리 하는게 좋았다. 문제는, 나는 이런 부류의 일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임대차계약서를 쓴 날, 이젠 정말 시작해 버렸구나 싶었다. 2023 10, 서울 을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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