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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준 Jun 26. 2024

왜 갑자기 보자는 거야 진짜

항상 있는 동네 친구들과의 이야기

고등학교때 알고 있던 동네 친구들과 아직도 연락하며 지낸다. 각자 하는 일도 다르고 항상 시간을 맞출 수는 없지만, 단톡방에 가끔 오늘 저녁에 보자 그러면 시간 맞는 친구들은 만나곤 한다. 근데 오늘 저녁에 보자는 말을 보통 그날 낮에 한다. 나는 보통 하루에 이 때즈음엔 뭘 해야겠다 하고 생각해 두는 편이라 이런 일정은 나에게 잘 맞지는 않다. 




요즘 들어서는 이것저것 해야 할 일이 많아, 갑작스럽게 하게 된 자영업자 생활에 이것저것 하면서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이날도 이것 저것 해 둘 것을 생각하고 집에서는 뭘 해야겠다 생각하는데, 갑자기 낮 12시 즈음 오늘 저녁에 보자고 또 말이 올라온다. 나도 오라고 한다. 친구를 만나는 일은 좋지만 나는 저녁에 할 일을 생각해 뒀었기에, 저녁에 시간내어 보자고 하면 드는 생각은 그래 보자 보다는 왜 갑자기 보자고 하는 거냐 하는 생각이 우선이다. 




일단 저녁에 하려고 했던 일을 다른 날에 해야겠다 생각하며, 일전에 한번 보려 했을 때 못 봤으니 이번에는 봐도 괜찮겠다 하는 생각에 일정을 조정해서 저녁에 친구들을 보러 갔다. 사실 갑작스레 친구들을 보러 가게 되면 일정도 일정이지만 다른 문제도 있는데,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도 식성이 고등학생 같은 친구들을 따라가다 보면 밥통이 많이 줄어버린 나는 아무리 조금 먹어야지 해도 많이 집어먹게 되는 것이다. 




여하튼 그래도 만나기로 했으니 만나야지, 하는 생각으로 약속 장소로 향하다 보니 저녁에 나중에 하려고 했던 일이 마무리가 되지 않아 질질 이어지는 탓에, 약속 장소에 가기 전 길가에 서서 5분 정도 핸드폰으로 밀린 일들을 처리했다. 왜 갑자기 보자는 거야 진짜, 하는 불만이 목구멍까지 차오르지만 어쨌든 오겠다고 한 것은 나 아닌가 하는 생각에 빠르게 마무리를 하고 가게로 들어갔다. 동네에 있는 중국 요리집인데, 저렴하게 본토 음식 스러운 것을 파는 재미있는 가게이다. 




각각 다른 분야에서 일을 하다 보니 만나면 본업 이야기를 좀 하지만, 그래도 옛날 고등학교 때 공유하던 추억 이야기들도 많이 한다. 개발 일을 하던 친구가 일이 재미 없어져서 퇴사하고 여행을 간다길래, 역시 개발자라 다르구나 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인사를 하며 술을 따르는 나를 보며 친구는 자영업 하더니 이런것도 하네, 하고 이야기했다. 




중국어와 한글이 뒤섞여 있는 메뉴판에서 이것저것 음식을 주문해 먹어보다가, 다음에 또 간단하게 맥주 한 잔 하려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다 친구들이 종종 가는 가게로 갔다. 옛날 느낌을 넘어서 맛까지 너무 옛날이 되어버린 탓에 빳빳한 고기에 딱딱한 튀김옷, 그리고 튀김옷 한가득 묻힌 생감자튀김이 내 취향은 아닌 곳이지만 어쨌든 맥주를 마시다 보면 이것저것 집어먹게 되는 것은 똑같다. 일전에 여행 계획 짰다가 엎어진 것 이야기를 하면서 나중에 또 여행을 가자길래, 더 깊이 고민해 봐야겠지만 생각한 것을 모두 말하진 못한 채로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한번 가 봐도 좋겠다 이야기했다. 




친구들과 만나기 전에는 왜 당일 저녁에 약속을 잡아서 빠듯하게 움직이게 하는지 생각하다가, 그런 약속 장소에 나가겠다고 한 내가 문제가 아닌가 생각했다. 그런데 또 저녁 약속에 나와서 이런저런 이야기 하다 보면 나도 새롭게 생각하고 느끼는 것이 있는 것 같기도 해서, 그래도 친구를 만나는 것은 좋은 일 아닌가 싶다. 그렇게 생각하다가도, 다음 번엔 진짜 조금만 먹고 마셔야겠다 다짐하지만 친구들끼리 만나서 뭔가 먹고 마시다 보면 또 평소에 먹던 것 이상으로 많이 먹는 것 같은 느낌에 배가 불러온다.




갑자기 저녁에 만나자고 해서 모이는 것이 아무리 생각해도 내 취향과는 너무 다르지만, 그래도 시간이 될 때 다들 모여서 얼굴 보고 이야기 하는 것에 의미를 둔다면 그 시간도 즐겁지 않을까. 그래도, 이젠 고등학생 대학생 시절처럼 많이 못 먹는 나이가 되었음에도 친구들을 만나면 과식하게 되는 것 하나만큼은 조심해야겠다 싶다. 




낮에 정해진 친구들과의 저녁 약속, 힘든 것도 좋은 것도 있었지만 배가 너무나도 부른 약속이었다. 2024 06, 서울 성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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