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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준 Jun 22. 2024

방금 나한테 성질냈어요?

더위는 사람을 지치게 한다

요새 날이 덥다. 왜 더운 것일까 생각해 보려다가도 그런 생각을 해서 무엇하리 싶어져서, 왜 더울까 생각하기보다는 더운 날씨에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적응해 살아갈 수 있을까 생각하기로 해 본다. 요새 부쩍 늘어난 양산 쓰는 사람들을 보며, 나도 날이 좀 더 더워지면 진짜 양산을 써 봐야 할까 싶다. 사실 조금 젖은 우산을 말리기 위해 쨍쨍한 날에 펴서 양산처럼 들고 다녀 본 적은 있지만, 아직까지는 양산 없이 길거리를 걸어다니고 있다. 크고 작은 그늘을 군데군데 찾으면서.




그런데 버스를 타려고 하는 순간 내 앞에도 양산을 들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앞사람을 따라 버스에 타려고 했는데, 앞사람은 양산을 접기 전에 버스에 타려고 했다. 아마 양산을 접으면서 버스에 타려고 했는데 양산이 접어지지 않아 그대로 멈춘 것 같다. 아니면 양산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까먹었거나. 좌우지간 갑자기 앞에 있는 사람이 멈췄기 때문에 나는 그 사람을 따라 멈춰섰다. 양산이 머리 쪽에 있으니 내 얼굴과 가깝게 닿았고, 계란 한 판을 들고 있던 나는 자칫하면 계란을 떨어뜨릴 뻔 했다.




그 모습을 보던 버스기사가 뭐라고 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그게 에이씨 같은 소리였는지 뭐였는지는 정확하게 못 들었던 것 같다. 앞쪽에 양산 쓴 사람이 있기도 했고, 나는 빨리 빈 자리를 찾아서 앉아야 겠다는 생각 뿐이기도 했고, 버스기사가 딱딱한 모습을 보이거나 혼잣말을 하는 것은 나에게는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앞에서 양산을 접어가며 버스에 오르는 사람은 그게 그냥 넘어가긴 싫었던 모양이다. 왜 나한테 투덜투덜 거리냐, 친절하지는 못할망정, 같은 말을 하면서 버스에서 뒷 자리로 이동하는 그 사람에게도, 버스기사는 그냥 넘어가기 싫었던 모양이다. 무슨 혼자서 중얼중얼 거리면서 지나간다고 또 말을 하면서 하다가, 결국엔 방금 나에게 성질냈어요 하는 말이 나온다. 방금 나한테 성질냈잖아요, 내가 왜 성질을 냅니까, 방금 에이씨 라고 했잖아요, 내가 왜 그런 말을 합니까, 내 뒤에 있던 분도 들었을 거에요.




내가 왜 성질을 내요 성질을 내긴 하면서 버스가 멈춘 사이 운전석에서 몸을 일으켜 뒤를 바라보며 말하는 그 모습에, 나는 그냥 바로 내려서 다른 버스를 탈까 생각해봤다. 그런데 이미 버스는 문이 닫히고 출발해 버렸기에, 두 사람의 말싸움이 계속해서 시작되면 다음 정류장에서 지체없이 내려야겠다 생각했다. 다행히 두 사람은 거기까지 이야기 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나도 다른 버스로 갈아타는 일 없이 목적지까지 무사히 갈 수 있었다. 다시 버스에서 내려 땡볕에 기다리느니, 에어컨 아래에서 편하게 앉아 가는 편이 좋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게 그렇게 말싸움까지 할 일인가? 버스 안에서 그걸 생각해 보고 있었다. 아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갈 수 있는 일인데, 터지기 직전의 탄산음료 병이 충격으로 깨지고 음료가 새는 것처럼 사소하고 지나갈 수 있는 일 하나가 아주 작은 말로 굳이 할 필요가 없는 감정의 분출로 나타나고 있는 것 아닐까 싶었다. 그렇게 감정을 거칠게 쏟아내고 나면 그 사람들에게는 좋은 일이겠지 싶었지만, 나는 그런 식으로 거칠게 표현하는 것은 내 취향이 아니었기에 별로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 어쩌면 오늘 날이 더워서 일지도 모른다. 끓어오르는 아스팔트와 보도블럭 위에서 양산을 쓰고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에게도, 더위가 만든 스트레스를 지켜보며 하루 종일 운전을 하는 사람에게도, 더운 날씨는 힘든 것이다. 그래서 평소라면 그냥 지나갈 수 있는 일도 더운 날씨마냥 불같이 성질을 내고야 마는 그런 일이 되는 것이다.




원래 감정을 쉽게 표출하고 거칠게 드러내는 사람들이라서가 아니라, 날씨가 더워서. 어쩌면 그 이유일지 모른다.




감정적인 사람인가 그렇지 않은 사람인가 상관없이, 더위는 사람을 지치게 한다.  2024 06, 서울 용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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