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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준 Jul 10. 2024

교토식 화법을 써보자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아서

옛날에 인터넷에서 교토식 화법이라는 것을 본 적 있었다. 흔히 일본 하면 떠올리는 겉과 속이 다르다는 이미지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말투였는데, 가령 이런 식이었다. 집에 온 손님에게 저녁 시간이 되면 슬슬 스키야키를 준비해야겠네요 라고 말하는데, 사실 스키야키같이 손이 많이 들어가는 음식을 저녁으로 준비하게 만들 것이냐, 그러기 전에 돌아가라, 라는 속뜻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 이외에도 전설적인 교토식 화법 이야기를 듣고 나니, 이걸 굳이 이렇게까지 돌려 말해야 하는 걸까? 이쯤 되면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것과는 별개로, 상대가 그 진의를 알아채는지 못하는지 일종의 테스트를 하고 있는 것 아닐까 싶었었다. 나중에는 교토의 민가 근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짱돌 이야기도 들었다. 사람들이 운전할 때 담벼락에 가까이 붙으면 담벼락을 긁을 수 있으니, 일부러 담벼락에 조금 간격을 두고 짱돌을 세워 놓는 문화가 있다는 것이었다. 담벼락은 안 긁어도 짱돌에 차가 긁어서 가까이 오지 않도록 말이다. 교토는 도대체 어떤 곳인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교토의 담벼락 짱돌까지는 아니어도, 교토식 화법이 떠올랐던 순간이 종종 있었다. 말을 하면서 내가 아 교토식 화법으로 말을 하고 있나? 하고 느꼈던 순간이 있었다. 물론 집에 찾아온 친구에게 아 저녁으로 잡채좀 해야겠다 이렇게 말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보통 상대에게 강한 논조로 말을 하기 싫어서 그 메세지는 남기면서 감정은 최대한 억누르려는 내 모습을 발견할 때 그렇게 느꼈다.




가령 누군가가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할 때 그것을 대놓고 지적하기보다는 그것의 이러한 부분은 이러하니 다르게 하는게 어떨까 하고 말을 하는 것이다. 욕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 있다면 과격한 언동은 스스로의 무게감을 낮출 수 있으니 하지 않는게 어떠니 하고 말하는 것이다. 너는 왜 말을 그따구로 하고 사니 라고 말을 하는 것이 아니고.




물론 이것은 흔히 생각하는 교토식 화법은 아닌 것 같아서, 아주 순화된 정도의 완곡어법에 가까운 것인 모양이다. 좋지 않은 완곡어법은 못 알아 들을 정도로 돌려 말하면서 괴롭히는 수준이거나, 말하는 사람은 의도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의도를 알아채는 것에 목적을 두거나 하는 것일테니까. 내가 완곡어법이나 교토식 화법을 이용한다고 느낀 것은 그저 내 말을 좀 더 부드럽게 다듬고 내 뜻을 어떻게 하면 더 쉽게 전달할까 고민하는 정도 아니었을까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교토식 화법도 결국엔 본질은 그것 아니었을까? 집에 가세요 라고 말하면 듣는 사람이 기분이 나쁠 수도 있으니, 이제 가족의 저녁식사를 준비해야 해서 조금 바빠질 것 같습니다 오늘은 돌아가시면 어떨까요 하고 말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제 스키야키를 준비하겠습니다 라고 말하면 너무 많이 줄인 것 같지만, 결국 하려는 이야기는 비슷한 것 아닐까? 돌아가는 기차편은 시간이 괜찮으신가요 라고 말 하는 것이 좀 더 나은 선택지 같아 보이긴 해도 말이다.




거기까지 생각해 보고 나니 교토 짱돌 문화도 괜찮은 것 아닐까 싶어졌다. 개인 주택의 담벼락에 너무 들러붙으면 담벼락도 긁고 차도 긁지만, 짱돌을 세워두면 짱돌을 피해서 운전하게 되니 좋은 서로가 조심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 아닐까? 비슷한 목적으로 이용하는 화분이나 주차 표지판 들도 굳이 교토가 아니라 다른 곳에서 본 것 같았다.




비록 나는 집에 온 사람에게 저녁에 잡채좀 준비해야겠나 라고 말 하면서 돌아가라고 말 할 생각은 없지만, 내 메세지는 확고하게 전달하며 메세지에 담겨 있는 감정은 어떻게 절제할까에 대한 고민이 종종 드는 요즘이다.




 

진짜 교토식 화법은 아니지만, 교토식 화법을 고민하는 요즘이다. 2024 03, 서울 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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