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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준 Nov 04. 2024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

그 말을 싫어한다 해도

어릴 적부터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옛날에는 그 말이 말을 곱게 해야 한다, 똑같은 말을 하더라도 어떻게 말을 하냐에 따라서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같이 평소에 말을 조심해서 해야 한다는 뜻 같았다. 말에 대해 이야기 하는 속담은 많으니, 그 말도 그저 그런 격언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말을 곱씹어 보니 다른 것들이 보였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천냥 빚을 값는다는 것이었다. 한냥의 가격이 얼마인지는 알 수 없지만 천냥의 빚이 생겼다는 것은 금전적으로 손실을 지게 했거나 실제로 채무관계가 생겼다는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것을 해결하는 방식이었다. 말 한마디. 대화도 아니고 설득도 아닌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값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상대방에게 중대한 손실을 입혔거나 큰 부채를 입었어도, 적절한 순간에 중요한 말 한마디면 그 빚을 값을 수 있다, 그러니까 그 만큼 말이 중요한 것이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이전과는 다르게 느껴지는 격언의 의미란 나에게 그런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고 나니 그 속담이 별로 좋지 않아졌다. 천냥 빚을 졌다면 그걸 갚는 것은 천냥 이어야지, 천냥 짜리 말이 아니지 않은가. 천냥 빚을 졌다면 그 어떤 다른 수단도 아니고 오직 천냥 빚을 값는다는 행동만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 외에 다른 것은 모두 부차적인 것일 뿐이지, 빚을 갚는 것은 실제로 빚을 갚는 행동이어야 하는 것 아닌가.




나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빚을 질 일이 생기면 빚을 값는 것이 중요하고, 빚을 질 일은 아예 만들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며, 빚을 졌다면 최대한 빠르게 그 빚을 갚는 것이 가장 최우선이라고 생각했다. 상대방에게 잘못을 했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잘못을 해결하고 다시는 그런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며, 가급적 그런 잘못을 만들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 말 이라는 것은 부차적인 것일 뿐.




하지만 사람이기에 실수는 있을 수밖에 없다. 기계처럼 돌아가야 효율이 올라가는 사람이라 해도 실수는 있을 수밖에 없고 결국 실수가 생기면 그 실수를 해결해야 한다. 그 실수에 화가 난 사람들에게 설명하고 그 실수를 없애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럴 때, 문득 사람들은 그 실수 자체보다는 그 실수에 대해 화가 난 자신의 감정을 보듬는 태도에 더 만족감을 느낀다.




종종 이 보듬는 것에 빼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외모가 특출나서 그냥 존재 자체만으로 타인의 모든 감정을 보듬어 줄 수 있거나, 상대가 원하는 반응을 귀신같이 캐치하여 보여주면서 상대의 감정을 감싸주거나. 나는 두 가지 모두 도저히 할 자신이 없기에, 내가 생각하는 문제의 본질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살아왔다. 천냥 빚을 갚을 일을, 실수를 하지 말자. 했다면 실수를 최대한 빨리 해결하자. 그리고 다시는 그 실수를 하지 말자.




하지만 종종 사람의 마음은 실수보다는 실수가 만든 아픔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서, 실수가 아닌 실수가 만든 아픔을 해결해 주기를 원한다. 내가 정말 잘 못 하는 그것.




요즘 들어서, 내가 잘 못 하는 그런 것을 잘 하는 사람들이 부러울 때가 많다.




천냥 빚의 아픔을 말 한마디로 갚는 사람들이 부러울 때가 많다. 2024 05, 오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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