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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준 Jan 07. 2025

아 네 괜찮아요

버스가 급정거하던그 순간에

지난번 일을 마치고 동네의 마트에 들렀다 집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집으로 가는 길 버스에서 한 정거장만 더 가면 내가 자주 가는 식자재 마트에 들렀다 갈 수 있었다. 밤 10시에 문을 닫는 그곳에서는 과일이나 야채, 고기를 살 수 있어서 종종 필요한 것을 사곤 했었다. 




그때 딸기가 필요해서 딸기도 사고, 캔맥주 같은 것들도 사고 버스에 타서 집에 가려 했다. 한 정거장만 가면 되었고 나는 손에 짐을 바리바리 들고 있었기에 자리에 앉기보다는 대충 서서 가려 했다. 버스에 타서 뒤쪽으로 가니, 내리는 곳 앞쪽에 등 대고 서 있기에 괜찮은 자리가 있었다. 손에 들고 있던 봉다리 두 개인가 세 개인가를 대충 다리 옆에 내려놓고, 핸드폰으로 이것저것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버스가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아 버스가 크게 흔들렸다. 원래 서울 시내 버스란 조용할 때도 있지만 흔들릴 때도 있어서, 왔다갔다 할 때 흔들리는 경우가 종종 있기에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갈 때도 많았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최대한 안정적으로 서 있기 위해 버스 벽에 기대어 있던 버스가 급정거를 하면서 균형을 잃고 넘어지기 시작했다. 




이러다간 버스 앞쪽까지 튀어나가서 유리창을 깨고 날아가겠다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균형을 잃고 앞으로 밀려나기 시작하는데,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딸기와 캔맥주였다. 내가 만약 발을 잘못 헛디뎌서 딸기를 밟거나 캔맥주를 밟아서 터뜨리면 절대 안 된다 하는 생각이었다. 




딸기는 중요한 요리에 쓸 예정이었고, 캔맥주는 밟아 버리면 버스 안에서 어떻게 치워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는 상황이었다. 딸기와 캔맥주를 밟는 것은 절대 절대 피해야 한다! 중심을 잃고 버스 앞을 향해 고꾸라지는 그 순간에도 다리 근처의 딸기와 맥주는 최대한 피하면서 움직이고 있었다.




그 다음은 균형을 잃고 쓰러질 때 어떻게 할 것인가 였다. 정말 쓰러지는 것인가 아니면 뭐를 붙잡을 수 있을 것인가? 바로 앞쪽에 버스 안의 손잡이 기둥이 있었는데 머리를 강하게 부딪히면 크게 다칠 수 있을 것 같았다. 만약에 넘어진다면 어떻게 해야지 최대한 안전하게 그리고 옷이 더러워지지 않게 넘어질 수 있을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계속해서 넘어질까 말까 생각하면서 앞으로 가다 보니, 다행히 붙잡을 것을 찾아서 넘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맥주 캔이 굴러다니고 딸기 바구니가 엎어질 뻔 하긴 했지만, 안전대 쪽에 머리를 대고 힘을 줘서 버텨야 하긴 했지만, 좌우지간 넘어 지지는 않았다. 다시 자세를 잡고 일어서니 앞쪽에서 괜찮냐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앞쪽 버스 창문 너머로 코 앞에서 사람들이 걸어가고 있었다. 신호를 잘못 읽어서, 하는 버스기사의 말에 횡단보도 앞에서 급정거를 했구나 싶었다. 나는 별 일 아니라는 듯이, 괜찮냐는 말에 예, 하고 좀 늘어지게 대답했다. 그러고 맥주와 딸기를 정리해 이번엔 반대편에 섰다. 그럼 급정거를 해도 넘어지지 않을테니까. 




만약 어떤 사람이 조금만 더 부주의 했거나 피곤했거나, 넘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면 꽤 심하게 넘어져서 다치거나 했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렇다면 버스기사에게 아주 공격적으로 따졌을 수도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좌우지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괜찮냐는 말에 괜찮다고 했다. 실제로 아무 일도 없었으니까. 맥주 캔 조금 굴러다니고 봉투 쓰러진 것 정도는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문득 넘어지려고 하는 그 순간에 캔맥주와 딸기를 보고 어떻게 넘어질 것인가를 생각하던 그 순간이, 짧은 시간에 참 많은 것을 생각했다 싶었다. 




그러고 버스에서 내려 양손 가득히 짐을 들고 집에 가면서, 다음부터는 버스가 급정거 하는 경우를 생각해서 벽에 기대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버스가 앞으로는 급정거 하겠지만 뒤로는 급정거 하지 않을테니, 다음부터는 반대로 기대 서 있어야겠다고 되뇌이면서 말이다. 




급정거한 버스 안에서 넘어질 뻔한 날, 나는 다음부터는 다른 방향으로 서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2024 05, 강원도 오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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