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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준 Jan 30. 2022

일본까지 가서 코코이치방야를 먹다

일본어 못하는 혼영족의 히로시마

때는 2017년, 나는 그때 일정만 맞춘다면 원할 편하게 일정을 낼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1년에 한 번 시간을 내서 꼭 일본 여행을 갔었다. 나는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이런 상황이 쉽게 찾아오지 않는 혜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 더 많이 여행을 갔어야 했는데.



 

일본 여행을 가기 전 어디를 갈까 했는데, 그때 한창 저가 항공사들이 일본 소도시 취향을 하면서 다양한 곳을 신규 취향지로 홍보하곤 했었다. 그렇게 해서 알게 된 곳 중의 하나가 히로시마였다. 한국 사람들에게 히로시마는 좋지 않은 이미지이긴 하지만, 큰 대도시보다는 겪어 보지 못한 새로운 장소를 가 보고 싶다는 생각에 긍정적으로 검토하다가 가 보기로 결정을 하게 되었다. 가격도 매우 저렴했다. 왕복 항공권을 15만원이 안 되는 가격으로 구할 수 있었다.




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치고 여행을 떠나던 날. 떠나는 날 아침은 항상 설렌다. 뭔가 빼먹은 것은 없겠지 하면서 꼭두새벽부터 일어나서 짐을 챙겨 나가면, 아직 어둑어둑한 거리를 걸어 공항버스 정류장까지 간다.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가다 보면 날이 밝아 와서, 공항에 도착하고 나면 해가 다 떠 있다. 항상 사람으로 붐비는 공항에 캐리어를 끌고 들어가서 이런저런 준비를 마치는 일련의 과정들. 요즘 사람들에게 가장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것 중의 하나가 아마 이 여행 준비의 과정인 것 같다.




어두울 때 버스에 올라 공항에 내리면, 그 사이에 날이 밝아져 있다




비행기에 오르고 나면 창가 자리의 혜택을 한껏 누린다. 하늘 높이 떠서 밖에 지나가는 것들을 구경하다 보면, 바다를 건너 울퉁불퉁한 산들로 이루어진 땅이 나타난다. 나는 비행기가 공항에 도착할 때쯤이 되면 근처를 더욱 유심히 보곤 하는데, 하강하기 시작하는 비행기 아래로 꽤 높아 보이는 산들이 스쳐 지나간다. 공항이 산들 사이에 파묻혀 있나? 하는 사이, 비행기는 공항에 착륙한다.




사람들과 함께 우르르 몰려 나가고 나면 도시로 갈 시간이다. 항상 처음 도착하는 곳에서 버스를 타고 도시로 나갈 때에는 긴장되는 것 같다. 하지만 한가득 몰려 있는 사람들이 가는 방향은 대부분 비슷하고, 표지판을 잘 따라 가면 버스 표를 끊으러 갈 수 있다. 천천히 줄을 서서 왕복 버스 표를 사고 버스를 탄다. 히로시마 공항에서 히로시마 도시까지는 버스로 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착륙을 위해 고도를 낮추는 비행기 아래로, 산맥들이 지나간다




한국어가 적힌 표지판을 따라가며 도시로 가는 버스표를 구매한다




공항에서 출발한 버스는 히로시마 역 앞에 사람들을 내려놓는다. 캐리어를 끌고 정류장에 내리자마자 엄습하는 것은 열기와 습기. 감안하고 옷을 입고 왔음에도 높은 습도의 기온은 익숙치 않다. 하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다. 주위를 구경하면서 드륵드륵 캐리어를 끌다 보면, 생각보다 빨리 익숙해진다. 챙 모자는 이럴 때 쓰기 좋은 유용한 물건이다. 머리에 그늘도 만들어 주고 부채처럼 쓸 수 있어 활용도가 높다. 내 여름 여행에는 옛날 교환학생 하던 시절부터 쓰고다니던 챙모자가 함께한다. 비록 중간에 잊어버려서 하나 새로 사긴 했지만 말이다.




여름의 일본은 태풍이 오가는 것이 날씨 변덕이 심할 것 같아 걱정했는데, 다행히 도착했을 때의 날씨는 나쁘지 않았다. 숙소 체크인을 위해서는 한참이나 시간이 남아서, 가방을 맡겨 두고 일정을 진행한 뒤 저녁에 체크인을 할 예정이었다. 숙소에 캐리어를 넣으러 가면서 주위 대로변을 구경한다. 한국과 비슷한 듯 하면서도 다른 부분들이 눈에 보인다.




히로시마 역 앞에 내리자, 열기와 습기가 반겨준다. 하지만 이내 익숙해졌다




큰길을 따라 캐리어를 끌며 숙소로 향한다




일본의 길거리는 한국의 그것과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다른 부분이 있다




숙소 체크인 시간 이전, 혹시 청소중인 직원을 만날 수 있으려나 하고 기대했지만 문은 아예 잠겨 있다. 작은 건물을 통째로 쓰는 게스트하우스는, 집 문을 열고 들어가서 안쪽 공간에 캐리어를 놓고 가라고 적혀 있다. 캐리어를 안에다 넣은 뒤 마음 편하게 작은 등가방 하나만 가지고 구경을 나선다.




그런데 아침부터 아무것도 제대로 먹은 것이 없어서 그런지 극심한 배고픔이 더이상 견딜 수가 없을 지경이다. 사실 히로시마 역부터 게스트하우스까지 걸으면서 어디서 밥을 먹을 것인가 열심히 물색해 보았다. 하지만 이곳이라면 일본어는 하나도 못하는 나도 무난하게 밥을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싶은 곳이 없었다. 결국 큰길에 있던, 주유소처럼 생긴 큰 음식점에 들어간다. 카레 전단이 붙어 있는 곳이 카레를 파는 곳 같았다.




오후 1시쯤 되어서, 번잡하지는 않은 음식점 안에 사람들이 곳곳에서 밥을 먹고 있다. 이제는 한국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게 된 1인용 좌석들 앞을 지나서, 구석진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들여다본다. 영어가 적혀 있다. 다행이다. 큰 메뉴판 사이에 겹쳐진 작은 메뉴판들을 보니 가전제품 판촉물 같아 보인다. 인상적인 것은 시원한 얼음물 통 밑에 있는 받침대이다. 얼음물에 맺힌 물방울이 바닥에 고이지 않게 받아 주는 것이 지극히 일본스럽다.




그림이 잘 나와 있어서 메뉴 고르는데에 큰 문제가 없다. 무난해 보이는 카레 메뉴를 하나 골라서 먹어 보니,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엄청난 맛은 아니지만 허기진 배를 따뜻하게 채워 발에 힘을 불어넣어주기엔 충분한 음식이다. 그리고 나중에 한참 지나고 나서야 나는 사진을 보면서 알았다. 내가 밥 먹은 곳이 코코이치방야라는 것을. 한국에도 지점이 있는 그 카레 가게라는 것을.




큰 메뉴판 안에 작은 메뉴판. 그 안에 또 작은 메뉴판




거창할 것 없지만 맛있게 먹은, 일본 여행의 첫 끼니는 코코이치방야였다




나는 여행을 갈 때 계획은 숙소나 이동수단, 반드시 방문해야 할 곳 같은 구체적인 것들만 세우고 이외의 것들은 아무 생각 하지 않고 가는 편이다. 보통은 현지에 가서 유동적으로 일정을 정하는 편인데, 밥을 먹고 나서 저녁에 숙소 돌아갈 때까지 시간이 좀 있으니 히로시마 역 근처의 쇼핑몰들과 도시를 구경해 볼 생각으로 길을 나선다.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아까보다 한결 더위에 적응되어 걸어다니는 것이 좀 나아졌다. 아무런 생각 없이 히로시마 역 근처까지 걸어가서 쇼핑몰들을 구경한다. 다양한 복합 쇼핑몰들도 있지만 큰 식품매장들도 많다. 다양한 음식을 파는 마트와 함께 백화점 지하의 약간 고급스러운 식품매장도 있다. 이런 곳에서 음식과 식재료 파는 것을 구경하다 보면 그 나라의 문화와 특색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이 많다. 새로운 곳을 갈 때마다 빼놓지 않고 방문하곤 한다.




쇼핑몰에 있는 스타벅스를 가는 것도 재미있다. 적당히 거리를 두고 위쪽에 붙은 일본어 메뉴판을 구경하고 있으니 점원이 영어 메뉴판을 주려는 듯이 손에 들고 나를 쳐다본다. 비록 사소한 것이라 해도 깊은 인상을 받게 되는 것은 쉽지 않은 것 같다. 일본 스타벅스에서만 먹어볼 수 있는 메뉴 같은 것들을 먹어보는 것도 좋다. 케이크나 전반적인 메뉴 구성도 다르기에 이런 차이점을 관찰하는 것도 재미있다.




히로시마 역으로 가는 길




와이파이를 사용할 겸, 앉아 쉬었던 일본 스타벅스




일본 스타벅스의 푸드 메뉴 구성은 한국과 약간 차이가 있다




내가 여행 갈 때마다 하는, 그 지역 마트 구경하기




잠시 스타벅스에서 쉬다가 나가서 거대한 건물들 주위로 있는 골목들을 걸어 본다. 작은 골목에 카페나 음식점들이 군데군데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지금의 일본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마지막으로 일본을 갔을 때도 호객행위를 쉽게 볼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매장 밖 호객행위가 부정적인 편이고 많지 않지만, 일본에서는 매장 밖에서 손님을 끌어모으는 것을 흔하게 볼 수 있다. 간단한 음식을 함께 파는 듯한 카페의 직원이 약간은 한산한 골목에 나와 호객행위를 하고 있다.




작은 건물들로 이루어진 골목들 사이에는 특이하게 생긴 주택들도 있고, 야외에 널어둔 빨래나 화분 같은 생활흔적도 볼 수 있다. 골목길에서 갑작스레 공원과 놀이터를 만났다. 문득 어릴 적 몇번 놀았던 아파트의 놀이터가 생각났다. 그때가 한창 모래 놀이터가 없어지고 매트가 깔린 놀이터로 바뀌어 가던 시절이었다. 이제 한국에서 찾기 힘들게 된 흙바닥 놀이터를 보니 기분이 묘하다.




히로시마 역과 그 근처의 골목길 바로 앞에서는 흘러가는 강을 볼 수 있다. 한강만큼 큰 것은 아니어서, 서울로 따지자면 천 정도이다. 바다의 습함이 느껴지는 강 위로, 밤이 되면 도시의 불빛이 비춘다. 이런저런 구경을 마치고 해가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니 흐르는 물 위로 비춘 히로시마의 야경이 예쁘다. 강변을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낮과는 다른 약간 서늘한 바람이 닿아온다.




역 근처 골목길 구경을 하다가 만난, 옛날 느낌의 놀이터




히로시마를 통과하는 강 위로, 야경이 내린다




유유자적 구경을 마치고, 가는 길에 보이는 마트에서 캔맥주와 음식을 샀다. 다양한 반찬들 사이에서 맥주와 함께 먹으면 좋아 보이는 닭고기 요리를 산다. 숙소에 도착해 직원과 함께 예약을 확인하고 체크인을 마친다. 깔끔한 캡슐베드 구조이지만, 체크인이 늦어서 그런지 아쉽게도 2층을 얻게 되었다. 작은 공간을 최대로 활용하기 위한 구성과, 아담해도 빈틈없는 주방이 인상적이다.




노트북에 인터넷을 연결하려 하지만 와이파이가 노트북은 연결되지 않고 아이폰에만 연결되서, 일단 아이폰의 인터넷을 노트북으로 끌어와서 인터넷을 연결한다. 어차피 가족에게 사진을 보내주고 간단한 인터넷 정도만 하면 되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




인터넷, 맥주, 안주와 함께하는 여유로운 저녁




당시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하고 있던 나는 예약한 게스트하우스의 사장과 만나서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그런데 운 좋게도 그날 일을 하고 있던 사람이 사장이었다. 40대 아주머니로 보이는 듯한 사장은 영어를 능숙하게 할 수 있어서 일본어를 못하는 나와 대화를 무리없이 할 수 있다.




짧은 시간이지만, 사장과 함께 게스트하우스 운영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눈다. 가게 사장은 한국 드라마를 좋아해서 밤에 잠이 안 올때 인터넷으로 보기도 한다. 그 말을 들으니 역 근처의 비디오 가게가 떠올랐다. 한국에서는 사실상 사라진 비디오 가게가 엄청 크게 있었는데, 한국 드라마도 엄청나게 많았다. 그때 당시 캡슐베드에도 관심이 많아 디자인과 설계는 어떻게 했는지도 물어봤는데, 남편은 다양한 직업을 거치며 목수 일도 할 수 있었다 한다. 그래서 캡슐베드를 직접 만들었다고. 그 외에 운영비 같은 것도 물어봤는데, 생각보다 구체적으로 답을 해 줘서 고마웠다.



 

우리 가족이 오랜 기간 시켜먹은 김이 있는데, 나는 일본에 갈 때 김을 몇 봉투 챙겨서 갔다. 여행 중 보답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선물로 주기 위해서이다. 히로시마 여행 전 챙긴 김 하나를, 그 사람에게 주었다.




여행보다 좋은 것은, 뜻깊고 즐거운 대화가 있는 여행이다. 그렇게 히로시마의 첫번째 날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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