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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준 Jan 30. 2022

게임을 왜 하나요

다른 나이대의 다른 이유

나는 어릴적부터 게임 하는 것을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교 때까지 2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면서 옛날만큼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지금도 가끔 동생과 게임을 한다. 게임에 돈을 많이 쓰거나 엄청나게 오래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해 온 것이다.



그리고 게임을 아예 하지 않는 사람들은 나 같은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사실 요즘 들어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는 것이 흔해졌다 해도, 게임은 여전히 익숙한 사람들에게만 익숙한 문화이다.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게임을 좋아하지만, 손도 대지 않는 사람들은 전혀 하지 않는다. 게임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왜 다른 사람들이 게임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끝나고 나면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그 짧은 시간을 위해 스트레스를 받거나 재미를 느끼는지 알지 못한다.



원래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굳이 있을 필요 없고 안 해도 되는 것들이다. 게임도 그 중의 하나이다. 다만 다른 것은, 게임의 경우 시간이 지나고 나이대가 바뀔수록 게임을 하는 이유와 즐기는 방식이 크게 달라진다는 점이다. 적어도 내가 경험한 것은 그랬다.



그 변화를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게임을 하는 이유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게임을 하는 사람들은 각각 다양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변하는 이유들이다. 2020년 7월, 서울 해방촌




나는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본격적으로 게임이라는 것을 접했다. 그때 문방구 앞에 놓여 있는 작은 게임기들도 아이들의 인기를 끌었지만, 나에게 강한 기억으로 남은 것은 초등학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어두컴컴한 오락실이었다. 초등학교 저학년이 가기엔 애매하고, 엄마아빠는 치를 떨었던 그 공간에는 그때 내 키보다 컸던 게임기들이 가득했다. 그때 나에게 게임은 경험해 보지 못한 어떤 것이었다. 비행기가 날아다니며 적을 격추하는 게임에서는 내가 여태 보지 못했던 모습의 바다와 초원, 하늘, 비행기들이 있었다. 그때 게임이란, 재미있다라기 보다는 신기한 것이었다. 




초등학교 고학년과 중학교 때는 친구들과 함께 게임을 하기도 했다. 같은 팀으로 하기도 하고 서로 팀을 나눠서 대결하기도 하는데, 처음에는 어떤 목표를 이룬다기보다는 같이 무언가를 하는 놀이 문화에 가까웠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생기는데, 가령 누군가를 상대로 이겨본다던가 아니면 어떤 위치에 도달해 본다던가 하는 것이다. 이때 단순히 게임을 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을 잘 해서 인정받고 실력 차이를 행사하는 것에 흥미를 느끼게 된다. 승자의 쾌감이란 게임에서조차 얻기 쉬운 것이 아니지만, 현실에 비하면 그나마 쉽다는 것을 아직 모를 때이긴 해도 말이다. 




단순히 인정받고 실력행사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게임으로 만난 사람들과 인간관계를 쌓아나가는데에 흥미를 느끼기도 했다. 특정 게임을 하면서 그 안에서 만난 사람들과 일상을 공유하고 그런 부분에서 안정을 느낀다. 현실에 불만이 많을 때, 자신에게 위안을 주는 인터넷 안에서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는 것이다. 해결할 수 없는 현실의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인터넷의 인간관계를 접했을 때 보이는 모습 중의 하나이지만, 그때 나는 그런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 것 같다. 




고등학생이 되면 이전처럼 게임을 많이 하지는 못하지만, 대학교에 가면 제한이 없다시피 게임을 할 수 있게 된다. 이때 만약 이기기 위한 게임을 한다면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는지 면밀하게 검토하고 이기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 순간이 온다. 이전보다 시간도 있고, 어떻게 무엇을 하면 이길수 있다 라는 사고를 할 수 있는 때다. 이때 게임을 한다는 것은 자신이 이뤄낼 수 있는 성취에 가깝다. 누구나 무언가를 달성함으로 성취감을 얻고 쾌감을 느낀다. 게임 또한 그런 성취를 주는 행동이다. 게임에서 성취를 얻어낸다는 것은, 다른 것을 통해 성취를 얻어낸다는 것보단 쉬워 보이기에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얼핏 보기엔 그러하다.




그러나 군대도 갔다 오며 대학교의 시간이 끝나갈 때, 게임이 주는 성취감이란 크게 의미가 없어진다. 운동을 하던, 요리를 하던, 사람을 만나던, 책을 읽던, 좀더 생산적인 성취감을 얻을 수 있다. 결국 이전에 다른 사람을 이기고 실력행사를 하기 위해 게임을 하던 옛날의 그 성취감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게 된다. 그래도 나는 아직도 동생과 종종 게임을 하고, 이기기 위해서 게임을 한다. 온전히 이겨야만 한다는 목표보다는, 동생과 같이 게임을 하고 무언가를 같이 한다는 것에 더 의미를 두는 편이다. 물론 이기지 못해서 답답할 때가 많기는 해도 말이다.




다른 사람들이 성인이 되고 나서 게임을 하는 경우는 두 가지인 것 같다. 하나는 게임보다는 게임에서의 인간관계와 결속을 좋아하는 경우이다. 게임을 일종의 사회 집단 놀이로 받아들이며 자신의 역할을 즐기고 다른 사람들과 인간관계를 쌓아 나가는 것에 의미를 두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게임을 장르적인 재미로 즐기는 것인데, 책을 읽고 영화를 보듯 게임을 즐기는 것이다. 관찰자가 아닌 경험자가 되는 게임의 환경은 그것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세계관이 되어준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시간이 지나 게임의 그 어떤 특성도 매력적이지 않은 것 같다. 게임을 할 때마다, 소비하는 시간이 너무 비생산적이라는 생각에 뭐라도 더 나은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오로지 게임만이 제공했던 다양한 동기부여는, 시간이 지나면 무언가로 대체되어 사라진다. 2020년 4월, 서울 성북구








최근 들어 나에게 게임이란 그저 동생과 같이 무언가를 하는 것에만 의미가 있다. 내가 옛날에 흥미롭게 알고 있었던 게임이 출시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도 크게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 심지어는 그 흥미조차도 게임 자체에 대한 것이 아니라 게임이 다루는 세계관이나 이야기 같은 것이 대부분이다. 




어쩌면 나에게 게임은 점점 추억으로 변해가고 있는것 같기도 하다. 한때 다양한 이유로 게임을 했었지만 이젠 하나같이 굳이 게임을 해야만 하는 이유가 아니게 된 것이다. 게임을 하기 위해서 컴퓨터에 온전히 시간을 쓴다는 것 자체가, 더 나은 곳에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물론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굳이 생산적이지 않은 것들인 경우가 많다. 반드시 생산적인 것들로만 인생을 채워나갈 필요는 없고 그것이 가능하지도 않다. 하지만 내가 지금 들어 게임을 할 생각이 들지 않는 것에서 나는 점점 게임에 흥미를 잃은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는 것이 있고, 또 큰 의미로 다가오는 것이 있는 것처럼.




어떤 것이 멀어지는 사이 무언가는 가까워져간다. 여태까지 그랬듯이, 앞으로도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의미를 얻는 것이 있고 의미를 잃는 것도 있다. 게임도 그 중 하나 아닐까. 2020년 10월, 충남 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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