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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준 Feb 07. 2022

결혼은 가족의 해체다

시작은 결국 끝에서 오니까

최근 들어 결혼식에 간 적이 있었다. 결혼식에 갈 때마다 나는 과연 이런 결혼식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하지만 그래도 결혼식에 가서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은 재미있다. 결혼식 시작 전 결혼을 하는 사람들의 친족이 손님들을 맞이한다. 그리고 결혼식이 시작된다.



결혼식의 초점은 새로운 가족의 탄생을 알리는 것이다. 인연이 없던 다른 두 가족에 속해 있던 구성원들이 만나고 결혼하게 되어 새로운 가족으로 탄생한다. 주례와 사회에서는 새로운 가족의 탄생을 강조한다. 두 가족의 결합으로 탄생한 새로운 가족의 앞날에 축복을 부탁한다.



그런데 주례와 사회의 말을 듣다 보니 가족의 탄생이라는 표현을 곱씹게 되었다. 가족이 탄생했다는 말은, 마치 아무것도 없는 무의 상태에서 새로운 가족이 생겨났다는 것 처럼 느껴졌다. 마치 0에서 1이 나타나는 것처럼 말이다. 



과연 가족은 그렇게 탄생하는 것이며, 결혼이 그렇게 가족의 탄생만을 의미하는 것일까.



결혼식장에서 축하하는 가족의 탄생이란, 과연 탄생 뿐인 것일까. 2021 06 21, 서울 미아사거리



대부분의 가족에는 핵심 노동력이 있다. 이 핵심 노동력은 가족에게 금전적인 지원을 제공하며, 가족에게 필요한 것들을 제공한다. 핵심 노동력이 외부에 제공하는 노동과 그에 대한 대가는 가족 구성원들에 대한 기여로 제공되는데, 아마 대부분의 기여란 자식에 대한 교육과 지원일 것이다. 



핵심 노동력, 대부분의 경우에 부모는,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대부분의 자원을 자식에게 제공한다. 자식이 생기는 시기 이후부터 지금 당장 얻을 수 있는 그리고 앞으로도 얻을 수 있는 대부분의 수익이 자식에 대한 투자로 이어지는 것이다. 한국 사회가 급변하면서 시간이 갈수록 얻을 수 있는 부의 규모는 바뀌고 있지만, 어쨌든 핵심 노동력이 벌어들일 수 있는 대부분의 소득이 자식에 대한 유형과 무형의 투자에 사용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각 가족의 모든 지원을 받으며 성장한 자식은 곧 자신이 핵심 노동력이 되어 가족에 기여할 수 있게 된다. 자식이 차세대 핵심 노동력이 되어 가족에게 경제적 지원을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데, 결국 기존의 핵심 노동력이 벌어들일 수 있는 경제적 이득이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자식이 장성할 때까지 노동력을 제공한 기존 구성원은 그때쯤 되면 이전과 같은 경제적인 수입을 올리기 힘든 상황인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사실상 장성한 자식이 경제활동을 하게 되면 그 가족의 경제적 미래는 자식에게 달려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가족 구성원의 기존 핵심 노동력은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을 제공하여 차세대 핵심 노동력을 키워낸다. 기존 핵심 노동력이 더이상 금전적인 지원을 제공할 수 없게 되면, 그동안 열심히 투자해 온 차세대 핵심 노동력이 새로운 중심이 되어 가족에 경제적 활력을 불어넣는다. 그렇게 가족은 안정적인 자본 규모를 가지게 된다. 



물론 자식이 결혼을 하지 않을 경우의 이야기이다.



결혼은 새로운 가족의 탄생이다. 그 새로운 가족이란 어떤 사람들로부터 탄생하는가? 기존 가족 구성원들로부터 탄생하는 것이다. 기존 가족의 구성원들이란 어떤 사람들인가? 기존 가족 안에서 차세대 핵심 노동력으로 투자 받았던 사람들이다. 기존 가족 구성원의 핵심 노동력이 더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그 위치를 이어받아야 하는 사람들이, 결혼으로 갈라져 나가는 것이다. 



가족의 탄생이란 두 가족의 결합으로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다. 각기 다른 두 가족에서, 앞으로 그 가족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할 핵심 구성원이 따로 떨어져 나와 새로운 가족으로 독립하는 것이다. 



세상에 땅에서 솟아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새로운 가족이 탄생한다면 누군가는 가족을 잃음은 당연한 것이다. 새로운 가족이 탄생할 때 기존 가족 구성원들은 해체에 가까운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다.



새로운 가족이 탄생할 때 기존 가족은 해체를 겪을 수밖에 없다. 2021 06 11, 서울 잠실 



새로운 가족으로 자리잡을 때 기존 가족과는 어떤 인간관계가 되는지는 사실 많은 사람들의 논쟁거리이기도 하다. 결혼한 뒤 독립하고 나면 기존 가족과의 거리감이 절대 이전과 같지 않다는 것은 모두가 동의하는 사실 같다. 그렇지 않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같은 논쟁은 시작되지 않았을테니. 



왜 기존에 친밀하던 가족과 거리를 둘 수밖에 없는 길을 택하는 걸까? 사람들은 왜 결혼을 하여 독립할까? 기존에 있던 오래된 가족과의 유대관계보다, 그 유대관계에 비교하면 안지 얼마 되지 않았을 새로운 사람과 앞으로의 시간을 약속한다. 사실상 기존의 가족에 해체와도 같은 변화를 떠넘기면서도, 새로운 사람과의 새로운 사회적 계약을 약속하고 이행한다. 생각해 보면 약간 이상한 일 같아 보인다. 



문득 나는 연어를 떠올렸다. 연어는 번식철이 되면 바다에서 거슬러 자신이 태어난 강으로 돌아온다. 수많은 포식자들을 거치고 험난한 자연환경을 거치며 산란처를 찾은 연어는, 수척해진 꼬리로 강바닥을 파내어 산란지를 만들고 산란을 한 뒤 수정시킨다. 그리고 힘이 다해 죽어 유기물 덩어리로 돌아간다. 



나는 인간의 행동양식이 동물의 것과 본질적으로 비슷하다고 느낄 때가 많다. 그런 나에게 문득 결혼이라는 과정은 마치 연어의 산란 행위같이 보였다. 연어도, 사람도, 기존의 안정적인 환경을 버리고 새로운 환경에 뛰어든다. 억겁의 시간과 무한한 우주 안에서 티끌에 티끌보다도 작을 단백질 입자를, 찰나의 순간 이후의 다음 세대로 넘기기 위해서.



시작이 있기 전에는 끝이 있을 수밖에 없고, 탄생이 있기 전에 해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각각 다른 두 가족의 자랑스러운 사람들은 새로운 가족이 되어 식장을 떠나간다. 마치 바다를 떠나 강어귀로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누군가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그렇게. 



산란기의 연어와 결혼식의 사람은, 묘하게 닮아 있다. 2020 10 29 서울 응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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