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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준 Feb 07. 2022

히로시마 원폭돔의 한국인들

어쩌면 약간 복잡할 수 있는 장소

히로시마에 도착하고 다음날 아침, 냉방이 잘 유지되는 캡슐베드 안에서 편하게 잠을 자고 적당히 일어났다. 나갈 준비를 하고 나서 방 옆쪽의 유리창을 보니, 이중창으로 된 유리창 사이에 물방울이 잔뜩 서려 있다. 날씨가 엄청나게 습하긴 한 모양이다. 




전날 아침을 따로 준비해 두지 않았기에, 숙소에서 아침을 먹지 않고 바로 길을 나섰다. 가장 가까운 편의점에 들어가 아침으로 먹을 만한 것이 무엇이 있나 찾아보다가 재미있어 보이는 떡이 있어서 사 먹었다. 망개떡을 떠올리는, 이파리에 싸여진 떡이었다. 기억에 남을 정도의 맛은 아닐지라도, 꽤 괜찮았던 것 같다. 




사실 나는 아침식사를 하고 여행을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여행 중 아침식사를 하는 것에는 의외의 단점도 있다. 아침식사 메뉴는 숙소 제공 조식처럼 제한적인 경우도 많아서 아침을 먹으면 음식 하나 먹을 위장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옛날 여행 다닐 때 나는 보통 아침에 빈 속으로 나와서 먹고 싶은 것을 간단히 사 먹곤 했다. 밖에서 음식 먹기가 힘들어진 지금은 아주 옛날 이야기가 되버렸지만 말이다. 



숙소의 이중창에 맺힌 물방울들. 습기를 보여주는 좋은 지표가 되었다




한국의 망개떡을 떠올리는, 이파리에 싸여진 떡




본격적인 히로시마 여행의 첫날, 히로시마 하면 가장 유명할 장소를 가 보기로 했다. 원폭 돔으로 가기 위해서 히로시마 역으로 가서 트램을 탄다. 트램은 현대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것도 있고, 옛날 느낌이 물씬 나는 것도 있다. 빠른 속도는 아니지만 덜커덩거리며 도시를 달리는 것이 안에서 밖을 구경하기에 좋다. 



히로시마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신형 노면전차




하지만 이런 옛날 느낌이 좀더 내 취향이다




얼마 걸리지 않는 짧은 시간, 트램을 타고 원폭 돔 근처에서 내릴 수 있다. 역에서 내려 조금만 걸어가면 골조만 앙상히 남은 건물이 나타난다. 히로시마 원폭 돔이다. 히로시마에 원폭이 떨어졌을 때, 충격파를 수직으로 받아서 운 좋게 무너지지 않고 남게 된 건물이라 한다. 지지대 등을 설치하여 지금까지 보존하고 있고, 주위에는 공원을 조성해 두었다.




골조만 앙상하게 남은 히로시마 원폭 돔의 모습




히로시마 원폭 돔 앞에는 긴토시와 챙모자로 중무장을 한 사람들이 있다. 더운 날씨에도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앞에 두꺼운 클리어파일을 쭉 늘어놓고 있다. 각각 다른 나라의 언어로 되어 있는 그것은 원폭 돔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침략전쟁을 시작한 일본이 전쟁 중 원폭을 맞았다 라는 이야기가 적혀 있다. 




원폭 돔 앞쪽에서는 저 멀리 히로시마 평화 기념공원이 보인다. 희생자를 기린다는 반짝반짝한 건물들 앞쪽으로 넓은 공원이 보인다. 문득 왜 이 사람들은 여기서 이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생각했다. 이 더운 날씨에, 냉방 잘 되는 저 으리으리한 건물 안에서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평화 공원이라는 이름에서 느껴지는 묘한 기분에, 그리고 굳이 안에 들어가 볼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원폭 돔과 그 근처를 돌며 구경만 해 본다. 



더운 날씨, 나무 그늘 아래에서 본 원폭 돔




히로시마 원폭 돔 근처로는 공원이 조성되어 있는데, 곳곳에 다양한 위령탑이 있다. 그 중에는 원폭이 터졌을 때 죽은 한국 사람들을 위한 위령탑도 있다. 히로시마 여행을 갈 때 한국에서 삼다수 두 병을 샀다. 한 병은 공원에 있는 희생자 위령탑에 부었고, 나머지 한 병은 한국인 위령탑에 부었다. 위령탑에 물 하나 붓는 것이 뭐가 큰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그때는 그렇게 하고 싶었다. 




위령탑이 있는 공원은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있고 군데군데 벤치가 놓여 있다. 더운 날씨에 나무가 잘 우거진 산책로는 서늘해서 걷기 좋다. 사람이 별로 없어 한적한 공원에서 이런저런 사진을 찍으며 돌아본다. 공원을 걷다 보니, 건너편 원폭 돔을 정면에서 볼 수 있다. 작은 강 위로 원폭 돔이 서 있다. 



원폭 돔 근처의 한국인 위령탑




나무가 많은 공원은 더운 날에도 서늘해 좋다




강 위로 보이는 원폭 돔




공원에 피어 있는 꽃 너머로, 원폭 돔과 강이 보였다




원폭돔에서 조금만 가면 히로시마 번화가가 나온다. 핫초보리 라는 이곳에는 상점가와 음식점이 가득하다. 적당히 구경을 하다가, 저녁이 되어 다시 원폭돔으로 돌아왔다. 원폭돔 바로 옆에 있는 오리즈루 타워에 가기 위해서이다. 오리즈루 타워 위에 있는 전망대에서 히로시마 도시를 돌아볼 수 있다고 한다. 




오리즈루 타워는 들어가서 타원 형의 계단을 천천히 돌아 올라가 옥상으로 가는 구조이다. 옥상으로 가는 동안, 계단에는 히로시마의 시간을 나타낸 그림이 액자로 걸려 있다. 옛날 원폭이 떨어지기 전, 원폭의 순간과 직후의 고통, 히로시마가 다시 경제성장을 이루기까지의 그림들이 시간 순서대로 걸려 있다. 산업화 과정에서의 몇몇 그림들은 내가 역사 교과서에서 보던 한국의 산업화 장면과 아주 비슷해서 신기하다.



타원으로 둘러싸인 계단을 따라, 오리즈루 타워 꼭대기까지 올라간다




계단에 걸린 액자들은, 원폭 이후 히로시마의 부흥을 시간순으로 나타냈다




가장 높이까지 도착하고 나면 색종이 하나를 접어서 아래쪽에 떨어뜨리는 체험 행사가 있다. 평화를 기원하는 종이학을 접어서 떨어뜨리는데, 떨어뜨린 종이학은 오리즈루 타워 옆쪽의 거대한 유리 기둥 안에 쌓인다. 종이학을 접고 나서 더 올라가면 비스듬한 작은 공간이 있고, 앞쪽으로 히로시마의 전경이 펼쳐진다. 



해가 져 갈 때쯤 도착한, 오리즈루 타워 전망대




비록 역광이었지만, 노을과 함께 히로시마의 전경을 볼 수 있다




히로시마 너머로 펼쳐진 산들 위로 해가 지는 전망이 좋다. 비스듬한 계단에서는 그 전망이 편하게 잘 보인다. 그곳에서 가만히 앉아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기 좋다. 오리즈루 타워가 방문자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잘 생각해 보면 방문자에게 의도하고 있는 것이 어렴풋이 보이는 것 같다. 




오리즈루 타워의 계단을 올라오면서 순서대로 보게 되어 있는 액자를 봤을 때 그 느낌은 확고해져서 무언가 투명하게 보이는 느낌도 들었다.기존 전범국이라는 이미지와 직접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원폭이라는 역사적 소재를, 고난과 역경에서 벗어나 다시 부활한 도시로 연결하는 변화구가 아주 영리하게 느껴졌다. 




과거 일본에게 직접적으로 가해를 받은 적이 없는 국가들에게는 큰 의미 없게 다가올 수 있겠지만, 바로 옆에서 식민지화를 겪었던 나라의 사람들에게는 그 전달이 매우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 아닐까. 비록 이런 저런 것들을 가급적 폭넓게 받아들이려고 하는 나이지만, 전범국에서 원폭피해국가로의 전환이 구렁이 담 넘어가듯 자연스러운 모습은 여러 가지 의미로 대단함을 느끼게 했다. 




해가 거의 다 져 갈 때쯤, 다시 한번 원폭돔으로 돌아와 근처를 구경했다. 저녁 밤하늘 아래, 원폭돔이 허름한 모습으로 시대를 버티며 서 있었다. 원폭돔을 뒤로 하고 히로시마의 밤거리로 나아간다. 어지러운 네온사인과 반짝이는 불빛이 가득한 밤거리 구경이 즐겁다.




초저녁의 히로시마 원폭돔




네온사인과 불빛으로 가득한 히로시마의 밤




히로시마의 밤은 그렇게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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