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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준 Feb 20. 2022

미국인 친구, 일본어 통역 가능

처음 보는 외국인과 히로시마 근교 구경

둘쨋날 일정을 마치고 숙소에 들어왔을 때 외국인 한 명을 만났다. 말 하는 것이 많이 취한 상태였지만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자기를 알렉스 라고 소개한 그 친구는 내일 뭘 할 것이냐고 물었다, 히로시마 근처의 유명한 장소인 미야지마가 내 계획이었는데, 그 친구가 자기도 미야지마 갈 거라면서 내일 같이 가자고 하는 것이었다. 영어 연습도 할 겸 같이 가면 재미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그러자고 하고, 내일 아침에 만나기로 했다. 




다음날 아침, 숙소 1층에서 함께 만난 우리는 미야지마로 가기로 했다. 같이 이야기 한 지 30분도 되지 않았는데 함께 어디를 간다는 것이, 그때는 아직 신기했던 때였다. 미야지마로 가기 위해서는 히로시마에서 출발하는 열차를 타고 미야지마구치에서 내린 다음 미야지마 들어가는 배를 타야 했다. 열차를 타니 오른쪽으로는 높은 산이 보이고 왼쪽으로는 바다가 보였다. 




미국인과 오랜만에 대화하게 된 나는 옛날부터 정말 궁금하게 생각하던 것을 질문했다. 너희는 진짜 솔직하게 가족간에도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니? 가령 할머니가 너에게 선물을 줬는데 너무 네 취향이 아닌 옷이야. 그럼 앞에서 할머니 이거 내 취향 아니에요 라고 말해? 알렉스는 약간 난처한 표정을 짓더니 대답했다. 어 너무 공격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보통은 솔직하게 이야기 하는 편이야. 그것부터 시작해서 외국인으로 일본에 정착해 사는 것은 어떤 것인지 같은 다양한 주제들 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우리 옆에 앉아 있던 일본 아저씨 한 명이 우리 이야기를 다 듣고 있었던 모양이다. 내리기 전에 즐거운 여행 되라고 하고 내린 것을 보면 말이다. 




아침, 히로시마 역에서 미야지마구치로 가는 길




미야지마구치 역까지의 짧은 여정 후, 페리를 타기 위해 걸어간다




미야지마구치에서 내려 짧은 도보 이동 후 페리를 타고 미야지마구치로 들어갈 수 있다. 거대한 여객선은 사람을 한가득 태우고 조금씩 바다로 나아가, 미야지마로 향한다. 날씨가 좋아서 바다와 해변 항구도시를 배경으로 찍는 사진이 잘 나온다. 사진을 찍으며 알렉스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때 만나던 사람과 이런저런 고민이 있었기에, 외국인의 관점에서 내가 불만을 느끼는 부분이 비합리적인 것인지 같은 것들을 물어봤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순식간에 여객선은 미야지마에 도착했다. 내려서 어디로 가야 할까 싶지만, 우르르 몰려가는 사람들을 따라가다 보면 그곳이 바로 관광지인것 같다. 오뎅바를 하나 사먹는 알렉스 옆에서 나도 하나 사먹고 맛을 교환해서 먹어봤다. 일본 관광지에 가면 쉽게 볼 수 있는, 기념품 거리가 잔뜩 몰려 있는 가게가 나타난다. 소소하게 구경할 것들이 많다. 




미야지마구치에서 미야지마 까지 여객선을 타고 들어간다




일본 관광지에 가면 흔하게 볼 수 있는, 기념품 상점들




사람들과 함께 걸어가다 보니, 탁 트인 바다와 함께 해변이 나타난다. 물의 색이 마치 열대 지방의 바다 같다. 바다 위로는 저 멀리 해안가 도시들이 놓여 있고, 그 뒤로 산맥과 바다들이 보인다. 조금만 시선을 돌리니, 바닷물에 잠겨 있는 도리이가 나타난다. 신사의 입구에 일반적으로 있는 이 도리이는 신기하게도 바닷물에 완전히 잠겨져 있다. 열대 바다의 푸른 색과 주황빛 기둥의 색감 조화가 마음에 든다. 




바다의 색감이 열대 지방의 것 같아 좋았다




바다 한 가운데에 잠겨 있는 도리이




해변을 따라 걸어가다 보면 이쓰쿠시마 신사가 나온다. 신사는 마치 항구처럼 바다 위에 지어져 있다. 항구 위 마루를 따라 걷다 보면 밖으로 도리이와 함께 바다 쪽 전경을 볼 수 있다. 저 멀리 도리이 뒤로, 낮은 산을 따라 켜켜이 올라 있는 집들이 보인다. 더 멀리는 아주 특이하게 생긴 건물이 보였는데, 궁금해서 나중에 검색해 보니 일본의 어느 교단의 건물이라고 한다. 




이쓰쿠시마 신사 바로 아래로 바닷물이 출렁거린다




사람들로 붐비는 신사 안 통로




바다 건너편의 도시와 도리이




원한다면 바닷가에 발을 담가볼 수도 있다




이쓰쿠시마 신사 근처의 기념품 가게에 볼 것이 많다




이쓰쿠시마 신사를 나와 근처 골목의 기념품 가게까지 구경하고 나니, 바로 앞쪽의 언덕 위에 정자가 있었다. 언덕에 올라가면 근처를 돌아보기 좋을 것 같아 친구와 함께 올라갔는데, 가 보니 정자에 들어갈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정자라고 하기엔 좀 큰 구조물 안은 그늘이 져서 시원했다. 




서늘한 그늘 아래에서 땀을 식히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생각해 보면 여행지 가서 처음 만나는 사람과 무언가를 솔직하게 이야기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 같다. 하지만 오히려, 여행을 갔기 때문에 가식 없이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 같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앞으로 언제 만날지도 알 수 없으니 더욱 마음 편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나는 외국인과 이야기 할 때 그런 것이 더 마음 편해서, 그때 알렉스와 내가 하는 이런 저런 고민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그때 나는 오랜기간 만나던 사람과 더이상 관계를 지속하지 못할 것 같다고 느꼈는데, 그런 생각만 하고 실제로 입 밖으로 꺼낸 적은 없었다. 그러나 그때 알렉스와 이야기 하면서 아무래도 이 관계는 더이상 못 할 것 같아, 앞으로 오래 가지 않을 것 같아, 하고 이야기 했었다. 그렇게까지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 했던 것은, 여행지에서 처음 보는 외국인을 만나서 한 것이 처음이었기에 아직까지고 기억에 남았다. 



넓은 정자 안 그늘은 더위를 식히기에 제격이었다




정자 안에서 이쓰쿠시마 신사와 그 근처의 산들이 보였다




정자에서 좀 쉬다가 내려가서 밥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미야지마에는 굴이 유명하다고 하는데, 굴 정식을 파는 가게들이 많았다. 생굴, 굴 튀김, 굴 구이 등으로 이루어진 식사 메뉴를 파는 곳 중 유명한 곳이 있어서 알아봤다가 함께 들어갔다. 가게 입구의 굴 굽는 직원을 지나 안쪽에 들어가 앉으니, 곧 주문한 굴 정식 두 개가 나왔다. 




큼지막한 굴을 먹어 보니 역시, 내 취향은 아니다. 한국에서도 꼭 먹어야 할 순간이 아니라면 굴을 먹지 않았던 나에게, 역시 특별한 의미를 가진 음식 정도의 의미이지 굴 자체의 맛은 내 취향이 아닌 것 같다. 알렉스는 굴을 잘 먹는다. 알렉스의 고향인 보스턴에서도 굴을 흔하게 먹는다 한다. 별다른 양념 없이 레몬이나 뿌려서 먹는다 한다. 내 취향은 아닌 것 같은데, 먹으라고 양보해 주니 기쁘게 먹는다. 굴을 정말 좋아하는 모양이다. 




굴을 먹고 나서는 근처의 아이스크림 가게로 갔다. 젤라토 가게 2층에는 앉아서 먹을 수 있는 다다미방이 있다. 어떻게 이런 가게를 알았냐고 물어보니, 근처를 잘 아는 친구가 추천해 주었다고 한다. 가만히 앉아서 아이스크림을 먹기보다는 나가서 먹는게 좋지 않을까 했지만, 이렇게 더운 날씨에 아이스크림을 들고 걷다 보면 아이스크림이 다 녹아버릴 것 같아서 먹고 나가자고 제안했다. 나중에 이 제안은 아주 옳은 선택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알렉스가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보고 있는 유튜브를 보니, 그때 미국 대통령이었던 트럼프 관련 영상을 보고 있었다. 이런저런 말들이 많던 때였기에 은근슬쩍 물어보니, 이번 건은 피하기 어려울 거라고 했다. 조만간 탄핵당할 수 있다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그때 우리 둘 다 몰랐지만, 어쨌든 미래는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것이었다.




미야지마의 특산물인 굴을 파는 음식점. 가게 입구에서 점원이 굴을 굽는다




다양한 굴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굴 정식. 아쉽게도 내 취향은 아니었다




아이스크림을 파는 가게 2층의 다다미 깔린 방




소박한 간판과 내부 인테리어가 좋았다




아이스크림을 다 먹고 나서, 미야지마 섬에 있는 전망대를 보러 가기로 했다. 전망대에 가기 위해서는 케이블카를 타야 하는데, 케이블카 정거장 까지 가려면 조금 걸어서 올라가야 했다. 개천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면서 몇 번의 다리를 건넜다. 




올라가면서 알렉스는 자기 조상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는데, 첫 번째 미국에 온 조상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 무슨 일이든 간에 했고, 그 자식들은 조상들이 벌어둔 돈을 기회로 이용해 부유한 전문직을 얻었다고 한다. 그리고 자기 같은 마지막 세대에게는 하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하라고 이야기 해서 자기가 지금 일본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나. 짧은 흐름의 대화였지만 한국에서 부모님이 이야기 하던 것과 겹쳐서 시간이 지나고 나서도 종종 떠오르는 대화가 되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케이블카 정거장에 도착했다. 작은 케이블카 안에 어느 일본인 가족과 마주앉았다. 동양인처럼 생긴 나는 일본어를 못 하고, 서양인처럼 생긴 알렉스는 일본어를 잘 하는 것이 재미있는 모양이다. 맞은편의 일본인 가족은 근처의 도시에서 사는데 미야지마 구경을 왔다 한다. 어설픈 일본어 실력을 이용해 친구와 일본인 가족의 대화를 듣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다. 



작은 케이블카는 6명 정도 앉으면 꽉 차는 정도이다




줄에 아슬아슬하게 달려서 산 위로 나아간다




케이블카에서 내린 직후의 전경




그런데 케이블카에서 내린 곳 만으로도 전망이 아주 좋지만, 조금 더 올라가면 탁 트인 전망을 볼 수 있는 곳이 나온다 해서 고민 끝에 올라가 보기로 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산길을 올라가는 것은 한여름에 결코 쉬운 것이 아니지만, 그늘을 거치고 산 바람을 맞다 보니 그럭저럭 할 만 하다. 다만 알렉스는 땀을 비오듯이 흘린다. 




그래도 조금씩 힘을 내서 거친 산길을 올라가다 보니, 정상의 전망대가 나타난다. 전망대 문 닫기 직전이 되어서 올라가 주위를 둘러보니, 케이블카에서 내렸을 때보다 훨씬 넓은 전망이 눈 앞에 펼쳐진다. 산과 도시, 바다와 하늘이 어우러진 모습이 절경이었다. 와, 이런걸 편하게 볼 수 있다니 부러운데, 하고 친구에게 말했다.




구경을 하고 있으니 전망대 폐쇄 시간이 지난 모양이다. 밑에서 관리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빨리 내려오라고 손을 흔든다. 후다닥 내려가서 다시 올라왔던 길을 거슬러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간다. 



한여름 산행은 쉽지 않았다. 친구에게는 더더욱.




드디어 도착한 산 꼭대기의 전망대




전망대 위에서, 넓게 펼쳐진 주위의 전망을 감상할 수 있다




기묘한 분위기였던 파란 색 벤치




케이블카를 타고 다시 내려와 도리이 쪽으로 돌아가니, 아까와 완전히 다른 풍경이 펼쳐져 있다. 밀물 때인지 물이 빠져나간 바다에 도리이가 박혀 있다. 걸어갈 수 있을까 싶었지만, 한국에서 생각했던 진흙 바닥 바다가 아니라 단단한 모래 바닥이라 신발을 신고 걸어갈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물 빠진 바다를 걸어 도리이까지 가서 구경을 하고 있었다. 




내가 한국에서 보던 갯벌과는 다른 느낌의 모래바닥이 신기하다. 물이 완전히 빠진 바다는 그냥 조금 축축한 모래사장을 걷는 느낌이다. 바닥도 단단해서 발이 빠지지 않는다. 아직 빠져나가지 못한 바닷물이 흐르는 작은 물줄기가 도리이 중앙을 지나가 바다로 빠져나간다.




조수 간만의 차인지 수위가 낮아진 바다 위로, 도리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도리이 기둥 밑부분에는 따개비가 한가득 붙어 있다




구경을 모두 마치고 해가 저물어갈 때, 한적해진 골목길을 통과해 다시 히로시마로 돌아간다. 해질녘 저무는 빛이 바다에 내리는 것이, 처음에 왔을 때와 다른 아름다움이 있다. 




저녁의 한적해진 미야지마 섬 골목길을 따라, 돌아가는 페리를 타러 간다




구름 사이로 바다에 인상적인 노을빛이 내린다



미야지마구치에서 다시 기차를 타고 히로시마로




알렉스는 돌아와서 숙소로 가지 않고 바로 집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신칸센을 타면 금방 갈 수 있다나. 하루간 짧은 여정을 함께 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던 친구와는 그렇게 히로시마역에서 헤어졌다. 내가 마지막에 재미있을거라고 생각한 농담을 했는데, 별로 재미가 없었던 것 같아서 아쉬웠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일본에 정착한 미국인의 일본어 실력에 감탄했던 하루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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