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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준 Feb 13. 2022

사람은 왜 훔쳐볼까

믿을 수 없는 세상에서 믿을 것 찾기

훔쳐보다, 라는 말을 네이버 사전에 검색해 보았다. '남이 모르게 가만히 보다.' 라는 말이 나온다. 뜻에 남이 모르게 라는 표현이 들어가 있다. 그리고 이 표현은 사람들에게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곤 한다. 상대방이 모르게 몰래 무언가를 한다는 의미에서 훔쳐본다는 말은 부정적인 느낌을 주고,  사람들은 그것을 일종의 일탈이나 도덕적 금기 정도로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생각보다 훔쳐보는 일은 많다. 훔쳐본다는 것을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 몰래 무언가를 한다는 것으로 확장한다면 더욱 그렇다. 출근길 다닥다닥 붙은 지하철에서 상대방이 보고 있는 SNS 영상이나 유머 글을 본다. 엘레베이터에서 다른 무리가 하고 있는 이야기를 듣는다. 카페에서 옆 테이블 일행이 하고 있는 이야기를 듣는다. 겉으로 드러나거나 지탄받지 않을 뿐이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누구나 훔쳐본다.




이러한 경향이 반영된 대중문화도 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출연자의 일상생활을 반듯하게 보여주기보다는 일반적이지 않은 각도에서 몰래 본다는 느낌으로 전달하며 그걸 보는 다른 출연자의 감상평도 들려준다. 다른 프로그램에서는, 출연자들이 특정 역사적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시청자들에게 이야기를 전달하지 않고, 출연자가 출연자에게 전달하고 시청자들은 그걸 보고 듣게 한다. 공통점은, 시청자가 그 전달을 훔쳐보고 훔쳐듣는 느낌을 주도록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훔쳐보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그리고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았건 훔쳐보고 훔쳐듣게 된다. 왜 그럴까? 그저 하면 안되는 것을 저지른다는 일탈감과 단순히 그것이 재미있기 때문에 그러는 것일까? 아니면 그 이면에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사람은 그저 몰래 보는 것이 재미있기 때문에 훔쳐볼까? 2020년 10월, 춘천 




우리는 무언가를 보고 판단할 때 수집한 정보에 의지한다. 우리는 그 정보를 수집했다고 생각하고 나름의 합리적인 판단을 거치겠지만, 신경쓰지 않으면 무시하기 쉬운 본질이 하나 있다. 사실 그 정보는, 상대가 보여주기로 결정한 정보라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그리고 사람이 만든 것은 어떤 것이든지, 밖으로 어떻게 보이는지 무슨 모습을 보여줄지 생각해 본다. 그리고 그 거름망을 거치고 나온 것이 밖에 보여지는 것이다. 좋게 말하면 정돈된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솔직한 것이 아닌 것이다. 




내가 토요일에 만난 갑식이는 초코 케이크를 좋아한다고 했고, 일요일에 본 예능 프로에 출연한 모델 갑분이는 등산을 좋아한다고 인터뷰를 했다. 그런데 그게 솔직한 것이라고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갑식이는 사실 타르트를 좋아하지만 이야기 하고 싶지 않아서 그랬을 수도 있고, 갑분이는 사실 독서를 좋아하지만 그저 요새 트렌드가 등산이라서 거짓말을 했을 수도 있다. 나를 대상으로 전달된 정보의 진실됨을 믿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내가 받아들인 정보에서, 그 정보가 나를 대상으로 전달된 것이 아니라면 어떨까? 내가 만약 토요일 갑식이가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는 것을 보았는데, 초코 케이크 맛집을 잔뜩 검색하는 것을 보았다면 어떨까. 인터넷에 올라온 영상에서 먼 발치의 갑분이가 등산을 하고 있다면? 대놓고 나에게 보여져서 상대의 의도가 깃들어 있는 것보다는 좀 더 진실되어 보일 수 있다.




결국 훔쳐본다는 행위는 자신이 얻는 정보에서, 상대가 고려하는 자신을 지우는 행위이다. 상대가 자신에게 보여주지 않는 진실된 모습이 보고 싶은 것이다. 내가 보는 것과 내가 받아들이는 것이 갈수록 믿기 힘들어지는 현대 사회에서, 자신에게 보여지고 드러난다는 것이 고려되지 않은 온전한 그 자체의 정보는 사람들에게 충분히 매력적이다. 그리고 그러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훔쳐본다는 행위는, 출근길 지하철부터 지상파 예능까지 곳곳에 깃들어 있다.  




물론 그렇게 본 것 또한 절대적으로 믿을 수 없는 것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상대가 의도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이 보는 것은, 상대가 의도한 상태로 자신에게 보여주는 것보단 진실된 것처럼 보인다. 




사람들이 훔쳐보며 알고 싶은 것은, 자기에게는 보여주지 않을 상대방의 진실이다. 2020년 10월, 서울




사람들은 누구나 진실을 알고 싶어 한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진실을 볼 수 있을지 궁금해한다. 상대방이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하는 이야기보다는, 상대방의 눈이나 행동 등을 통해서 상대가 말하지 않은 진실을 읽어내고 싶어한다. 어떻게 보면, 상대가 자신에게 드러내지 않은 것을 훔쳐보는 방식으로 읽어내고 있는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예능의 트렌드가 된 훔쳐보기도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준다. 정돈되고 세팅된 촬영장이 아닌, 각자의 생활 공간에서 활동하면서 그 모습을 구석에서 훔쳐보는 시점으로 제공한다. 출연자를 훔쳐보는 다른 출연자들의 감상평에 끼어들면서 그 모습을 같이 공유하는 것 같은 느낌을 제공하기도 한다. 




역사 다큐멘터리 예능에서는 아예 시청자의 존재 자체를 논외로 한 출연자들간의 대화만을 구성하였다. 출연자들끼리 질문을 주고받으며 대화하며, 사진을 서로 보여준다. 이런 모습은 마치 카페에 앉아 누군가의 대화를 훔쳐듣고 그 만남을 훔쳐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렇게 보는 것이 더 진실일  믿음에 몰입하기 쉽고, 훔쳐보고자 하는 욕망을 충족시킨다.




훔쳐본다는 행위의 가장 밑에 있는 것은, 결국 나에게 드러나지 않은 무언가 진실된 믿을만함을 찾는다는 매혹이다. 단순히 몰래 보는 것이 재밌기 때문이라는 변태적 성향을 만족시키기 위해서가 아닌, 좀 더 근본적인 원인으로 말이다. 




한가지 이유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복합적인 이유가 겹쳐 만드는 것이, 사람의 행동이기 때문이다. 




믿을 것 없는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은 진실을 찾으려 한다. 훔쳐보는 것을 통해서. 2021년 7월, 서울 잠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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