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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준 Feb 20. 2022

소확행 없는 세상

현실이 이상을 집어삼킬 때

소확행이라는 표현을 알게 된 것은 꽤 옛날 일이었다. 좀 유행에 늦는 나지만 소확행이 유행이라더라, 같은 이야기를 전에 들어 알고 있었다. 소확행이라는 표현을 실생활에서 맨 처음 들었던 것이 기억나는데 옛날에 같이 일하던 사람에게서 였다. 그때도 요리를 좋아했던 나는 이런 저런 요리를 해서 같이 먹곤 했는데 그때 그 사람이 이게 바로 소확행이다, 하고 이야기 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예능 프로나 인터넷에서도 소확행에 대한 이야기가 종종 나왔던 것 같다. 돈을 조금씩 모아서 맛있는 것을 사 먹는다던가, 사고 싶었던 물건을 산다던가 하는 것이 소확행이라고 이야기 했던 기억이 난다. 비록 누가 돈을 얼마나 써서 어느 정도의 소확행을 누리고 싶은가에 따라서는 의견의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문자 그대로 사소한 행복을 즐기는 정서가 있음은 확실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지금, 소확행이라는 표현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요즘 들어 옛날 소확행이 가지던 의미를 보여주는 것은 욜로 가 있을 수 있겠지만, 욜로도 요새는 그렇게 흔하게 쓰이고 널리 공감되는 정서는 아닌 것 같다. 한국 사회가 욜로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개인의 자유보다는 나태와 방종에 가까울지 모른다는 것을 제하고서라도 그렇다. 




왜 한국 사회에는 소확행이 없어졌을까? 힘든 현실에서 사소한 행복을 느끼는 것이 사람들에게 더이상 위안을 주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널리 공감하던 소확행의 정서는 어디로 가 버린걸까? 2022 01 03, 서울 잠실




소확행,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일상 속에서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느낀다 라는 말을 잘 뜯어 보면 두 가지 생각이 들어 있다. 본래 행복하지 않은 현실 속에서, 나에게 행복을 주는 사소한 것들을 찾아 행복을 느낀다 라는 것이다. 현실이 본래 행복하지 않다는 것과, 그런 현실 속에서 나에게 행복을 주는 특정한 것들이 있음이 중요하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행복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쉽지 않다. 원하는 집 혹은 공간을 갖는 것도, 원하는 시간을 보내는 것도 쉽지 않다. 하지만 만약 자신이 원하는 것을 온전히 이룰 수 없더라도, 아주 잠깐 그것을 이룬 느낌을 즐기면서 만족할 수 있다면 어떨까? 그럼 사람은 그것에서 행복을 얻고 위안을 느낄 것이다. 자신이 궁극적으로 얻고 싶은 것의 편린을 짧은 시간 체험해 보는 것, 나는 그것이 소확행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호캉스를 생각해 본다면 어떨까. 짧은 시간 좋은 호텔에서 숙박하면서 맛있는 것을 먹고 잘 쉬면서 좋은 시간을 보낸다. 서울 안에 집을 사고 오롯이 자신의 공간을 가질 일은 없겠지만, 숙박 하는 동안 자신의 공간이라고 생각하며 진짜 그런 집과 공간을 가진 것처럼 즐기는 것이다. 아니면 비싼 술과 와인을 먹는 것은 어떨까. 삼시세끼 비싼 음식들을 먹을 순 없지만, 좋은 술을 하나 사 두고 좋은 날에 조금씩 먹으면서 분위기를 내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결국 소확행이란 자신이 가질 수 없는 것을 잠깐 빌려오고 그것에서 행복과 위안을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소확행의 본질은 결국 기만이다. 심해지는 부의 양극화와 폭락하는 노동가치 속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국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없음을 알고 있다. 자신이 무슨 짓을 해도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필요로 한다. 그러한 정신적 고통을 받아들일 방법은 결국 기만 뿐이다. 나는 비록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지만, 이걸로도 괜찮아. 물론 이걸로 전혀 괜찮지 않고, 내가 원하는 것은 이것이 아니지만, 오직 얻을 수 있는 것은 그것 뿐이기에. 




내가 먹고 싶은 것은 하늘색 솜사탕이다. 금방 만들어 따뜻한 하늘색 솜사탕. 그런데 솜사탕의 가격이 미친 듯이 올라가고, 솜사탕을 사기 위해 내가 일해야 하는 시간과 벌 수 있는 돈은 점점 줄어든다. 나는 솜사탕을 못 샀고, 앞으로도 못 살 것이다. 그런 나에게 위안을 주는 것은 단 하나 뿐이다. 조금 감당할 만한 돈을 내고 하늘색 솜사탕 한 조각을 사는 것이다. 아 이게 솜사탕이구나 하며 느껴진 단맛이 입 안에서 사라질 때 즈음, 스스로에게 절박한 거짓말을 할 것이다. 이게 소확행이지. 나는 이걸로 충분하지.




소확행은 본래 행복하지 않은 현실 속에서, 우리에게 행복을 주는 특정한 것들을 찾는 것이었다. 하지만 본래 행복하지 않은 현실은 더욱 행복하지 않게 되었고, 나에게 행복을 주는 특정한 것들이란 결과적으로 얻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 격차가 점점 커져갈 때, 사람들은 알게 되는 것이다. 소확행이란 결국 기만이고 자기위로 라는 것을. 




궁극적 행복을 얻을 수 없는 처절한 현실에서, 소확행이란 결국 자기위로이고 기만일 뿐이다. 2021 10 23, 서울 노들섬




물론 비록 소확행이 자기위로이고 기만이라 해도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사실 인간의 삶은 그런 자기위로와 기만 없이는 지속될 수 없다. 내일이 더 나을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 언젠간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을 거라는 순진한 낙관, 경제적인 자유에 도움 안되는 사소한 감정들. 사람이 사실 힘을 얻는 것들은 그런 것이니까.




하지만 소확행이 사람들에게 더이상 낙천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해 그것의 일부라도 가지려 할 때 결국 자신은 일부밖에 가질 수 없다는 체념 때문일 것이다. 나중에 잘 될거다, 노력하고 성실히 살면 잘 될거다 라는 생각과 행동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될 수 없는 현실의 쓴맛 때문에. 가방을 갖고 싶어서가 아니라 나중에 팔기 위해서 오픈런을 하고, 어떻게든 간에 근로소득 이외에 돈벌 구멍을 만들지 않으면 죽도 밥도 안될 그런 현실의 쓴맛.




현실이 이상을 집어삼킨 세계의 소확행이란 그런 것이다. 



이상을 집어삼킨 현실이 남긴 것은, 더이상 행복하지 않은 소확행이었다. 2021 10 23, 서울 노들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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