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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준 Feb 27. 2022

바다가 강처럼 흐르는 곳

일본 소도시 오노미치

고등학교 시절 봤던 일본 만화가 있었다. 주인공은 일본의 어느 작은 도시에 사는 소녀였는데, 학교에 갈 때 자전거를 타고 화물선에 올라 안전모를 썼다. 학교가 끝나고 나면 강처럼 보이는 바다 앞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몇몇 장면들이 인상깊었던 탓에, 나중에 그 만화의 배경이 어디인지 찾아본 적이 있었다. 바로 오노미치 라는 곳이었다.




오노미치의 위치를 잘 모르고 있던 나는 동생과 같이 오사카와 도쿄를 갔을 때 오노미치도 가 볼까 했지만, 막연하게 가보려 했던 것 치고는 거리가 너무 멀어서 재빠르게 포기했었다. 그러다가 히로시마에 가게 되었을 때 근처의 소도시들이 어떤 것이 있나 구경하다가 오노미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가 보기로 했다.




사실 원래는 오노미치와 함께 근처의 토끼섬 같은 명소 두 곳을 함께 돌아보려 하는 지극히 한국인스러운 일정을 짰으나 아무리 해도 동선이 연결되지 않아 포기하고 오노미치 한 곳만 가 보기로 했다.




아침의 히로시마 버스 터미널




오노미치로 가는 날, 아침에 일어나 히로시마 버스 터미널로 갔다. 히로시마 버스 터미널은 보통 한국의 버스 터미널과 다르게 거대한 건물 안에 있다. 사실 히로시마 번화가를 구경하다가 큰 건물로 버스가 계속해서 들락날락 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는데, 뭐지 싶어 찾아보니 버스 터미널이라는 것을 알았었다.




오노미치로 갈 때 기차를 타면 바다를 보면서 갈 수 있어서 좋겠다 싶었지만 기차 시간보다 버스 시간이 훨씬 여유 있었고 비용적인 측면에서도 좋았던 것 같아 버스를 타기로 했던 기억이 난다. 편의점에서 산 샌드위치와 떡을 먹으며 버스 시간을 기다리다가, 오노미치 가는 버스에 올랐다.




간이역 수준이었던 그때 당시 소박한 오노미치 역 앞



버스에서 내려 바로 앞을 쳐다보니, 간이역 수준의 아주 소박한 오노미치 역이 있었다. 지금 사진을 보니 말도 안된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검색해 보니, 으리으리한 역사가 지어져 있다. 아무래도 내가 방문했을 때는 역사를 짓고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귀찮아서 계획을 짜지 않은 것을 현지 분위기를 느끼며 정처없이 걸어다닌다고 표현하곤 한다. 그때도 그렇게 정처없이 오노미치시를 걸어다닐 생각으로, 아무 곳이나 발 닿는 곳으로 걸어갔다. 도심 한복판으로 철도가 놓여 기차가 다니고 건널목이 있는 것이 신기해 보고 있으니, 크고 작은 열차들이 지나다닌다.




바로 앞쪽에 육교 같은 다리가 있어 위로 올라가 보니, 아래쪽으로 열차가 지나다니는 것을 구경할 수 있다. 육교 왼편으로는 오노미치시 옆의 산과 그 위에 있는 건물이 보인다. 마치 일본식 성처럼 생긴 이 건물은 지금 검색해 보면 도무지 어떤 건물인지 알 수 없는 건축물이다.



오노미치 시를 관통하는 철도와 그 앞의 건널목




철도 위로 놓인 육교 위와 그 근처의 풍경




육교 아래로 내려가면 오노미치 상점가와 연결된다. 일본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천장이 덮이고 양 쪽으로 상점이 늘어선 거리가 있다. 한국에서는 전통시장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거리이지만 일본에서의 느낌은 다른 것 같다. 하교 시간인지 자전거 타고 지나가는 학생들이 있고, 상점은 문 연 곳들이 별로 없지만 나름대로 조용하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




양 옆으로 늘어선 상점들 위에는 비슷하게 생겼지만 다른 글씨가 적힌 간판이 늘어서 있다. 가방을 메고 근처를 두리번거리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다들 나와 같은 여행자 같다. 중간중간 건물들 사이로 오노미치시 옆의 바다나 산을 볼 수 있다. 상점가 밖에 진열된 물건들을 보는 것도 재미있다.




천장 덮인 골목 양쪽으로 상점가가 늘어선, 오노미치 상점가




상점가 바로 옆쪽에 강처럼 보이는 바다가 있다




좁은 골목을 통해 올려다보이는 산




여행자의 시선을 끄는 상품들




상점가를 통과한 뒤 케이블카를 타러 간다. 오노미치시 옆의 산 위에 있는 전망대로 가기 위해서이다. 케이블카 전망대 옆에는 간단한 매점이 있는데, 더운 날씨에 빙수가 너무나도 먹고 싶어 하나 사 먹었다. 한국의 빙수와는 다르게 일본은 곱게 간 얼음에 간단한 시럽을 뿌려 먹는데, 팥빙수와 비교한다면 얼음과자에 가깝겠지만 나는 이런 간단한 맛이 청량감이 있어 좋았다.




빙수를 사기 전에 진열되어 있는 사케를 살펴본다. 혹시 오노미치에서 만든 사케도 있는지 하여 모르는 일본어 아는 일본어를 긁어모아 물어봤는데, 오노미치에서 만든 사케는 없고 근처에서 만든 사케들이라고 설명해 준다.




가판대의 물건도 보고, 빙수를 먹고 하면서 좀 더 쉬다가 케이블카를 탔다. 케이블카는 오노미치 시 옆의 산에 있는 센코지 공원으로 올라간다. 생각보다 관광객이 많은 것인지 작은 케이블카가 꽉 찼다. 케이블카는 역시 창가자리가 명당이지만, 어쩌다 보니 한 가운데에 서서 겨우겨우 카메라만 위로 들어 올라가는 동안 사진을 찍어본다.




곱게 간 얼음에 레몬 시럽을 뿌린, 간단한 형태의 빙수




신사 바로 옆에 있는 케이블카 승강장




비록 창가 자리에서는 밀려났지만 사진은 찍을 수 있었다




케이블카에서 내리니 바로 앞에 매점이 있다. 그리고 매점에서는 아이스크림을 판다. 감귤과 크림의 조화라니 어울릴까 싶지만, 아이스크림이다. 따질 이유가 없다. 더운 여름 좁은 케이블카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들 앞에서 아이스크림을 파는 장사 수완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면서 이런저런 기념품들을 둘러보니 마음에 드는 동전지갑을 발견했다. 일본에서는 아직도 현금을 많이 쓰고 동전이 수두룩하게 들고 다니던 상황이라 동전지갑을 유용하게 쓰기 위해 샀었다. 단풍 그림이 그려져 있고 입구를 빗겨나가게 여는 옛날 방식 버튼이 좋았다. 사고 나서 잘 쓰다가 다음 여행에서 잃어버린 것은 또 나중의 이야기이지만 말이다.



더운 날씨에 감귤맛 소프트 아이스크림이 녹아내린다




케이블카에서 내리면 바로 앞에 보이는 작은 매점




센코지 공원에는 작은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에 올라가면 바로 아래 오노미치 시와 그 앞쪽의 바다 너머 무카이시마 섬이 보인다. 섬과 바다와 작은 도시들이 사방팔방에 놓여 있다. 오노미치 시 바로 앞과 무카이시마 섬 사이에는 크고 작은 배들이 끝없이 지나다니는데, 멀리서 보니 아기자기한 미니어처같이 보이기도 한다.




그때 그 풍경을 볼 때는 고등학생 때가 거의 기억나지 않았지만, 옛날에 만화의 그 장면이 이런 느낌이었지 하는 생각에 재미있는 풍경이었다. 여름에 날은 더웠지만 높은 곳이라 그런지 바람이 불어 좋았다.



센코지 공원의 전망대. 낮은 계단을 통해 위로 올라간다




전망대에서 보는 멋진 풍경




섬, 도시, 산이 끝없이 펼쳐진다




배는 물 위에 긴 꼬리를 남기며 바삐 다닌다




멀리 보이는 오노미치 다리와 그 너머의 일본 본토




확대에서 찍은 사진은 마치 미니어처를 보는 듯 아기자기하다




전망 구경을 마치고 나서 오노미치 까지 걸어서 내려가기로 한다.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갈 수도 있지만, 중간에 이런저런 볼거리가 있다는 말에 한번 천천히 걸어 내려가 보기로 한다. 비탈길을 내려간지 얼마 되지 않아서 사찰이 나타난다. 사찰은 산 중턱 좋은 풍경을 보며 자리잡고 있다.




흔히 볼수 있는 불상부터 시작해서 사람들이 소원을 적어둔 듯한 나무조각들도 있다. 문득 이 나무판의 이름이 궁금해 알아보니, 에마 라고 한다. 사찰의 지붕과 기둥이 아래쪽 오노미치 시, 그리고 바다와 어우러지는 모습도 멋지다.



내려가는 길의 사원에서 발견한 불상들




오노미치 시와 잘 어우러지는 사원의 풍경




사람들의 염원이 적힌 에마와 그 뒤로 보이는 오노미치 다리




사원 아래의 길을 따라 계속해서 내려간다




좁은 골목길과 계단을 따라 오노미치 시로 내려간다. 인터넷에서 검색했을 때는, 이곳에 고양이들이 많이 사는 골목길이 있다고 했다. 나는 고양이가 어디 있나 해서 유심히 찾아봤지만 한 마리밖에 찾지 못했던 것 같다. 그나마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 풀숲으로 사라져서 사진도 못 찍었다.




중간중간 좁은 골목과 카페들이 있는 거리를 지나는데, 올라가는 케이블카가 보이기도 한다. 내려가는 골목길이 같은 방향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바다와 그 근처 도시를 계속해서 보며 내려오게 된다. 좋은 날씨에 골목길과 어우러지는 도시의 풍경이 좋았다.



중간의 골목길 사이로 올라가는 케이블카가 보인다




내려가는 골목길에서 바라본 오노미치 시와 바다




내려와서 오노미치에서 저녁을 먹고 싶었다. 그런데 일본어를 하나도 못 하다 보니, 어디를 가더라도 자신감이 없다. 여기는 이런 음식을 파는 것 아닐까 하면서 기웃기웃 해 보는데, 흔히 생각하는 경양식의 원조라고 할 법한 느낌의 카페가 생각이 난다. 거기서 나폴리탄을 먹어 보면 좋았을 테지만, 아쉽게도 그러지 못했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 이곳에서 먹어볼까 해서 음식점 문을 열려 했더니 열리지 않았던 가게도 있었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대부분 문을 닫은 상태인 것 같았다. 조금 걸어다녔더니 저녁 먹기에는 또 시간이 애매해져서, 그냥 히로시마로 돌아가서 먹을 생각으로 자판기에서 초코 음료를 하나 뽑아 먹었었다.




천천히 해가 져 가는 오노미치




비록 마지막에 배고픈 상태로 돌아와 아쉬웠지만, 평화로운 곳으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오노미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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