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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준 Feb 27. 2022

남의 성과로 성공하는 법

기생경제 속에서 살아남기

옛날 SNS 에 시시콜콜한 사진을 올리던 시절, 벼르던 한식뷔페를 가고 사진을 올린 적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 어떤 사람이 메세지를 보냈다. 지방 맛집 소개 계정을 운영하는 사람인데, 자기 지방에 생겼으면 하는 것 게시글을 만드는데 내 사진을 쓰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런가보다 하고 사진을 쓰라고 했다.




그런데 나중에 다른 사람과 그 이야기를 하다가, 그 계정은 비슷한 메세지를 여러 사람에게 보냈을 것이다 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진이 필요하면 직접 찍을 필요 없이 인터넷에 올린 사진을 긁어다가 자기 컨텐츠로 만든다는 것이었다. 그때까지는 전혀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기에, 문득 궁금해져서 시간이 한참 지나 그 계정을 찾아가 보았다. 계정은 사라져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중에 생각을 해 보니 꽤 흥미로웠다. 맛집이나 카페에 대한 글을 쓰고 싶은데 직접 가기에 비용이 많이 들거나 시간이 없거나 혹은 귀찮다면 어떨까. SNS 를 켜서 관련 내용을 검색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올린 그보다 더 수많은 사진이 있다. 그 중에 맘에 드는 것들에 사진 쓰고 싶다고 연락하면 그만이다. 기껏 사진 한 장이라는 생각, 혹은 그저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순진에 가까운 선의로 승낙하면 사진에 남는 것은 자신의 아이디 하나뿐이 된다. 그리고 자기가 투자한 결과물은, 누군가의 컨텐츠가 되고 자산이 된다. 어쩌면 의도하지 않고 예상하지 못했던 모습으로.




컨텐츠를 만들기 위해 자신이 성과를 창조해야만 할 필요가 없다. 누군가가 만들어 둔 성과를 잘 구슬려서 집어가기만 하면 그만이다. 이른바 기생경제의 탄생이다.




성공하기 위해 번뜩이는 무언가를 만들 필요가 없어졌다. 무언가에 기생하면 그만이다. 2014/11/15, 어딘가




자신의 성과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 준다는 것은 처음 들었을 때 이상하게 들린다. 만약 내가 음식점에 가서 사진을 찍었다고 하자. 어쨋든 나는 내가 시간과 돈을 들이고 미리 정보를 조사해 그곳에 가서 사진을 찍었다. 그 크기가 어쨌든 간에, 그 사진에는 자신의 성과와 투자가 들어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그 사진을, 성과를, 다른 사람이 사용할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은 얼핏 들으면 이해하기 힘들다.




하지만 모든 것의 부담과 책임이 가벼워진 SNS 에서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다른 사람이 쓰고 싶어한다는 사진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 사진이 나름 괜찮은 것이고, 쓸 만하다는 인정이다. 사람이 원하는 것은 그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주목받고 싶어하고 좋은 평가를 받고 싶어한다. 이런 사람들에게, 사진을 사용해도 된다고 이야기 하는 것은 자신에게 들어온 좋은 평가에 대한 응답에 가까울 것이다.




게다가 보통 사진을 빌려달라고 하는 쪽은 SNS 에서 더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비록 규모의 정도는 다를 수 있겠지만,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사람이라면 그러한 SNS 에 자신의 사진을 투고하는 것이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SNS 에 자신의 사진을 혹은 자신이 찍은 사진을 공개 형식으로 게시하는 사람이라면, 주목받는 것을 싫어할 이유가 없다. 더 큰 계정에 자신의 사진을 보여주는 것은 그런 목적에서 충분히 합리적인 선택이 될 수 있다.




사진을 빌리는 계정 입장에서도 이는 손해보는 선택이 아니다. 빌리는 입장에서도 사진을 빌린다고 해서 금전적인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아니며, 사진에 단순히 아이디 하나만 박아 주는 것이 대부분이다. 직접 자신만의 사진을 만들기 위해 돈과 시간과 노력을 투자할 필요가 없고 어쩌면 투자할 생각도 없을지 모를 사람들에게, 다른 사람들이 올려 둔 사진에 사용 문의를 보내는 것은 적은 비용으로 큰 성과를 이루는 방법이다. 사진 사용 문의를 거절한다면? 상관없다. 다른 사람이 올린 비슷한 사진이 수천장은 더 있을테니까.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다른 사람의 성과에 '접근해서' 성장이 시작되면, 사람들이 자신의 성과를  달라고 오게 된다는 것이다. 돈을 들고 와서 광고를  달라고 하고,  나온 사진을 보여주며  달라고 하게 된다. 다른 사람의 성과를 얻기 위해 간곡하게 부탁하던 시절에서, 간곡하게 부탁받는 상황으로 바뀌는 것이다.




내가 맨 처음에 찍은 사진을 가져가서 컨텐츠를 만든 맛집 소개 계정이 있다고 하자. 그리고 그 맛집 소개 계정은 크게 성장해서 다른 사람들이 앞다투어 제공하는 사진으로 성장을 이어나갈 것이다. 다른 사람의 성과에 기생하여 만들어진 이 계정은 결국 스스로 컨텐츠를 만들 규모를 가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 다른 사람의 성과에 기생해도 충분한데 그 고생을 굳이 할 필요가 없으니까.




컨텐츠에 기여한 사람이 응당한 대가를 받았는가에 대한 질문은 논외로 한다고 해도, 그 성공의 기반에는 본질적으로 복사 붙여넣기와 크게 다르지 않은 성장방식이 있다.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공급과 수요의 관계에서, 누군가는 남의 노력으로 빠르게 성장한다. 2015/01/01, 어딘가




인터넷의 유행은 빠르게 퍼지고 사라진다. 단순히 사진만이 아니라 다양한 글과 문화, 영상이 인터넷 속에서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그리고 그 누군가의 성과는, 다른 누군가에게 허락을 얻거나 얻지 않거나 아니면 전혀 아무 상관 없이, 자신이 직접 성과를 만들기는 귀찮은 누군가의 성과로 재탄생하여 성장에 도움을 준다.




사실 매 순간 새로운 것과 새로운 돈 나올 구멍이 생겨나는 현대 사회에서, 이제는 자신의 생각을 그렇게 모두에게 공개한다는 것 자체가 애초에 그런 위험부담을 감수해야만 하는 일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 모든 것이 돈이 될 수 있는,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무엇인든지 할 수 있는 자본주의에서 이정도는 문제 수준에도 속하지 않는 가벼운 것 같기도 하고.




그러나 누군가에게서 사용 허가를 받은 것의 집합체가 스스로의 정체성인 SNS의 계정이 세력을 확대해 가는 것을 보면 기분이 묘해진다. 재미있는 것들과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가득하지만, 과연 직접 만든 것은 얼마나 있을까. 누군가가 직접 만든 것을 가져오기 위해 메뚜기 떼처럼 휩쓸고 다녔을 노력 속에서, 직접 만들어 내거나 만든 사람들에게 보답하기 위한 노력을 찾을 수 있을까.




비록 아무것도 직접 만들어 낸 것이 없어 보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좌우지간 스스로 만들어 낸 것 하나는 확실히 있다. 스스로의 아이디어 없이 남의 아이디어로 성공하는 것. 그거 하나는 확실하게 보여준 것이, 주인공들의 능력이다.




무엇으로 성공할 것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어떻게 성공할 것이고 성공하면 그만 아니냐는 말을 하는 듯한 그 모습이, 적나라한 기생경제의 현주소이다.




사실 기생경제의 본질은 그것의 옳고 그름이 아니라,  현대사회에서 그것은 문제가 아니라는 점 아닐까. 2015/05/04, 설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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