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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준 Mar 05. 2022

도시는 밤에 빛난다

히로시마의 밤거리

히로시마에 며칠 있으면서 중간에 숙소를 바꿨다. 그때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하고 있던 나는, 한 곳 말고 다른 게스트하우스에서도 있어 보면 좋겠다 싶었다. 역에서 조금 멀지만 좀 더 중심가에 가까운 게스트하우스로 옮겨서 체크인 하고 난 뒤, 아무 생각 없이 해질때 즈음 되어 밖을 걸어다녀 보면 좋겠다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가만히 있으면서 쉬다 보니 잠이 오는 것이었다. 캡슐 형태로 깔끔하게 나눠진 공간 안에서 가만히 있던 나는 몰려오는 졸음에 잠깐 잠이 들었고, 일어나 보니 이미 해는 진 상태였다. 완전한 밤이 찾아온 밤거리는 간판과 가로등에 불이 들어온 지 한참이었다.




해 지는 거리를 보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완전히 밤이 된 히로시마 거리를 구경해 보기로 했다.




머물던 게스트하우스에서 나와 조금만 가면 볼 수 있었던 큰길




한여름의 히로시마는 매우 덥다. 하지만 밤이 되면 일단 내리쬐는 볕이 없으니 그나마 괜찮아진다. 조금은 선선해진 도시의 밤거리를 이것저것 구경하며 걸어 본다. 그렇게 늦은 시간은 아니었음에도 생각보다 길거리에 사람은 없다. 군데군데 무리지어 걸어가는 사람들과 어쩌면 나같은 여행객일지 모르는 사람들만이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며 다닌다.




큰 길을 건너기 위해 육교를 올라가 보니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광경이 좋다. 히로시마 시내를 다니는 노면전차 노선이 가운데에 있고 그 옆으로 차들이 지나다닌다. 양 쪽의 큰 건물 사이로 가로등이 켜져 있고, 그 사이로 자동차의 불빛이 어지러이 엮인다. 불빛의 행렬은 오고 가고를 반복하며 저 멀리까지 이어진다.




육교에서 바라본, 전차 노선과 그 양 옆으로 다니는 차들




큰 대로변의 뒤쪽 뒷골목 사이에는 차가 잘 다니지 않는 작은 골목들이 있다. 엄청 화려한 것 까진 아니어도, 형형색색으로 반짝이는 네온사인 간판들이 사람들 머리 위로 구름다리처럼 놓여 있다. 일본어를 하나도 읽을 수 없다 보니 간판의 뜻을 다 읽어들일 수 없는 것이 매우 아쉽다. 역시 다른 나라에 여행을 갈 때는 그 나라의 말을 할줄 아는 것이 가장 좋다.




독특한 네온사인 간판이 있던 히로시마 뒷골목




유흥가라는 표현은 이런 때에 쓰는 거구나, 싶었던 골목의 분위기




골목을 오가다 보니 낮에는 사람들로 붐볐을 유개거리와 다른 골목들도 지나간다. 계속해서 걷다 보니 익숙한 한자가 보인다. 인터넷으로 익히 소문을 들어서 알고 있던 무료 안내소. 다른 일본의 대도시에서도 갑자기 뜬금없이 번화가에서 튀어나오는 경우가 많아 인상적이었다.




나는 그냥 이런 것도 있구나 하고 넘어갔지만, 문득 저것을 볼 때 숙소에서 귀동냥 했던 외국인들의 대화가 떠올랐다. 숙소 공용공간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데 들은 외국인 두 명의 이야기였다. 어디에 어떤 가게가 있는데 어쩌고 저쩌고 하는 이야기가 꽤 흥미로워서 순간 영어 못하고 아무것도 안 들리는 척 하며 가만히 훔쳐듣고 있었다.




물론 그래도 이러나 저러나 거미줄처럼 얽힌 뒷골목과 그 분위기를 한껏 즐기는 것은 완전히 내 취향이다.




한적한 유개거리




간판과 가로등으로 가득한 뒷골목




뜻을 안다면 한국과의 문화차이로 놀랄, 무료 안내소




계속해서 걷다 보니, 이번엔 좀 큰 대로가 나온다. 아까와는 분위기가 다른 것이 완전히 번화가 쪽인 것 같다. 잘 생각해 보니 낮에도 몇번 왔다갔다 했던 것 같은 느낌이다. 어쩐지 아까까지 걸어 왔던 거리보다 사람도 좀 더 많아진 것 같다.




다시 길을 건너 큰 건물들 뒷골목으로 가 보니, 작은 주차장이 보인다. 사실 길을 가다 보면 곳곳에 건물 뒷편 혹은 길가에 작은 주차장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보통은 정산기가 있고 옆에 자판기가 있다. 그런데 문득 그 주차장의 모습이 특별하게 느껴져서 사진을 찍었다. 건물들 사이에 있는 작은 아스팔트 공간과 그곳에 놓인 화분들, 후덥지근하던 그 공기가 특별한 기억으로 남았다.




더 큰 번화가로 나오자, 사람들도 많고 분위기도 좀 더 밝아졌다




기묘한 분위기를 느꼈던 작은 주차장




뒷골목에는 재미있는 가게들이 많다. 비록 일본어를 하나도 못해 아쉽지만 각각 다른 방식으로 꾸며 둔 가게의 분위기를 느끼는 것이 좋다. 밝고 어두운 명암의 차가 확실한 히로시마 밤거리에서 멋지게 꾸민 가게를 보며 감탄하기도 하고, 우연히 사람 하나도 없는 순간의 골목길 사진을 찍기도 한다.




사람들로 가득 찬 음식점들로 바글거리는 구역이 나오다가도, 조금만 걸어가면 또 한적한 거리가 나온다. 밤의 도시는 마치 놀이공원처럼 매 코너에서 새로운 것들을 보여준다.




밤의 골목길을 돌아다니던 중 찍은 사진. 히로시마 여행 중 찍은 사진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 중 하나이다




순간 사람이 보이지 않는 짧은 찰나, 골목길을 찍었다




번화가를 걸어다니며 건물 사이를 누비다가 보니 바로 앞에 히로시마 성이 나타났다. 히로시마 성 주위의 호수를 따라 걷는데, 날벌레 걱정을 많이 했지만 생각보다 벌레가 없어서 아주 쾌적했다. 성 주위를 보다가 사진 찍기 좋은 장소가 나와 성의 사진을 찍어 보았다.




그때 나는 카메라를 쓰면서 그때까지 필터를 거의 쓰지 않았다. 뭔가 사진을 더 예쁘게 보이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항상 사진을 찍으면서 뭔가 사진이 내가 실제로 보는 것과 다르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다. 특히 밤의 도시가 그랬는데, 실제로는 차가운 질감인데 사진을 찍으면 따뜻한 질감일 때가 있었다.




그런데 히로시마 성을 찍으면서 처음으로 카메라 필터를 바꿔본 나는 생각보다 만족스러운 결과에 감탄했다. 필터를 바꿔 주니 내가 실제로 보는 것과 비슷한 사진이 나온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그 때 이후로, 필터를 쓴 것이 실제로 보이는 것과 더 비슷하다면 나는 거리낌 없이 필터를 사용하게 되었다.




여태까지 카메라를 쓰면서 처음으로 필터를 사용했던 순간




한밤의 히로시마 오리즈루 타워, 그 옆의 전광판 온도계. 심야의 온도가 30도에 달한다




히로시마 성을 구경하고 나서 오리즈루 타워까지 간 뒤, 돌아가기 위해 노면전차를 기다리며 열심히 사진을 찍는다. 필터를 쓰지 않을 때는 도시의 밤을 아무리 사진 찍어봐도 이도저도 아닌 뜨뜻미지근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필터를 써 보니 도시의 차가운 밤이 사진에 잘 나온다. 새로운 것을 알게 되어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노면전차를 기다린다.




노면전차와 자동차가 어지러이 얽히는 히로시마 밤거리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날 저녁, 마지막으로 저녁 식사를 히로시마의 식사를 무엇으로 할까 하다가 마음 닿는 가게에 들어가서 먹어 보기로 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들어간 가게는 알고보니 꼬치를 파는 가게였다.




사람이 많지 않은 가게에서 바로 구워 나오는 꼬치를 먹었다. 소 혀를 먹어보고 싶었지만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먹고 싶었던 꼬치구이를 모두 먹어 보았다. 그리고 나는 생각보다 돈을 많이 써서 카메라를 놓고 근처 편의점에 가서 돈을 뽑아 와 지불을 했다.




들어가고 나서 알았던, 야끼토리 가게


주문을 하면 바로 앞에서 꼬치를 구워 준다




직화로 구운 꼬치구이는 맛이 없을 수가 없다




그렇게 화려하진 않아도 따뜻한 고기 요리로, 히로시마 밤거리 구경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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