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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준 Mar 05. 2022

복권방이 싫은 사람

물론 당첨된다면 좋지만


지난번엔 꿈자리가 안좋았다. 나는 거대한 산 위에서 사람들과 함께 바다를 보고 있었다. 파도가 크게 일렁이는데, 파도가 일렁일 때마다 바다 밑이 밝아졌다 어두워졌다를 반복했다. 바다 밑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나타났고, 어두워졌다 밝아졌다를 반복하며 그림자가 점점 커졌다. 그림자 중에는 가오리 모습을 한 것도 있었고, 고래 모습을 한 것도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갑자기 잠수함보다도 더 큰 고래의 그림자가 잠수함과 충돌하는 그림자가 보였다.




나는 몸을 돌려 다른 쪽을 쳐다봤다. 어둠 속 번개가 치듯이 잠깐잠깐 밝아지는 모습으로 저 멀리 아래 해안선이 보였다. 전쟁영화에서 보던 상륙정이 해안선에 밀려오고 있었다. 머릿속으로 목소리가 울렸다. 전쟁이다, 전쟁이 났다. 아무 것도 선명하지 않지만, 내가 가장 두려워하거나 싫어하던 집단이 전쟁을 시작했다는 것만 기억났다. 말도 안 되는 허무맹랑한 내용이지만, 꿈이니까 그럴 수 있는것 아닐까.




좌우지간 꿈자리가 좋지 않았다는 것은 확실해서 기분이 뒤숭숭했다. 그런데 문득 복권을 사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위에서도 안좋은 꿈을 꾸거나 운 없이 불편을 겪었을 때 복권을 사러 가는 것을 보았다. 운을 잃었으니 다음 행동은 운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일수도 있고, 불편한 기분을 복권이 주는 기대감으로 보완하려는 생각일 수도 있다.




그런데 사실 나는 복권 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내 의지로 복권을 사 본 적이 다섯 번 안에 든다. 돈을 어디에 쓰는지는 모두 개인의 자유겠지만, 동생이 종종 저렴한 복권을 사서 긁고 있는 것을 보면 묘한 기분이 든다.




복권을 사 온 나는, 사실 복권을 좋아하지 않는다.




꿈자리가 좋지 않았던 나는 복권을 샀지만, 사실 복권을 좋아하지 않는다. 2017년 9월, 춘천




대부분의 복권은 아주 낮은 확률과 적은 비용으로 거금을 주는 구조이다. 인류 역사상 많은 사람들의 소원이었던 낮은 위험부담과 높은 기대수익의 상징이 아마 복권일 것이다. 물론 높은 확률로 적은 당첨금을 주는 경우도 있지만, 사람들이 원하는 복권이란 그런 것이 아닐 것임은 당연하다. 복권이란 결국 당첨되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될 수 있는, 인생에 한 번 올지 안 올지 모르는 그런 기회일 것이다.




그리고 복권의 묘미는 역시 복권이 당첨되고 나서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하는 것이다. 복권이 당첨되기 전까지 살면서 겪었을 대부분의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을 법한 그런 거금이 생겼을 때 무엇을 할 것인가. 다들 원하는 것은 다르겠지만 그 원하는 것을 상상하는데 시간을 쓸 것이라는 것은 똑같다. 마치 미래를 모두 아는 상태에서 과거로 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상상과 비슷한 것이다. 모든 것이 명확하게 밝혀진 상태에서 기분 좋은 선택만 남은 상상은, 시간을 들여 흠뻑 즐기기에 충분하다.




그렇게 복권을 사고 나서 설마 당첨되겠어 그냥 돈 날린거지 하고 생각하지만, 마음 속 어딘가에서는 설마 당첨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며 당첨을 기다린다. 나에게도 인생역전의 기회가 오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은, 마치 나에게도 뭔가 대단한 재능이 있는데 못 찾은 것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리고 그 기대는 보통 빨리 끝난다. 다섯 개 숫자 중 하나를 못 찾아서 끝나거나, 세 개의 그림 중 한 개를 못 찾아서 끝난다.  




에이 뭐 당첨될 거라고 기대하지도 않았어 하면서 거짓말을 하고 돌아서지만, 만약 당첨된다면 어떨까 생각했던 장밋빛 미래는 쉽게 떨쳐내기 힘들다. 그리고 그것을 애써 잊으려 해도 남은 시간에 짙은 그림자를 남긴다. 복권이 당첨된다면 이루고자 했던,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소원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복권이 폐지조각으로 사라졌을 때, 복권이라도 당첨되지 않으면 자신이 그 소원을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 또한 알게 된다.  




결국 복권은 사람이 얻을 수 없는 것을 얻었을 때 이루고픈 그 사람의 욕망을 상상하게 하지만, 그와 동시에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자신이 그걸 이룰 방법이 없음을 처절하게 깨닫게 한다.




복권은 사람이 원하는 것과 그것을 얻을 수 없음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2017년 5월, 뚝섬




일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복권을 샀었다. 뭘 사야 하는지 잘 몰라서 로또도 사 보고, 즉석복권도 사 본다. 친구가 연금복권도 사라고 이야기 해서 연금복권 세트도 산다. 집에 와서 복권 당첨을 확인하기 전 친구들에게 복권을 샀다고 이야기 한다. 복권 당첨되면 반띵해달라는 말에, 복권 되면 너희들 한도 얼마 정도에서 원하는 것 다 사주겠다고 해 본다.




그냥 조금 사고 말까 했던 복권을 생각보다 좀 더 사서, 치킨 한 마리 가격이 되었다. 치킨 한 마리 가격으로 뭘 할수 있을까. 내가 사고 싶었던 식재료를 사거나 다른 의미있는 것을 살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돈을, 내 자원을, 의미없게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내심 기대하며 복권을 샀다.




그리고 혹시나가 역시나, 복권은 복권이 아니라 폐지로 변해버렸다. 그럼 그렇지, 하면서 쓰레기통에 직행한다. 복권은 거짓말이고 속임수며 기만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복권방에서 사 들고 왔던 복권이, 잘게 찢어져 쓰레기통 안에 들어간다.




복권이 당첨되면 하려고 했던 것들은, 복권이 아니면 절대 이룰 수 없을 것이라는 현실이, 마치 찢겨지는 복권이 남긴 유언 같다. 그래서 나는 복권방도, 복권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 쓰디쓴 유언이 자꾸 들려와서, 괜찮을거라고 생각했던 미래가 이젠 복권같은 것에 기대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 아닐까 싶어서. 이전까지 복권을 안 사던 내가, 그것을 생각하며 복권을 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서.  


미래는 불투명해졌고, 복권은 기만이지만, 사람들은 복권에 기댄다. 2017년 6월, 잠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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