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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준 Sep 01. 2021

광고인듯 광고아닌 너

당신이 보고 있는 광고

비록 금액은 다를지라도 사람들은 각각 자신의 돈을 가지고 있다. 돈을 얻기 위해 무언가를 대가로 지불했을 것이 뻔하기에, 돈을 사용하는 데에는 매우 보수적이고 수비적으로 변한다. 사람들이 돈을 쓰기 위해서는, 돈을 쓰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라고 누군가가 설득해야만 한다. 그리고 나는 이 설득이 광고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원래는 안 써야 할 돈을 쓰게 만드는 것, 그것이 광고이다. 



사람들은 광고의 이러한 본질을 알고 있다. 자신이 돈을 쓰도록 광고가 그럴싸한 말로 설득하려 든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광고를 믿지 않는다. 광고의 내용이 아무리 사실에 기반하고 설득력이 있다 해도 상관이 없다. 사람들이 보는 것은 이 광고의 내용이 얼마나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냐가 아니라, 이 광고의 목적이 내 돈을 쓰게 하는 것이라는 점이기 때문이다. 결국 광고는 자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상대로 설득해야만 하는 불리한 위치에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을 설득하는 목소리가 상업적인 목적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더 쉽게 그리고 호의적으로 받아들인다. 돈이 목적이 아니기에 그 뜻에 진실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맛있는 음식점을 찾거나 쓸모있는 전자제품을 찾을 때, 사람들이 쉽게 신뢰하는 것은 상업적인 힘이 실렸다고 생각하는 광고가 아닌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작성한 후기이다. 그 후기가 합리적이지 않거나 신뢰도가 떨어진다고 생각해도, 상업적인 광고가 아니라는 확신만 든다면 더 깊게 신뢰한다. 



결국 광고는 두 가지 선택지를 가지게 된다. 첫 번째 선택은 우월한 제품을 만들고 그 우월함을 광고하지만, 그래봤자 광고 아니냐는 사람들의 부정적 인식에 직면하는 것이다. 한계가 명확한 첫 번째 선택 말고 두 번째 선택도 있다. 광고 같지 않은 광고를 만드는 것이다. 광고 같게 느껴지지 않아서, 마치 옆 사람의 목소리처럼 친숙하게 들어오는 광고. 내용이 아니라 방식이 중요한 광고.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광고의 대다수는 두번째이다. 










광고임을 밝히지 않은 광고를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아마 맛집 광고일 것이다. 유명 포털 사이트에서 지하철 역과 음식 이름만 검색하면 수많은 광고를 볼 수 있다. 광고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음식을 좋아하고 그 음식점이 좋아서 인터넷에 그 후기를 남긴 사람이라고 생각해 봐도, 사진 수십 장에 동영상까지 찍어서 올리는 것은 일반적인 후기라고 보기 힘들다. 이런 경우 광고사의 입김이 강하게 들어간 광고라고 볼 수 있다. 광고라고 이야기 하던 이야기 하지 않던 간에 말이다. 



특히 사람들이 시간을 많이 소비하는 SNS 에서는 광고임을 밝히지 않은 광고 컨텐츠가 곳곳에 숨어 있다. 유튜브 뒷광고 논란 이후 구석에 보기 힘든 곳에 광고 표시를 작게 해 두기 시작했지만, 광고처럼 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한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 가장 흔한 경우는 유명 커뮤니티나 SNS 에 게시된 글인 것처럼 작성하여 특정 제품을 추천하는 것이다. 상업성이 없는 개인의 목소리인 척 하며 특정 제품을 노골적으로 추천하며 광고한다.



사람들이 커뮤니티나 SNS, 유행하는 밈 등에 가지는 친숙함을 이용하며 필연적으로 무언가를 흉내내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광고에 대한 사람들의 심리적 저항감을 없애기 위함이다. 그 과정에서 인터넷에서 유명한 게시글을 똑같이 사용하고 중간에 광고 내용을 삽입하기도 한다. 최근 기억에 남는 것은 어떤 사람이 작성한 코로나 사태 이후 알게 된 것 이었는데, 맨 처음 유행할 당시에는 그런 내용이 없었으나 나중에 광고 소재로 쓰이면서 중간에 구체적인 제품명이 추가되었다. 최초 작성자의 허락이 있었는지는 두말 할 필요 없을 것이다.



이런 광고 게시글들은 광고가 아닌 게시글과 뒤섞인 뒤 다양한 플랫폼에 노출된다. 둘 사이의 차이점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구분하기 힘든 정도이다. 광고사 입장에서는 만족스러운 결과이다. 광고가 광고가 아닌 것들과 함께 섞여서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되고 있으니까.








그러나 광고임을 숨기는 광고가 늘어나면서 그 둘을 구분할 수 없게 되자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그저 보는 사람을 기만하는 광고가 많아졌다는 것에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광고가 아닌 것들도 광고일 수 있게 되면서 결국 사람들이 보고 있는 모든 것이 광고일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다양한 플랫폼에서 보는 그 모든 것이 광고가 아니라는 신뢰가 없어진 것이다. 결국 우리는 보고 있는 모든 것이 광고가 아닌가 의심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어떤 사람이 솔직하게 적은 이야기와 진심으로 적은 후기들. 인터넷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흥미를 느꼈던 이야기들. 사람들은 이제 이것들이 광고인지 광고가 아닌지 의심해야만 한다. 누군가 순수한 선의로 다양하게 찍어 올린 사진이 금전 대가 받고 찍어 올린 것은 아닌가 의심하게 되었고, 자신이 알차게 사용한 제품이라 생각해서 적은 후기가 뒷돈 받고 원고 받아 올린 후기가 아닌가 의심하게 되었다. 자신이 재미있게 봤다고 생각한 무언가가, 사실은 특정 의도를 가진 광고주와 광고사의 합작품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문제는 이런 불안감과 불신 정도에서 끝나지 않는다. 뉴스를 만드는 곳에서 특정 브랜드의 돈을 받고 브랜드의 활동을 뉴스로 제작한다면 어떨까. 이 광고는 제작지원비를 받았다는 한 토막의 문장 없이는 그대로 사람들에게 뉴스로 인식될 것이다. 돈 없는 어린 형제에게 어떤 요식업 사장이 공짜로 밥을 먹여 주는 과정을 동영상으로 찍은 내용이라고 했는데 그 과정에서 구체적 상호명을 그대로 노출한다면 어떨까? 사회 실험인 척 하며 상호명을 노출하는 영상이 만약 광고라면 저버린 상도덕은 둘째치고, 사람들이 앞으로 비슷한 류의 영상을 광고라는 의심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단순히 보는 것이 광고일 수 있다 라는 불안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뉴스 프로그램이 돈 받고 홍보 뉴스를 작성해 준다면, 다큐멘터리가 돈 받고 광고 다큐멘터리를 촬영한다면 같은, 컨텐츠 전반에 대한 불신마저 불러일으킬 수 있는 위험한 요소가 곳곳에 있다.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고 그것을 홍보하면, 그 합당한 설득에 동의한 사람들은 자신의 재화를 이용해 가치를 지불한다. 그것이 사람들이 생각한 방향이었지만 무릇 그렇듯이 사람들이 계획한 것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을 무조건 부정하고 뜯어고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사회에 어떤 현상이 존재하는 것은 그 현상에 합의한 사람이 반대한 사람보다 많이 있기 때문이고, 그것이 실제로 효과가 좋기 때문이다. 



하지만 광고가 광고임을 믿을 수 없고, 광고가 아닌 것이 광고가 아니라고도 믿을 수 없게 된 지금, 그렇게 우리는 오늘도 수많은 무언가를 보고 있다. 광고인지 광고 아닌지 알 수 없는 것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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