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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준 Sep 01. 2021

무례함을 당해야만 하는 이유

악은 손해 보지 않는다



지난번 인터넷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지하철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어떤 사람에 대한 짧은 동영상에 대한 신문 기사였다. 그 사람은 지하철 열차 안에서 담배를 피우며 연기를 내뿜었고, 제지 당하면서도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세상은 넓고 이상한 사람들은 참 많구나 싶었다.



생각해 보면 이러한 경험은 다들 누구나 한번씩은 하는 모양이다. 나는 고등학교 때 버스를 타고 가다가, 버스 기사에게 아주 공격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버스 운행에 영향을 미치고 버스 기사를 위협하는 그 행동은, 아직은 어렸던 나에게 꽤 공포스러웠다. 



자주 겪지는 않지만 종종 겪는 이런 일들은 좌우지간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나는 그런 일에 직접 처한 적은 없었지만, 아침 지하철 안 내 앞에서 누군가가 담배 연기를 내뿜는다면 하루 종일 기분이 안 좋을 것이 뻔하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이런 행동을 할까? 그리고 어떻게 존재할 수 있을까?








보통 타인을 기분 나쁘게 하는 사람들은 두 부류가 있다. 하나는 자신의 목적 달성을 하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이 기분이 나빠지는 것이다. 담배를 너무 피우고 싶어서 지하철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있다면, 그 과정에서 주위 사람들의 기분이 나빠진다. 



나머지 하나는 다른 사람들의 기분을 나쁘게 하는 것이 목적인 것이다. 담배를 피우거나 어떤 소란을 피우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다른 사람의 기분이 나빠지고 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중요하다. 그 영향력, 불러일으킨 불쾌감, 그것이 목적이다.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영향력을 발휘할 때 사회적 만족감을 느낀다. 보통은 다른 사람과의 생산적이고 상호 보완적인 관계에서 만족감을 느끼지만 아닌 사람들도 있다.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은 힘들지만 불쾌하게 하기는 너무나도 쉽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다른 사람을 불쾌하게 한 것이 스스로의 능력이고 성과이다. 좌우지간 영향력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예의를 아랑곳하지 않고 마음대로 행동하는 사람들은, 타인의 입장을 아무렇지도 않게 뭉갠다. 자신의 행동이 어떻게 보일지 생각하고 서로 조심하는 사람들과는 다르게, 순수한 의지로  타인에게 불쾌함을 주기 위해 노력한다. 



어떻게 이러한 행동을 할 수 있을까?








만약 아침에 일어나서 지하철을 타고 출근을 하는데 누군가가 내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 무엇을 할 것인가? 나를 불쾌하게 한 사람에게 말을 걸어 논쟁을 시작해야 할까? 아니면 담배를 뺏어서 그 사람의 인중에 눌러 불을 꺼야 할까? 



사실 내가 원하는 것은 회사에 무사히 출근하는 것이다. 그리고 앞서 말한 어떤 행동도 회사에 출근하는 것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 자리를 떠나 다른 칸으로 가거나, 다음 역에서 내려 버리는 것이 가장 나은 선택이다. 



나에게 불쾌감을 주고 있는 사람에게 즉각 대응을 하겠다는 결정이 불쾌감을 없애준다는 보장도 없고, 단순히 불쾌감에 불과했던 일이 더 큰 문제로 번지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게다가 상대의 무례함이 나에게 영향을 미친다 해도, 그 무례함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자신도 무례함이라는 선을 넘어가야만 한다. 그 이유가 어찌 되었든 간에 신경이 쓰이는 일이고, 심리적 저항감이다. 



이런 다양한 것들을 고려하면서 결단을 내려야 할 만큼, 즉발적인 불쾌함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러하고, 결국 예기치 않은 사소한 무례함에 직면한 사람들에게는 그저 그 자리를 피하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이다. 분명히 잘못한 것은 상대인데, 이미 기분이 나빠진 내가 자리를 피하는 것이 나에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다. 



상대방은 그것을 알고 있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기분을 나쁘게 하도 어쩌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가 지하철 안에서 담배를 피우며 여러 사람을 기분 나쁘게 해도, 그 누구도 나를 막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아주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어떤 사람이 타인을 불쾌하게 한 그 순간부터 그 사람은 절대로 손해 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이 상대를 불쾌하게 하는 것은 확정적이고, 자신이 응보를 받는 것은 불확정적이다. 자신이 가한 불쾌함을 돌려주고 말겠다는 상대의 결정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자신을 불쾌하게 한 상대의 결정보다 더. 



지하철 안에서 담배 피는 사람을 만난다면, 마음만 같아서는 그 사람의 담배 꽁초를 뺏어 이마에 눌러 끄고 팔다리를 묶어 다음 역에서 밖으로 던져 버리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그 다음엔 어떻게 되는가? 나빠진 기분이 나아질 순 있지만 완전히 해소될지는 알 수 없고, 자신이 가려던 목적지에 제 시간에 도착할지도 알 수 없다. 결국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겪은 불쾌함을 돌려주기보다는 그저 자리를 피하기를 선택한다. 그것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다면 사람들이 모인 사회는 다들 자기 멋대로 하는 아수라장이 되어야 정상인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도덕과 법률로는 설명할 수 없는 수준의 암묵적 합의가 그곳에 있다. 비록 살면서 누구나 이런 불쾌함을 겪는다 한들, 사회에는 분명히 이런 불쾌함을 떠넘기기보다는 서로가 서로에게 예의를 지키면서 사는 사람들이 더 많다. 어딘가에는 분명히 불쾌함이 도사리고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서로 예의를 지키고 피해를 주지 않도록 노력한다. 



여태까지 불쾌함을 겪는 일이 있어왔고 앞으로도 있겠지만, 그 불쾌함이 없는 일상을 지켜주고 있는 것은 일반적인 사람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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