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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준 Mar 20. 2022

교훈 1, 열차 자리 예약 지정을 하자

처음 유럽간 사람을 믿고 처음 유럽 온 부모님 여행기

짧은 시간, 잠깐 교환학생을 했던 때가 있다. 그때 부모님이 오셨고, 나는 부모님과 함께 여행을 했다. 나도 교환학생이 처음인데 그런 나를 보러 오는 부모님도 처음이었고, 그렇게 부모님을 모시고 하는 여행도 처음이었다. 원래 처음엔 실수가 많고 모든 것이 혼란스럽다. 그때도 그랬다. 어느 정도였냐면, 나중에 되돌아 보니 찍은 사진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정도였다. 




그런데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때가 종종 생각났다. 이것저것 느끼면서 배운 것도 있었다. 몇 번 씩이나 그 때의 기억을 글로 남기려 했는데 포기했던 것은, 사진이 거의 없어서 글로 완성하기 힘들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사진이 있다면 보면서 기억을 좀 더 떠올려 볼 수 있을텐데, 사진이 하나도 없으니 시각적으로 볼 것도 없고 글을 써도 재미가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기억은 사라진다. 내가 아무리 가끔 떠올리며 기억의 끈을 붙잡아도, 점점 희미해져 사라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열 개가 다섯 개가 되고, 다섯 개가 한 개가 되어, 어느 순간부터 한 개도 없어질 것이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기억이 남아 있을 때, 최대한 모든 기억을 긁어 모아 글을 써 보려 한다. 사진이 하나도 없는 순간이 있다는 것에, 동서고금 부모님의 명언인 '남는건 사진 뿐이다' 를 다시 되새기며 최대한 옛날 기억을 떠올려 보려 한다. 




끝날 때는 다신 안 하겠다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 보니 몇 번이고 할 수 있었던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2016년, 나는 독일에서 교환학생 중이었고 여름 방학을 맞이해서 여행 계획을 짜고 있었다. 언제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던 그때 정말 주머니의 동전까지 털어서 여행을 다녔다. 그러던 와중에, 부모님이 유럽을 와 보고 싶다고 하셨다. 나는 부모님이 유럽을 오셔서 같이 다닐 수 있는 여행 일정을 짜 보기로 했다.




그때 나는 교환학생도 처음이었고 혼자서 여행을 다니는 것도 처음이었다. 당연히 여행 계획이 능숙하지 않았고 이것저것 경험을 하면서 익혀 나가는 중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때 그런 나라도, 동선이 길어지고 숙박기간이 짧아지면 매우 피곤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부모님이 들어오는 프랑크푸르트에서 뮌헨으로 이동한 다음 큰 도시를 왕복하는 일정을 짜서 최대한 동선을 줄여 보려 했다. 




그런데 아빠가 스위스를 가 보고 싶다고 하셨다. 주어진 예산과 일정 안에서 스위스를 가게 되면 일정이 매우 빡빡해 지고 동선도 복잡해진다고 이야기 하면서 완곡하게 다른 일정을 추천했지만 아빠 또한 완곡하게 스위스를 가고 싶다고 했다. 스위스를 일정에 넣기 위해서는,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하고 나서 스위스로 기차 타고 4시간 정도를 가는 일정을 만들어야만 했다. 그리고 아빠는 신경 쓰지 않았다.




결국 여행 내내 도시 하나에서 2박 씩 밖에 하지 않는, 지금의 내가 가장 싫어하는 여행 일정이 완성되었다. 하지만 언제 또 갈 수 있을지 모르는 곳의 여행 일정이라면 크게 문제될 것이 아니다. 가기 힘든 곳을 갈 때 최대한 많이 봐 둬야 하니까. 한국인이라면 크게 문제될 것이 없는 여행 일정을 계획한 뒤 부모님의 확인을 마치고 관련 예약까지 다 했다. 그리고 부모님이 독일에 도착하는 날 프랑크푸르트 공항으로 향했다.




독일 안에서 이곳저곳 이동할 때는 장거리 버스를 잘 이용했는데, 가격이 저렴하여 쓰기 좋았다. 녹색 바탕에 주황색 선으로 글자가 적힌 버스였는데, 운 좋게도 부모님 도착하는 시간과 잘 맞게 버스를 예약할 수 있어서 기다릴 필요 없이 버스를 타고 프랑크푸르트 공항으로 갔었다. 인천에서 출발해 독일에 도착하는 비행기를 확인하고 출구에서 기다리니,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했다. 아마 다들 비행기에 타고 있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오래 전 찍었던 프랑크푸르트 공항의 사진. 이곳에서 부모님을 기다렸다




시간이 지나고 비행기가 도착했는지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원래 가방을 찾고 입국심사를 하고 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좀 걸리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늦는다 싶은 시간까지 기다렸던 것 같다. 하지만 어디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혼란스러울 지구 반대편에 두 분이 오셔서 잘 나오기만을 기다리며 그곳에 계속 있었다. 반갑게 만나서 어디론가 사라지는 사람들을 계속해서 보내길 몇 번째,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부모님이다.




부모님도 나를 알아보고, 나도 부모님을 알아본다. 부모님은 나를 보자마자 탔다고 했다. 그때 많이 타긴 했었다. 돈을 아끼기 위해 발품을 팔다 보니 피부가 탄 것은 알고 있었지만, 부모님이 보고 이야기 할 정도로 탔을 줄은 몰랐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전철을 타고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으로 갔다. 목적지인 스위스로 가기 위해서이다. 




온갖 사람들로 북적이는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서, 비행기 타고 온 부모님이 시차 적응은 문제가 없으신지 확인했다. 나도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오후 비행기를 타고 도착하는 경우 시간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느낌에 크게 시차를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스위스로 가기 위해서는 시간이 많이 남았기에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의 카페에서 간단히 빵을 사 먹었다. 아빠가 빵을 데워줄 수 있냐고 물어봐 달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정말 데운 빵을 드시고 싶었던 건지, 아니면 내가 물어보는 것을 구경하고 싶으셨던 건지는 모르겠다. 진짜 데운 빵을 먹었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 




빵을 다 먹고 나서 플랫폼에서 기차를 기다린다. 화장실을 돈 내고 써야 한다니까 무슨 화장실을 돈 내고 쓰냐면서 혀를 내두르는 아빠에게 돈 내고 샤워하는 곳도 있다고 알려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기다렸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기차가 오지 않는다. 알고 보니 기차가 연착 되었다. 사실 기차가 늦는 것은 그렇게 드문 일이 아니었다. 문제는 이번에 타야 하는 기차는 스위스 취리히까지 가는 과정에서 환승을 하는 기차였고, 첫 번째 기차가 연착되었다는 것이다. 그 말인 즉슨, 그 뒤로 향하는 열차들도 못 찬다는 것이었다.




큰일이다 하는 생각에 어플로 기차 일정을 확인해 본다. 연착되어 도착하는 기차를 타고 취리히까지 가면 자정을 넘기는 시간이다. 첫날 무리해서 취리히를 가는 과정에서 안그래도 도착 시간이 늦었는데, 연착되어 시간이 훨씬 늦어지게 된 상황이다. 일단 플랫폼에 있는 안내 데스크에서 연착과 환승 내용을 설명하니 종이를 한 장 준다. 이걸 표와 함께 보여주면 환승 티켓을 정상적으로 이용할 수 있을 거라나. 




두 시간 정도를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렸던 것 같다. 시간이 좀 더 충분하거나 했다면 도심지를 구경하거나 돌아볼 수도 있겠지만, 장기간 비행을 거친 부모님이 지쳐 있기도 했고 시간도 애매한 편이라 그냥 역사 안 의자에서 앉아 기다렸다. 벤치에 셋이서 앉아 아빠는 졸고 나는 숙소에 연락할 방법을 알아보는 사이, 엄마가 중앙역을 둘러보시길래 무슨 생각 하시냐고 물어봤었다. 그냥 너가 여기 맨 처음 도착해서 지금 이 모습들을 봤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말하셨다.




독일 맨 처음 도착해서 찍었던,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의 사진. 어둑한 저녁 시간에, 이곳에서 부모님과 열차를 기다렸다




사실 숙소에 손님이 늦는 것은 아주 비일비재한 일이기에 대부분의 경우 혼자 체크인 할 수 있는 준비를 해 두고, 미리 연락해서 확인하면 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그때 나는 잘 몰랐고 불안한 상태였다. 일단 숙소에 늦을 거라는 이메일은 보내 뒀지만 답신은 받지 못하는 상태였고, 그렇게 기다리다 드디어 열차가 도착했다. 예정보다 몇 시간 늦은 상황이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출발해 취리히까지 가는 열차를 예약할 때 나는 별 생각 없이 자리 예약을 안 해둔 상태였다. 좌석당 추가 요금을 내야 하기 때문에 한 객차 안에만 다 들어가게 하고 좌석 지정은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실수였다. 말 안 통하는 피곤한 외국인들이 가득한 객차 하나 안에 군데군데 빈자리가 세 개 있었고, 그곳이 나와 부모님이 앉아서 갈 자리였다. 




'교훈 1, 열차 자리 예약 지정을 하자'




나는 어떻게 열차가 가는지도 모른 상태로 무슨 일이라도 생길지 전전긍긍하며 불안해 했었다. 그렇게 깊어가는 밤을 달리는 고속열차를 타고 바젤을 거쳐 취리히로 갔다. 취리히 역에 도착하니, 자정 12시를 넘긴 시간이었다. 




한낮의 취리히 중앙역. 이곳에 자정이 넘은 시간, 부모님과 도착했다




이전에 취리히 역에 도착한 적은 있었지만, 그때는 사람이 바글거리던 때였고 부모님과 함께 왔을 때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상황이었다. 사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사람이 하나도 없을까 싶지만 지금 어렴풋이 나는 기억으로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던 것 같다. 중간에 지하도를 한번 건넜는데, 지하도에도 사람이 하나도 없이 문 닫은 상점들과 전깃불만 들어와 있어서 적막만이 감돌았다. 




지도를 보면서 숙소를 찾아 가는데, 문 연 가게들이라고는 음식점과 술집들 뿐이었다. 숙소가 번화가가 아니라 주택가 골목길 같은 곳에 있었다. 숙소 체크인 시간을 한참 넘겨서 가고 있었기에 매우 불안했다. 제대로 쉬지도 못하는 부모님을 모시고 왔는데 체크인을 못한다? 그 다음은 어떻게 해야 하는거지? 




조급해진 마음 탓인지 일렁여 보이는 네온사인들을 몇 번 지나고 나서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의 1층은 음식점이고 그 위쪽부터 숙소였다. 1층으로 들어가니 정리가 끝난 음식점에서 직원 한 명이 마무리를 하고 있었다. 체크인을 하러 왔다고 하니, 너 정말 운 좋다, 나 방금 집 가려고 했다고 말했다. 정말 천만 다행이었다.




숙소는 넓은 공간에 침대 두개와 소파베드 하나가 있었다. 부모님께 침대 하나씩을 드리고 나는 소파베드에서 자기로 했다. 시간을 보니 새벽 1시가 넘었는데, 다음날 아침도 새벽같이 일어나 일정을 진행해야 했다. 시계를 확인해 보니 한 4시간 정도 잘 수 있을 것 같다. 




그래도, 무사히 잠자리에 누울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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