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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준 Mar 20. 2022

홈쇼핑이 있는 이유

정보 검색은 아무래도 잘 모르겠을 사람들

나는 텔레비전을 잘 보는 편이 아니다. 하지만 종종 주말 저녁에 음식을 해 먹으면서 아무 생각 없이 텔레비전을 틀 때가 있다. 보통은 철 지난, 대사와 장면 전개까지 외웠을 법한 영화를 보지만 종종 홈쇼핑을 보기도 한다. 옛날에는 유럽여행 패키지 홈쇼핑을 자주 봤고, 요새는 종종 간편식 홈쇼핑을 본다. 그 특유의 난리법석과 호객행위가 유치하다고 느낄 때도 많지만 그래도 종종 홈쇼핑을 보며 요새는 무슨 물건을 파는지, 어떤 측면을 강조하는지 보곤 한다.




그런데 인터넷으로 물건을 사는 사람들에게 홈쇼핑은 이상하기만 하다.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다양한 물건을 다양한 가격대로 찾아서 살 수 있는데, 텔레비전으로 편성된 판촉 채널을 보면서 전화로 물건을 주문한다는 것은 얼핏 생각하기엔 이해하기 힘든 선택이다. 게다가 홈쇼핑은 특성상 홍보 비용이 많이 들어가고 결국 그 비용은 어떻게 해서든 간에 구매 가격에 다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유통구조상 인터넷으로 물건을 사는 것보다 합리적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홈쇼핑에서 물건을 사는 사람들은, 왜 홈쇼핑에서 물건을 사는 것일까? 홈쇼핑 제공하는 특별한 것은 어떤 것일까?




얼핏 보면 거품 잔뜩 낀 유통구조 같은, 홈쇼핑이 가지는 장점은 무엇일까? 2018/10/04, 서울 북악산




고등학교때 핸드믹서가 사고 싶었다. 그땐 인터넷 쇼핑이고 뭐고 아무것도 모를 어릴 시절이었기에, 일단 엄마에게 핸드믹서가 사고 싶다고 말했고 엄마는 나와 함께 유명 가전제품 매장 프랜차이즈에 갔다. 그곳에 가서 직원에게 핸드믹서가 무엇이 있는지 물어보고, 이게 있다고 해서, 그걸 샀다. 내가 물건을 직접 찾아서 샀다기보다는 누군가가 추천을 해 준 것을 산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한참 지나서, 여태 쓰던 핸드믹서가 망가졌기에 요리에 쓸 핸드믹서를 다시 사게 되었다. 나는 그때처럼 가전제품 프랜차이즈 매장에 가지 않았다. 인터넷을 이용해 핸드믹서에 어떤 제품이 있는지 확인하고, 내가 원하는 유형을 검색했다. 나는 인터넷으로 핸드믹서를 사는 것이 처음이었지만 어떤 제품이 있고 각각 어떤 특성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가령 회전부속이 한개라던가, 두개라던가, 회전속도 조절이 된다던가, 하는 것들이다. 비록 누군가가 추천해 준 것도 있었지만 사기 전에 다양한 정보를 함께 비교하여 핸드믹서를 샀다. 




생각해 보면 옛날에 물건을 사던 방식은 정보가 아니라 전문가를 찾는 것이었다. 우리가 어떤 물건을 살 때 그 물건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별로 없기에, 물건에 대해 알고 있는 전문가의 의견을 구했다. 시장에서 야채를 사면 야채집 주인의 의견을 구했고, 옷가게에 가면 옷가게 주인의 의견을 구했다. 직접 정보를 찾을 수 없는 환경이기에 정보를 가지고 있는 전문가의 의견을 구한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서 사람들은 더이상 정보를 가진 전문가에게 의지하지 않는다. 어지간한 정보는 인터넷을 검색하여 직접 알아보고 수집하여 자신이 이용할 수 있는 정도로 가공할 수 있다. 일전 전문가를 통해서 얻을 수 있던 필요한 정보들이 인터넷에 널려 있고, 정보 검색에 능숙한 사람이라면 자신이 잘 모르는 분야의 것이라 해도 정보를 찾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인터넷에 널려 있는 정보는 보기 편하게 가공되어 있지 않다. 결국 이전보다 더 많은 정보를 찾을 수 있게 되었지만, 정보를 검색하는 방식을 이해해야만 한다. 정보를 찾는 방식은 익혀나가는 기술과 같아서, 어떤 사람들에게는 오랜 시간 천천히 해 오며 너무나도 당연하게 할 수 있는 것이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도무지 봐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것들이다. 그리고 도무지 모르겠는 사람들은 점점 정보 검색이 힘들어진다. 정보는 점점 넘쳐 오르는데 검색은 더욱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홈쇼핑은 이런 사람들에게 도움을 준다. 어디 접속해서 회원가입을 하고 인증을 하고 필터는 어디서 어디까지 적용하고 결제는 어떻게 하고 같은 일련의 과정이 너무 복잡해져버린 사람들에게, 전화 한 통으로 주문을 하게 해 준다. 키오스크를 대하는 것 같은 낮설음은 제껴두고 마음 편하게 대화로 풀 수 있는 상담원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덤이다. 




홈쇼핑은 구매자가 새롭게 무언가를 배워야 한다고 하지 않는다. 그저 가만히 앉아서 보고, 사고 싶다면 전화만 하면 그만이다. 결정해야 하는 것은 돈을 낼 것인가 말 것인가 뿐인 것이다. 




홈쇼핑 시청자는 결정 후 전화만 하면 된다. 인터넷 쇼핑과 가장 큰 차이점은 그것이다. 2018/09/12, 서울 남산




사실 세대간의 정보격차는 오늘내일의 일도 아니고, 이미 여러 번 언급되기도 한 문제이다. 보통 정보격차가 언급되면 새로운 기술을 익히지 못한 낡은 사람들이 뒤쳐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많지만, 어쩌면 다르게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옛날에는, 정보를 종속시키는 것은 사람이었다. 사람이 정보를 수집하여 가공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퍼뜨렸다. 그래서 모르는 것이 있으면 선생님에게 물어보고, 이장에게 물어보고, 버스기사에게 물어봤다. 그땐 그게 삶의 방식이었다. 




지금은 어떠한가? 정보는 사방팔방에 널려 있고, 정보를 어떻게 자신의 것으로 삼을 것인지는 개인의 능력이다. 사람은 더이상 정보를 종속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정보가 사람을 종속시키게 되었다. 사람이 정보를 이용하지 않고, 정보가 사람을 이용하게 되었다. 하지만 옛날을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정보를 다루는 사람에게서 정보를 찾던 그 때의 생활방식이 남아 있다. 그래서 버스 정류장에서 뒤에 버스 노선도를 두고 버스 기사에게 어디어디 가냐고 물어 보고, 손에는 핸드폰을 들고 삼거리가 어디냐고 물어 보는 것이다. 




순식간에 지나가버린 정보의 흐름 속에서, 정보의 검색은 둘째치고 원하는 물건을 어디서 찾아야 할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홈쇼핑은 오늘도 열심히 홍보영상을 방영하고 있다. 티비채널 사이에서 반짝거리는 홈쇼핑은 시청자들에게 제안을 보낸다. 옛날 시장에서 물어물어 상품을 집던 사람들이 물건을 사던 그때 그 방식 그대로.



홈쇼핑은 정보화 시대를 사는 옛날 사람들에게 손을 흔든다. 옛날 그 방식 그대로. 2018/10/03, 서울 광화문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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