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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준 Apr 03. 2022

교훈 3, 음식에 돈 아끼지 말자

부모님 모시고 떠난 스위스

다음날 아침, 어떻게 잠을 잤는지도 모르고 아침에 일어나 체크아웃을 하기 위해 부산을 떨었다. 내 실책으로 야외 캠핑촌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자야 했던 나는, 근처의 괜찮을 법한 호텔을 급하게 예약했다. 자주 숙소를 바꾸는 것은 정말 피곤한 일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하루 더 잤다가는 더 피곤할 것이다. 일단 최대한 빨리 부모님을 모시고 새로운 호텔로 간 다음 짐을 맡겨 두어야 한다. 이날도 바쁜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체크아웃을 하기 위해 나오니 스태프 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은 직원이 돌아다닌다. 안녕, 사실 나는 부모님하고 왔는데, 부모님이 힘들어 하셔서 바로 체크아웃 해야 할 것 같아. 숙박비는 전부 지불할께. 직원에게 이야기 하니 알겠다고 하면서 계산을 도와준다. 박 당 세금을 추가로 납부해야 하지만 하루는 숙박하지 않으니 안 내도 된단다.




고통스러운 하루의 숙박을 대가로 큰 교훈을 얻은 뒤, 캐리어를 드륵드륵 끌며 길을 나선다. 새로 예약한 호텔은 조금 거리가 있는 곳에 있었지만 걸어갈 수 있었다. 부모님 두 분을 모시고 푸른 하늘 산 쪽으로 조금 걸어가다 보니, 작은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인 곳이 나온다. 그 곳 중 한 곳이 예약한 호텔이었다. 4층 정도 되는 건물에 발코니와 출입구 쪽에는 꽃 화분을 충분히 준비한 모습이, 소박하지만 흔하게 볼 수 있는 흔한 스위스 건물의 모습이다.




1층으로 들어가니, 젊은 사람이 카운터에 앉아 있다. 앉은키가 어찌나 큰지 똑바로 서면 천장에 머리가 닿을 것 같다. 전날 급작스럽게 예약을 해서 예약이 잘 되었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별 문제 없이 예약이 끝났다. 사실 갑작스러게 숙소를 바꾼 상황이라 예약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걱정했는데, 예약이 잘 된 것을 확인하고 긴장이 확 풀렸던 기억이 난다. 숙소에 짐을 맡기고, 아침에 불편하게 나오느라 세수도 못하고 화장실도 못 간 부모님 화장실 쓸 시간을 드린 뒤 나는 잠시 로비에 앉아 있었다. 바닥에 젖소 가죽 카페트가 깔려 있었던 기억이 난다. 젖소의 검은 색과 하얀 색의 배치가 재미있어서 나중에 나도 그런걸 한번 사 볼까 생각했다.




준비를 모두 마치고 다시 길을 나섰다. 이날은 체르마트를 가 보기로 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 뾰족한 산봉우리로 유명한 마터호른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체르마트에 가기 위해서는 인터라켄에서 기차를 몇 번 갈아타야 한다. 높은 산맥 아래 귀가 먹먹해질 정도의 압력이 느껴지는 터널을 지나면, 기차는 높은 골짜기 사이로 물길을 거슬러 올라간다.




체르마트까지 가는 기차가 계곡 사이를 지날 때, 창이 천장 가까이 까지 나 있어서 위쪽도 볼 수 있다. 맞은편에 아무리 봐도 한국인인 것 같은 사람이 있었는데, 다이어리를 들고 다니면서 여행의 감상문을 적는 것 같았다. 슬쩍 그 모습을 보고 또 창 밖을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체르마트 역에 도착했다.




기차를 타고 주위를 구경하는 것도 좋지만, 때로 너무 피곤하면 졸리기 마련이다




체르마트 역에 도착하고 나면 조금 걸어서 마터호른 봉우리를 볼 수 있다. 체르마트 역에 도착하고 나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마터호른 봉우리부터 살펴야 한다. 마터호른 봉우리는 날씨가 시시각각으로 변해서, 말끔하게 봉우리를 볼 수 있는 경우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운이 좋다면 구름 하나 없는 깔끔한 봉우리의 모습을 볼 수 있지만, 운이 없다면 그 모든걸 상상으로 대신해야 한다. 부모님을 모시고 마터호른 봉우리를 보러 나가니, 아쉽게도 구름에 가려져 있다. 하지만 아직 시간이 있고 운이 좋다면 다시 날씨가 좋아질 수도 있었다.




체르마트에는 마터호른을 볼 수 있는 몇 개의 전망대가 있다. 내가 옛날에 방문했을 때 갔던 전망대가 고르너그라트 였는데 그때의 경험이 꽤 만족스러워서 다시 고르너그라트를 가기로 했다. 고르너그라트는 스위스패스 이외에 추가로 표를 끊어야만 해서 부모님과 함께 3 명 분의 표를 끊고 열차에 올랐다. 톱니바퀴로 올라가는 열차는 비탈길을 비스듬히 올라가는데, 꽤 오랜 시간 천천히 전망대까지 올라간다.




고르너그라트 전망대에는 음식점도 있고 기념품 가게도 있다. 천문대의 그것과 같은 둥근 돔 형 지붕이 눈에 들어온다. 전망대 뒤쪽에는 바위봉우리가 있어서 걸어 올라갈 수 있는데, 올라가 주위를 둘러보면 전망대와 함께 마터호른이 한 눈에 들어온다. 날씨가 좋지 않아서 마터호른 주위로 구름 가득 낀 모습이었지만, 언듯언듯 보이는 변두리만으로 그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아빠는 우리가 내려가기 전에 구름이 걷힐 것인지 걷히지 않을 것인지를 가지고 내기를 하자고 하셨다.




구름에 가려진 마터호른 봉우리




고르너그라트 전망대와 그 뒤의 마터호른. 전망대 지붕에는 새들이 한가득이다




부모님께 맨 처음 마터호른에 왔을 때 일을 이야기 해 드렸다. 열차를 타기 전 산 음료수가 빵빵하게 부풀어 있었던 것, 얇은 옷을 입고 와서 좀 추웠는데 바람막이라도 급하게 하려 했다가 가격을 보니 안 추워진 것. 내가 혼자 겪었던 일들을 부모님께 이야기 해 드리며 주위를 둘러 보았다. 내가 왔을 때는 한여름이라 풀의 녹색과 들꽃이 좀 더 선명했는데, 시간이 좀 지나서 그런지 많이 사그라든 상태였다.




고르너그라트를 조금 구경하고 걸어서 내려가기로 했다. 적당히 걷다가 중간에 열차를 타고 내려갈 수 있기에 부담이 적다. 마터호른에서 비킬 생각을 않는 구름은 야속하지만, 비탈길을 따라 천천히 내려가다 보면 주위를 둘러싼 산맥과 함께 저 멀리 비스듬히 타고 내려오는 빙하도 구경할 수 있다. 코 앞에 펼쳐진 거친 대자연을 구경하며, 부모님과 언덕길을 내려갔다.




마터호른 봉우리는 계속 구름에 가려져 있다




길이 생각보다 거칠지 않아서, 천천히 내려가는 것은 어렵지 않다




내려오다 보면 중간에 호수를 볼 수도 있다




나중에 보니 더 마음에 들었던 사진




갑자기 구름이 몰려오며 날씨가 흐려진 날씨에, 산맥이 더욱 거칠어 보였다




원한다면 고르너그라트에서 체르마트 역까지 걸어내려갈 수도 있지만, 부모님을 모시고 그렇게 하기엔 시간이 많지 않았다. 적당히 주위를 둘러보며 내려오다가 중간에서 열차를 타고 내려가기로 한다. 웅성웅성 하는 사람들에게서 익숙한 말이 들려서 돌아보니 한국인이다. 얼핏 보니 한국인 단체 관광객 같다. 나는 먼저 적극적으로 말을 거는 편이 아니었지만, 부모님은 곧잘 말을 걸곤 했다.




의도치 않게 개인정보가 마구 공개되는 것을 보면서 개인정보보호는 어디 갔는가 한탄한다. 그런데 어떤 부부가 여자아이를 데리고 온 것을 보았다. 사실 가족 단위로 패키지 여행을 오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그 가족이 특별히 눈에 띄었다.


스위스 패키지 여행 중에서도 체르마트에 오는 것은 드문 편이었기에, 어떻게 오게 되셨냐 물어보니 아이가 겨울왕국을 보고 나서 와 보고 싶다고 하길래 오게 되었다고 했다. 여러가지 기회가 맞았겠지만, 아이의 말을 듣고 지구 반대편까지 온 그 부부가 순간 대단하게 느껴졌다.


패키지 여행은 어떠냐고 슬쩍 물어보니, 화장실 가기 힘들다면서, 화장실 좀 보내주면 좋겠다고 소리 낮춰 말한다. 여자아이는 기념품 가게에서 산 듯한 금화 모양 초콜릿을 줬다. 그 마음은 고마웠고, 초콜릿 맛은 정말로 없었다.




체르마트로 돌아와 열차 시간을 기다리며 마트에서 간식을 사기로 했다. 그런데 아까 봤던 단체 관광객들이 대형마트에 그대로 들어와 있다. 잠깐의 자유시간에 필요한 것을 사러 들어온 모양이다. 앞으로 볼 일 없을거라고 생각하고 손 흔들며 작별을 고했던 사람들과 다시 만나는 것은 약간 어색한 일이다. 슬쩍 고개 숙여 인사하고 간식거리를 산 뒤 열차에 올라 인터라켄으로 돌아간다.




체르마트 역에는 분천역과의 교류관계를 알리는 간판이 붙어 있다




체르마트에서 인터라켄으로 갈 때 슈피츠 라는 곳에서 환승한다. 해질녘 슈피츠에서 봤던 멋진 풍경




인터라켄에서의 마지막 날 저녁, 밖에서 밥을 먹기로 하고 적당한 음식점을 찾아 돌아다니다가 하나 찾아 자리를 잡았다. 사실 내가 일전에 인터라켄에 왔을 때 어떤 미국인과 갔던 가게를 다시 갔었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 들어가지 못해 다른 곳을 갔던 것 같다. 자리에 앉아 음식을 주문하려는데 한 명이서 메뉴를 하나씩 고르다 보니, 아빠가 옆 테이블에서 먹고 있는 육회같은 것을 먹고 싶다 하셨다. 기억을 잘 더듬어 보면 아마 스테이크 타르타르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데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나와 엄마는 별로 좋은 생각 아닌 것 같으니 다른 음식을 드시는 것이 어떠냐 했고, 아빠는 꽤 그 음식이 드시고 싶으셨는지 아주 아쉬워하며 실망하셨다. 밥을 먹는 동안 엄마와 내가 매우 신경쓰였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렇게까지 했는지 모르겠다. 처음으로 부모님을 모시고 먼 곳까지 여행을 간 상태에서, 예산을 엄청나게 부담스럽게 생각하면서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랬었나 싶다.




사실 언제 다시 갈 수 있을지 모르는 곳에서 음식을 더 먹으면 어떠고 돈을 더 쓰면 어떤가. 중요한 것은 못 해서 아쉽다고 생각할 만한 것은 남겨놓지 않는 것 아니었을까. 먹고 싶은 음식을 먹는 것 정도는 쉽게 할 수 있는 것인데. 그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지만, 시간이 많이 지나고 나서 다시 생각할 때마다 한 가지 교훈을 떠올렸다.




'교훈 3, 음식에 돈 아끼지 말자'



많은 교훈을 배울 수 있었던 식사 시간




식사를 마치고 숙소까지 걸어갔다. 어둑하고 한적한 길을 걸어가는데, 어디서 콘서트를 하고 있었는지 큰 음악소리가 들렸던 기억이 난다. 숙소에 도착하니 직원 근무 시간을 넘긴 이후였고 정문은 닫힌 듯 보였다. 바로 옆쪽 숙소 건물에 딸린 음식점에서는 사람들이 밥을 먹고 있었다. 숙소 입구에서 두리번거리는 우리를 봤는지, 문에서 아침에 만났던 직원이 나왔다. 입고 있는 옷이 잠옷인 것 같았는데, 장대만한 키에 어울리지 않게 귀여운 잠옷이었던 것 같다.




비록 근무가 끝났지만 친절한 도움으로 방을 찾아 들어갔다. 그런데 우리가 머물 곳은 예약 확인을 했던 건물이 아니라, 바로 옆 골목에 있는 건물이었다. 건물은 맨 처음에 우리 가족이 봤던 와 예쁘네~ 정도 까지는 아니었다. 게다가 우리가 자게 된 곳은 1층이었다. 1층의 문에 열쇠를 가져다 대는 순간 뒤에서 아쉬워하는 아빠의 탄식이 들려왔다. 이날 아빠는 세 시간 만에 두 번이나 실망을 했다.




그래도 어제와 같이 혹독한 환경에서 잘 필요가 없다는 것은 천만 다행으로 생각하며, 인터라켄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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