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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준 Apr 10. 2022

교훈 4, 일정은 여유있게 짜야 한다

부모님과 함께하는 스위스 유랑

급하게 예약했지만 전날 밤보다 훨씬 안락한 숙면을 취할 수 있었던 호텔에서, 아침에 일어나니 아빠가 없다. 일어나서 이것저것 정리를 하고 아침 먹으러 갈 준비를 하고 있으니 돌아오셨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주위를 구경하고 돌아오셨다고 한다. 사람 별로 없는 시골에 가까운 곳이라 괜찮았겠지만, 대도시에서라면 걱정이 많이 되었을 것이다.




식사는 숙소의 체크인 절차를 마쳤던 그 건물에서 하게 되어 있었는데, 생각해 보면 스위스에 도착해서 첫 번째로 먹는 조식이었다. 여태까지 조식이 없는 곳에서만 숙박을 한 탓에 미리 음식을 싸들고 다니거나 했었다.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많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구성이 튼실해서, 부모님과 함께 천천히 잘 챙겨 먹었다. 




저녁 전에 언제 식사를 편하게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으니 천천히 많이 드시라고 말씀드렸고, 부모님은 평소에는 안 드시는 것까지 이것저것 먹어 보면서 돈이 아깝지 않게 아침을 챙겨 드셨다. 조식 먹는 공간의 문이 무언가에 걸려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컬링에 쓰는 돌인 것이 재미있었다.




젖소 가죽 카펫에 이어서, 신선한 재미를 주었던 컬링 돌 쐐기




체크아웃을 한 뒤 덜덜거리며 가방을 끌고 인터라켄 역으로 간다. 이날은 루체른을 거쳐 취리히로 갈 예정이었다. 인터라켄에서 출발해 루체른으로 가는 열차는 여러 개의 호수와 작은 마을을 거치는데, 열차의 진행 방향과 창문 쪽에 따라서 볼 수 있는 광경이 천차만별이다. 예쁜 곳을 지나가는데 한 쪽은 수풀투성이 벽을 보고 있고 한 쪽은 마을과 호수의 전경을 보고 있다면 누가 봐도 전자가 마음에 들 것이다. 지도를 잘 보니 이쪽에 앉으시는게 좋을것 같다, 했지만 생각한 대로 맞지 않아서 결국 가는 도중에 몇 번 자리를 바꿨던 기억이 난다. 



부모님과 함께 갔을 땐 찍지 못했지만, 혼자 갔을 때 찍었던, 루체른 가는 기차 안에서의 풍경




산 아래 호수, 마을을 몇 번 지나가며 예쁜 풍경에 감탄하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루체른에 도착했다. 스위스 패스를 가지고 있다면 추가 요금 없이 이용할 수 있는 관광 노선이 있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나도 혼자 루체른에 가서 돌아 본 코스가 괜찮아서, 비록 똑같은 코스를 가지만 부모님과 함께 가면 좋겠다 싶었다. 




보관함에 짐을 넣고 루체른 역을 나서면 바로 앞에 여객선 타는 곳이 있다. 이곳에서 출발한 여객선은 유명 관광코스인 리기산을 올라갈 수 있는 곳으로 간다. 그런데 루체른 역을 나서며 자세히 보니 여객선이 도착해 있고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가는 것이었다. 자세히 보니 리기산 가는 것이 맞아서, 놓치면 또 다음 것을 기다리는 과정에서 시간을 낭비할 것이니 재빠르게 가서 부모님과 함께 올랐다. 



루체른 역 앞의 인상적인 구조물




혼자 루체른 여객선을 탔을 때, 출발 전 여객선에서 바라봤던 도시의 전경




다행히 목 좋은 곳에 부모님과 함께 앉아 좋은 전경을 바라보며 배가 출발하기를 기다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객선이 출발하고, 물 위를 덜컹거리며 지나가는 여객선 위에서 높은 산과 그 아래 펼쳐진 예쁜 호수와 집들을 구경한다. 그런데 가까운 곳에서 한국어가 들린다. 알고 보니 다른 한국인 가족이 여행을 온 모양이다. 




아마 그 사람들도 우리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았겠지만, 어쨌든 재잘재잘 열심히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 엄마와 아빠는 각자가 알아낸 그 가족의 TMI 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왜 그런걸 캐고 그래요, 하고 말해보지만 세대차이란게 이런걸까 싶다.




멋진 풍경과 높은 산을 구경하며 가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한다. 바로 앞쪽에 있는 열차를 타면 목적지인 리기산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다. 리기산을 천천히 올라가는 열차에서는, 가는 방향을 보고 앉는 것이 좋을 것 같지만 역방향으로 앉는 것이 더 편하다. 역방향은 머리채 잡히고 끌려가는 듯한 느낌이 이상하지만, 더 많은 전경을 눈에 담을 수 있다. 



여객선에서 볼 수 있는 호수의 모습




리기산을 오르는 열차 안에서의 한때




리기산 정상에 내려 도착하면 건물 몇 개와 함께 높은 송신탑이 있다. 그 주위로 산, 호수, 도시가 어우러진 스위스의 전경이 펼쳐진다. 운이 좋다면 군악대의 연주를 들을 수 있다. 맨 처음 리기산에 왔을 때 동영상을 찍어서 부모님께 보내드렸었는데, 함께 온 아빠가 그걸 기억하셨는지 그때 음악 연주를 하던 곳이 여기 아니냐 하면서 알아보셨다. 




힘들이지 않고 오를 수 있는 리기산 정상에는 평화로운 한때를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아빠가 여기서 잠깐 풀밭에 앉아 시간을 보내자고 했던 것 같은데, 앞으로의 일정을 생각한 내가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다고 했더니 아빠는 많이 아쉬워 하셨다. 




리기산 정상에서는 패러글라이딩을 즐기는 사람도 쉽게 볼 수 있는데, 운 좋게 도약의 순간도 볼 수 있었다. 높은 산 위에서 적절한 타이밍을 잡아 뛰어내리면 바람을 타고 날아 오를 수 있다. 하늘에 사람이 떠오르는 순간 그걸 지켜보는 사람들이 박수를 쳐 준다. 아빠도 옆에서 박수를 쳤다. 




리기산 정상을 구경하고 나서 주위를 둘러보며 걸어 내려갔다. 산에 풀어 놓은 소들을 쉽게 볼 수 있는데, 가끔은 인도에도 흔적을 흘리고 다니기에 무심결에 밟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소들은 목에 방울을 걸고 있는데, 움직이거나 머리를 돌릴 때 딸랑딸랑 소리가 났다. 가다 보면 중간에서 정상에서와는 다른 전경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정상을 구경하고 천천히 걸어 내려가다가 중간즈음에서 열차를 타는 것도 좋다. 




철도 옆에서 걷다 보니 사람 키만한 거대한 호박을 봐서 사진을 찍기도 했다. 사실 호박은 크게 자라기도 한다지만,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그렇게 커질 수 있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관광객이 많아서인지, 철도에서 조금 벗어난 길을 따라 걷다 보면 private 이라는 표지판을 걸어 둔 집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는 엄마에게 사유지니까 들어가지 말라는 뜻이라고 설명해 드린다. 



리기산 정상, 그 아래 펼쳐지는 스위스의 풍경




산 정상의 소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는다




올라왔을 때와 다르게, 중간에 케이블카를 타고 산 아래로 내려간다. 케이블카 정거장 앞에는 전망 좋은 수영장을 가진 멋들어진 호텔들이 있다. 언젠간 숙박해 보고 싶다 생각하면서 케이블카 정거장에 가기 전 기념품 가게를 구경하러 간다. 나는 별 관심이 없는 편이었지만 부모님은 심심하면 들어가 보곤 하셨는데, 아빠는 등산용 지팡이를 아주 탐냈지만 고민 끝에 사지는 않으셨다.



구경을 마치고 케이블카에 오르면, 케이블카는 정거장을 출발해 산 아래로 내려간다. 중간에 탑을 지날 때는 한번씩 크게 흔들리는데, 흔들릴 때마다 사람들의 환호성 혹은 웅성임이 올라온다. 케이블카에서 내려가며 보는 전망도 좋지만, 사람들이 케이블카 안에 꽉 차 있는 탓에 보고 사진 찍기가 쉽지 않다.



 

산 아래 정거장에 도착해 조금 걸어가면 여객선 선착장이 있다. 이곳에서 배를 타고 루체른으로 돌아가면 되는데, 여객선 주위의 전경이 정말 멋지다. 일렁이는 호수와 산은 흔히 스위스 하면 떠올리는 딱 그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사진을 찍곤 한다. 어느 한국인 관광객 무리 중 한명이 신경질적으로 사진 좀 빨리 찍어달라고 하자, 주위에서 그 성깔을 못이겨서 사진 찍어주던 모습이 기억난다. 복잡하게 근처를 돌지 않고 그처 호숫가에 앉아서 경치를 구경하고 있으니 이번엔 다른 한국인이 루체른 가는 여객선 타는 곳을 묻는다. 유명한 관광코스라 그런지, 한국인이 정말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관광객들로 북적이지만, 호수 쪽 방향은 한적하고 평화롭다




다시 루체른으로 돌아와서 열차를 타고 취리히로 향했다. 역 바로 옆에 있는 호텔을 예약했는데, 바로 앞쪽에서 한국인 패키지 관광객이 체크인을 하는 모양이었다. 여러 명을 상대로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내 차례가 되자 또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것에서 존경심이 느껴졌다. 나에게 또 다시 설명하려는 직원에게, 뒤에서 다 들어서 또 설명 해줄 필요는 없을 것 같다고 이야기 한 뒤 체크인 수속만 도와 달라고 말했다. 




체크인을 마치는 동안 부모님께 뒤쪽 로비에 앉아 계시라고 했더니 그 짧은 사이에 로비에 있던 다른 한국인들과 함께 TMI 방출을 하고 계셨다. 어떻게 여행을 왔는지, 아들이랑 왔는데 아들이 뭘 하는지, 다른 사람들은 딸이랑 왔는데 딸은 뭘 하는지, 실시간으로 개인정보가 공개되는 익숙한 모습을 지켜보면서 부모님을 모시고 객실로 올라갔다. 마실 물이 필요해서 직원에게 사러 갔더니, 직원이 객실 배정 과정에서 혜택이 생겼다면서 물을 그냥 줬었다. 여러모로 큰 숙소는 아니었지만, 직원의 인상적인 모습이 기억에 많이 남았던 곳이었다.




짐을 정리하고 저녁을 먹기 위해 밖으로 나오니 어두컴컴한 시간이 되어 있었다. 밤의 취리히를 돌아다니다가 취리히 가운데를 흐르는 작은 강을 들여다봤다. 가로등에 물이 환하게 비쳐 보였는데, 나는 그 넓은 곳에 물고기가 한 마리도 없는 것이 항상 신기했다. 내가 물을 계속해서 쳐다보고 있자 엄마가 물고기 찾냐고 물어봤었다. 길을 걷다가 다른 한국 사람들을 만났던 것도 기억나는데, 엄마와 함께 여행온 듯한 여자 두 명이었는데 크게 특별할 것이 없었던 것 같음에도 마주쳐 지나가던 그 순간이 이상하게도 기억에 남았다.




미리 알아둔 음식점은 아니었지만, 여기다 하는 음식점에서 저녁을 먹었다. 딱히 기억에 남는 음식이 아니라 주문할 수 있는 것을 적당히 시켜 먹었었던 것 같다. 왜 옆사람이 먼저 주문했는데 저기가 먼저 음식이 나오냐고 의심하던 아빠의 말이 기억난다. 



전반적으로 소박한 가정식 같았던, 스위스에서의 마지막 저녁식사




시간이 좀 더 있었다면, 취리히 선착장에서 탈 수 있는 여객선을 타고 구경을 해도 좋았을 것 같지만 시간이 없었던 탓에 그렇게는 하지 못했다. 사실 하지 못했던 것이 많아 아쉽기도 했는데, 첫 여행이고 실제로 시간도 없다 보니 일정이 전체적으로 급박한 편이었다. 적어도 이 때 부모님을 모시고 다니던 나는 마치 여행이 아니라 행군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러나 저러나, 여행 일정은 긴박하게 잡는 것보단 시간을 두고 여유롭게 잡는 것이 좋았던 것 같다. 여러 번의 여행을 거치고 나서야 내 취향을 알게 되었던 것 같다. 




'교훈 4, 일정은 여유있게 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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