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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준 Apr 10. 2022

그 가게가 불편했던 이유

그리고 지금은 특별할 것 없는 이유

이제 오래 전 일이 되었지만, 나는 내가 다니던 대학교 후문 근처에서 자취를 했다. 대학교 후문으로 나와 자취방으로 돌아가다 보면 많은 가게들이 있었다. 정말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프랜차이즈부터 시작해서 통신사 매장까지, 다들 괜찮은 자리 하나씩 잡고 좌판을 벌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중에 나의 시선을 잡는 가게가 있었다. 어떻게 이런 곳에 가게가 있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이상한 곳에 자리잡은 가게였다. 




건물 두 개 사이에 있는 그 공간은 건물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닌, 건물 두 개 사이에 천장이 만들어진 기묘한 구조를 하고 있었다. 그 천장 아래에는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는데, 다른 가게들처럼 손님들이 들어와서 쓸 수 있는 공간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지하로 내려가기 전 한 평도 되지 않는 작은 공간에 누군가가 좌판을 열어두곤 했다. 그리고 그 좌판도 매번 바뀌었다.




맨 처음에 내가 본 것은 악세사리 가게였다. 스탠드를 하나 가져다 두고 그 아래 작은 테이블 위에 형형색색의 귀걸이나 목걸이, 반지 같은 것을 두고 팔았다. 길 가다가 멈춰 서서 그 물건들을 자세히 들여다 본 적은 없었지만, 돌아가는 길 양 옆을 흘깃 보다 보면 누군가가 팔기 위해 가져다 둔 것이 명백한 그 물건들이 보였다. 이런 곳에서 장사가 될까? 누가 저 물건을 사 갈까? 하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악세사리가 올라가 있던 좌판은 사라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새로운 물건들이 좌판으로 올라왔고, 또 없어졌다. 그 자리에서 생기는 각각 다른 상품의 좌판들은, 그렇게 생기고 없어지기를 몇 번 반복했던 것 같다. 맨 마지막으로 내가 기억하는 것은 떡갈비 같은 육가공품이었다. 비가 오는 날 사람이 안쪽 계단에 앉아 있고, 갓 구웠는지 아니면 좀 전에 구웠는지 알 수 없는 떡갈비가 그곳에서 식어가고 있었다. 


딱히 배가 고파서 뭘 사먹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지만 그때 나는 그곳에서 떡갈비 하나를 사서 돌아왔다. 나름대로 먹을만 했던 떡갈비를 먹으면서 오늘 몇 명의 사람들이 그곳에서 떡갈비를 샀을지, 매출은 얼마나 나왔을지 궁금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그 떡갈비 좌판도 없어지고, 그 뒤로는 그곳에 아무런 가게도 들어오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지나가면서 그 가게를, 가게가 있었던 자리를 보는 것을 어색해했다. 생각해 보면 그 가게도 누군가의 가능성이나 희망이나 노력 같은 것들이 깃들어 있을 것인데, 내가 그걸 보고 그냥 지나가 버린 것 아닌가 했던 것이다. 내가 누군가의 노력을 그냥 지나쳐 버렸기 때문에 결국 그 노력이 대가를 받지 못한 것은 아닐까? 그래서 결국 그 좌판은 사라지고 빈 가게만이 남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나는 그 자리를 쳐다볼 수가 없어졌다. 나는 일종의 죄책감 같은 것을 느꼈다. 그때 당시 대학교에서 글쓰기 동아리 활동을 하던 나는 그 생각을 정리해 들고 갔었다.




그때 내 글을 읽었던 사람이, 동정적인 입장에서 물건을 반드시 사 줘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 했었다. 그 말이 맞다. 만약 동정적인 입장에서 물건을 사 준다면 구매의 목적은 동정심이니 정상적인 물건 구매와 거리가 멀어진다. 구매를 통해 물건이 개선될 가능성도 없을 것이다. 만약 동정심으로 물건을 구매한다면 내 손에 들어오는 것은 제품이라고 하기보단 기부에 대한 기념품에 가까울 것이다. 모금함에 돈을 넣고 받는 의미없는 플라스틱 쪼가리 같은 것처럼.




현실적으로 본다면 당연한 일이다. 어쩌면 그걸 시작한 사람들도 크게 기대를 하지 않고 시작했을지 모르지만, 사업의 동기와 자세가 어떻든 간에 사람들의 지갑을 열 수 없는 장사를 한다면 그 결과는 명확한 것이다. 사업의 승패 여부는 오롯이 사업을 하는 사람에게 달려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 나는 내가 누군가의 노력을 무시하고 지나갔다는 생각에 마음이 좋지 않았던 것 같다. 




대학생 때 나는, 사라지는 가게를 보면 누군가의 노력이 대가를 받지 못하는 것 같아 슬펐다. 2018 12, 서울역








시간이 오래 지난 지금 나는 비슷한 가게들을 많이 본다. 잘 되는 가게들이 있다면 당연이 안 되는 가게들도 있다. 안 되는 가게들은 결국엔 사라진다. 규모가 다르고 물건이 다를 수 있지만, 내가 기억하고 있던 가게들이 사라지고 무언가 새로 들어올 때, 나는 마음 속에 한 가지만을 생각한다. 아 이게 있었는데 없어졌구나, 하는 짧은 생각이다. 그 옛날 사라진 맹지의 가게를 봤을 때 내가 하던 생각과 천차만별이다.




노력이란 것이 너무나도 허무하게 사라지고 응답받지 못하는 것은 그렇게 특별할 것도 아님을, 나는 오랜 시간을 지내며 알게 된 것이 아닐까. 그래서 이유야 어찌되었든 간에 누군가의 노력이 없어지는 것이, 나에겐 더이상 특별해지지 않은 것 아닐까. 남의 노력이던 나의 노력이던 간에.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지 못한다는 일은 그다지 대단치도 않은 일이라는 것을, 나는 알아 버린 것 같다. 




오늘의 나는,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크게 대단할 것도 없음을 알았다. 2018, 10, 서울 원효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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