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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준 Apr 16. 2022

교훈 5, 부모님께 숙소 설명을 자세히 해드리자

부모님과 뮌헨 호스텔에서 숙박하기

취리히에서의 밤이 지나고 아침에 눈을 떴다. 항상 아침의 시작은 조식을 최대한 잘 챙겨 먹는 것이다. 탄수화물과 단백질 위주의 식사를 위해 음식을 골라 가며, 위장 속에 차곡차곡 음식을 넣는다. 아침을 먹으면서 간단히 그날 어떻게 할지를 부모님께 설명해 드렸다. 버스를 4시간이나 타고 가야 했기에 피곤한 일정이 될 것 같았다.




체크아웃 하고 뮌헨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길을 나섰다. 버스를 타는 곳은 취리히 역 근처에 있다. 캐리어를 끌고 가는데 담배를 피는 3 명과 눈이 마주쳤다. 구석에 서서 담배를 피던 그 사람들 중 여자 한 명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문신과 피어싱이 가득했다. 그때 별 생각 없이 가볍게 인사를 했고, 그 사람도 나에게 인사를 해 줬던 기억이 난다. 한국에서는 아직 일반적이지 않은, 유럽에서만 가능한 경험이었던 것 같다. 처음 보는 사람과 자연스럽게 인사를 하는 것.




그런데 길을 가다가 횡단보도에서 트램이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아빠와 나는 트램이 오는 것을 보고 기다리고 있는데 엄마가 뭘 기다리냐면서 성큼성큼 횡단보도를 건너가려 해서 급하게 잡아챘다. 꽤 가까운 곳에서 트램이 바짝 붙어 지나갔고 순간 운전기사와 눈이 마주친 나는 미안한 표정으로 손을 들어 보였다. 그때 감정 조절을 하지 못하고 엄마를 거칠게 잡아당긴 뒤 뭐하시는 거냐고 다그쳤던 기억이 난다. 여행 중에 답답한 일도 많았지만 거칠게 감정을 드러낸 적이 별로 없었는데, 이때는 감정을 확 드러냈던 것이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도 기억에 남았다.




버스정류장에서 시간 맞춰 버스를 타고 뮌헨으로 향한다. 일전에 뮌헨에서 버스를 타고 취리히로 갔을 때 버스가 배에 실려 호수를 건너던 기억이 있어, 이번에도 호수를 건너서 뮌헨으로 갈 거라고 부모님께 말씀드렸지만 아쉽게도 호수를 건너지 않았다. 대신 큰 호수를 둘러서 뮌헨으로 향하는데, 중간에 오스트리아 땅을 지나기 때문에 오스트리아 국경 표지판을 지나기도 한다.




버스가 지나가는 큰 호수는 독일과 스위스, 오스트리아와 닿아 있는 보덴 호수인데, 호수 주위로 포도농장이 펼쳐져 있는 예쁜 풍경을 지나가기도 한다. 엄마가 버스 안에서 잠깐 자는 사이 아빠가 버스 안에서 잠을 자지 말고 열심히 주위를 구경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피곤하면 속절없이 잠들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보덴 호수 근처를 지나갈 때 볼 수 있는 멋진 풍경들




언젠간 다시 보덴 호수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버스를 타고 오스트리아 국경도 넘어 가며 버스를 타고 나서 4 시간이 지난 뒤, 드디어 뮌헨에 도착했다. 뮌헨에서는 역 근처에 있는 호스텔을 예약했는데, 체크인 시간 이전에 짐을 맡겨둔 뒤 근교의 유명한 관광지를 가기로 했었다. 숙소에 짐을 맡겨둔 뒤 재빨리 퓌센으로 가는 열차를 타기로 했다. 식사를 할 시간이 마땅히 나오지 않아서, 역에 있는 매점에서 이런저런 식료품을 사서 열차에 올랐던 기억이 난다.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가기 위해서는 뮌헨에서 출발해 퓌센으로 간 다음, 그곳에서 버스를 타고 성으로 가야 한다. 독일에서는 같은 주 안에서 무제한으로 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패스가 다양하게 있었는데, 부모님과 함께 셋이서 그것을 끊어 퓌센으로 갔다. 뮌헨에서 출발한 퓌센은 남쪽으로 내려가는데, 스위스 산맥에 가까워져 간다. 들판과 집들이 곳곳에 퍼진 곳을 지나며 퓌센에 가까워져 가다 보면, 이상하게 열차 속도가 느려진다. 멋진 풍경을 감상하라는 기관사의 배려라는 말이 인터넷에 퍼져 있다.



퓌센으로 향하는 열차 안에서




퓌센에 도착해서 성이 보이는 곳까지 버스를 타고 가니, 언덕 위에 있는 노이슈반슈타인 성이 보인다. 언덕 위까지 걸어서 올라갈 수도 있지만, 작은 버스를 타고 갈 수도 있다. 순간 걸어올라갈까 했지만 괜히 버스 타고 올라가려고 하다가 힘들 수도 있을 것 같아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버스를 타고 가기 위해 줄을 서고 있는데 앞쪽에 외국인 무리가 자연스럽게 끼어든다. 말을 들어보니 스페인 사람들인 것 같아서, 에스파뇰이냐고 물어보니 응 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앞으로 나아가야 할 만큼 급박한 상황은 아니라 그냥 가만히 있었지만, 스페인 사람은 우리가 성격이 급해서 그래 하면서 이해해줬으면 하는 듯이 말하고, 아빠는 쟤네는 뭔데 새치기를 하냐고 말하고, 엄마는 스페인이 에스파뇰이냐고 물어봤다.




좌우지간 버스를 타고 언덕 위로 올라가니 성을 코 앞에서 볼 수 있다. 안쪽에 바로 들어가서 예정된 가이드 투어에 참여했다. 오디오 가이드를 지참하고 직원을 따라 성 제한된 공간을 돌아보는 것인데, 이곳에는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도 빌릴 수 있다. 다만 나는 무슨 패기인지 영어 가이드를 선택했다. 기계 안에는 순서대로 재생되는 음성 안내가 들어있는 듯 했는데, 아빠가 앞에서 지나가면서 옆에 있는 표지판에 가이드를 가져다 댔다. 아빠는 그렇게 하면 가이드 내용이 선택되는 줄 아셨지만 사실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런데 아빠가 그렇게 하고 지나가자 뒤에 있던 사람들이 줄줄이 아빠처럼 하고 지나갔다.




가이드 투어의 마지막은 기념품 가게이다. 멋진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구경하고 맨 마지막에 기념품 가게에 들어간다니, 소중한 순간을 간직할 기념품을 사고픈 사람들의 지갑을 털 물건들이 가득이다. 나는 딱히 살 것이 없어서 둘러보는데 부모님이 냉장고 자석을 조금 샀던 것 같다. 그런데 아빠가 나에게 하는 말이, 어떤 사람이 열쇠고리를 한 움큼 집어서 안주머니에 쑤셔넣더라는 것이었다. 에이 무슨말도 안된다고, 그런게 가능하냐고 잘못 보신거 아니냐고 말해도 아빠는 분명히 자기 눈으로 똑똑히 봤다고 하는 것이었다. 마치 사극에서 등장하는, 모든걸 두 눈으로 똑똑히 본 돌쇠처럼 말이다.




도둑은 정말 존재했는가는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로 남고, 부모님과 함께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나와 오솔길을 걸어간다. 성에서 조금 걸어 마리엔 다리까지 가면, 한번쯤은 봤을 법한 유명한 풍경을 볼 수 있다. 구름 한점 없는 맑은 날, 성과 함께 그 뒤로 호수와 초원, 도시가 펼쳐진다. 이곳에서 외국인에게 가족사진을 찍어달라고 했었는데, 셀카로 사진을 찍는 바람에 외국인이 사진에 찍혔었다. 생각만큼 많이 붐비지 않는 다리 위에서 부모님과 함께 멋진 풍경을 감상했다.




누구나 한 번쯤은 봤을, 유명한 노이슈반슈타인 성의 모습




언덕 아래로 내려오면, 위쪽의 성이 더욱 비현실적인 모습으로 다가온다




성을 구경하고 밑으로 내려오면, 버스정류장 근처에 면세점이 있다. 방앗간을 못 지나가는 참새처럼 부모님은 자연스럽게 면세점으로 들어갔다. 멋진 성이 있는 자리에 면세점이라니 정말 안 어울린다 생각했지만, 그냥 지나치지 못했던 부모님을 생각하면 꽤 장사가 잘 되는 것 같다. 비록 부모님이 그곳에서 물건을 사지는 않았지만 잠깐 물건을 구경하셨다.




버스를 타고 퓌센으로 돌아오고 나서 기차를 탈 때까지 약간 시간이 남아 시가지를 조금 구경했다. 마트에서 간식도 사고 하면서 작은 마을을 둘러보는데 아빠가 알레르기 반응이 있다면서 약국에 가자고 하셨다. 약국에서 약을 사는 것은 꽤 전문적인 용어가 필요할 것 같아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항히스타민제를 사는데는 큰 문제가 없었다. 무사히 약을 사고 기차에 오르니, 노을빛이 추가된 산맥이 점점 눈 앞에서 멀어져 간다.



도착했을 때 찍었던, 퓌센의 시내 사진




저녁이 다 되어서 숙소에 돌아와 체크인을 했다. 부모님과 여행을 하면서 제대로 된 호스텔에서 숙박하는 것은 처음이었는데, 체크인 할 때 베개 커버와 침대 커버, 이불 커버를 받는다. 그리고 남녀 구분 없이 큰 방에서 각자 침대 하나씩 쓰며 자고, 화장실과 샤워실은 공유한다. 자기 잠자리를 직접 준비하는 것도, 남녀 구분 없이 같은 방에서 자는 것도 한국에서는 매우 낮선 문화이지만 그곳에서는 크게 대단할 것도 없다. 재미있는 것은 잠 자는 공간은 잠을 자기 때문에 자신의 개인적 공간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다른 사람들이 다 같이 쓰는 공용공간에 가깝다는 것이다.  




사실 나는 그런게 있다 라고만 간단히 설명하며 숙소에 대해서 설명을 잘 해드리지 않았던 것 같다. 부모님이 꽤 당황한 눈치지만, 아빠가 짐을 옮기는 사이 이내 엄마와 함께 능숙하게 3인분의 잠자리를 준비한다. 사실 이미 스위스 천막 숙소 때 충격이 있어서인지, 이정도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방 안에는 2층침대가 많이 있는데, 다행히 운 좋게 1층 침대가 두 개 남아 있어 부모님을 드리고 나는 2층에 올라가 잤다. 2층 침대를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2층침대는 뭔가 어릴 적 꿈에서 나올 법한 낭만적인 것이지만, 두 세번 오르락 내리락 하며 사다리를 밟다 보면 그 꿈이 사실은 악몽이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부모님을 모시고 호스텔에서 숙박하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지만, 첫 효도여행의 예산 압박을 생각할 때는 최적의 선택이었다. 그리고 내가 부모님을 모시고 호스텔에서 함께 잘 때 걱정한 것은 수면 방해였다. 여러 사람이 한 방에서 같이 자다 보니 다양한 일이 일어나고 그 중에 딱히 뭘 하기엔 애매한 일들이 있다. 따지고 들기에는 사소하고, 그렇다고 해서 무시하고 잠들기에는 거슬리는 정도의 것들. 다행히도, 부모님과 잠을 잤던 그곳에서는 내가 걱정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부모님에게 미리미리 숙소가 어떤 식인지 정확하게 알려드리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부모님은 아무래도 호스텔에 익숙하지 않은 것은 분명했으니까.




'교훈 5, 부모님께 숙소 설명을 자세히 해드리자'




내가 생각했던 최악의 경우가 없을 것 같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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